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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세상읽기] 한국에는 老감독이 필요없다?

1986년‘허튼소리’이후 14년만에 ‘침향’을 내놓은 김수용 감독 (71). 인터뷰를 위해 신문사를 찾았을 때 그는 지인들에게 인사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상한 짓을 해서 미안합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불러주니 고마울 뿐이지요”라고.

이상한 짓. 한국에서 그 나이의 감독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그의 말처럼 ‘이상한 짓’이 돼 버렸다. 좋게 말해 ‘이상한 짓’이지 ‘멍청하고, 웃기는 짓’이란 얘기다. 적어도 든든한 제작자가 있고, 아직도 팬을 거느리면서 꾸준히 영화를 만드는 임권택 감독 한 사람을 제외하면.

속내를 들여다보면 임 감독도 그리 편안한 것은 아니다. 칸영화제 본선에 오르긴 했지만 ‘춘향뎐’의 국내 흥행 참패는 어떤 방향에서든 제작비의 압박을 가져올 것이고, 그 부담감은 이미 여러차레 임 감독으로 하여금 자신의 색깔을 스스로 훼손하는 결과는 낳았다.

‘창’이 그랬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장군의 아들’시리즈가 그랬다. 그야말로 ‘치마를 걷어올려’제작자에게 돈을 벌어 주어야만 생존이 가능한. 이것이 현실이다.

젊은 제작자들은 그들에게 관심이 없다. 오히려 자신들이 차지해야할 자리와 역할을 무위도식하며 축내는, 김수용 감독의 표현을 빌리면 “빗자루로 쓸어버려야 할”대상이다. 그들의 영화 문법은, 이야기는 더 이상 영상세대들인 젊은 관객들의 관심대상이 아니다.

때문에 애면글면 만들었다 해도 극장들이 외면한다. 그나마 1년을 기다려 극장에 걸린 ‘침향’이나 개봉 일주일 만에 내린 고영남(65) 감독의 ‘그림일기’는 행복하다. 어렵게 제작비를 조달해 만든 조문진 (65)감독의 ‘만날 때까지’나 이두용 (58) 감독의 ‘애’도 1년 넘게 창고에 박혀 있다.

관객과 ‘만날 때까지’영화는 영화가 아니다. 여든이 넘어서도 작품을 내는 일본의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나, 지금도 자신의 스타일과 수준으로 대작을 만드는 거장 프랜시스 코폴라 (61)나 리들리 스콧(63) 감독이 부러울 뿐이다.

젊은 제작자가 기획한 상품을 젊은 감독이 만들어 젊은 관객들만이 보는 한한국에서는 노 감독이 설 자리가 없다. 모든 돈이, 정책이 젊은 이들을 위해 존재한다. 돈이 없으니 실패를 각오하고 한번 도전할 수도 없고, 자연히 유명 스타는 엄두에도 못내고, 곳곳에 구멍이 보이고 여전히 옛날 정서와 문법에 의존하는 저예산영화.

젊은 관객들은 관심이 없다. 그러니 극장은 외면하고, 흥행이 안되니 다음 작품에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없고. 이 악순환 속에서 노 감독들은 손을 놓고, 그 ‘노(老)’는 점점 아래로 향해 간다. 이장호(55)도, 정지영(54)도 벌써 그 언저리에 다다랐다.

감독에게 영화만들기보다 더 큰 즐거움은 없을 것이다. 일흔 하나의 나이에도 김수용 감독은 힘든 줄 몰랐다. 관객이 알아주지 않아도, 만들어지고 개봉되는 그 자체 만으로 만족한다고 했다. 누가 노 감독들의 이런 즐거움을 빼앗고, 초라하게 만들었을까.

현실감각에 뒤지거나, 과거 영광에 안주해 자기역량을 위축시켜 스스로 예술성과 오락성을 저버린 노 감독들. 오직 돈만을 생각해 할리우드를 베끼든, 선정과 자극으로 치닫든, 신인감독을 앞세워 젊은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기획상품만을 양산하면서 걸핏하면 ‘칸영화제’를 들먹이는 젊은 제작자와 투자자들.

그러나 결과는 어떤가. ‘춘향뎐’이었다. “우리들에게는 우리의 영화 문법이 있다. 자동차로 질주하는 시간이 있다면 천년 세월이 가라앉아 있는 정지된 듯한 시간도 있다. 그 정지된 듯한 시간에서 우리의 전통과 정서와 삶을 본다.

그것을 무시하고 젊은 관객들을 따라갈 수는 없다.”고 김수용 감독은 말했다. 아니 그들은 따라가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가진 아름다움까지 존재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그들로 하여금 실험성과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도록 인정하고 채찍질할 사람은 그 뒤를 따라야 할 젊은 영화인들의 몫일 것이다.

이대현 문화부 차장 leedh@hk.co.kr

입력시간 2000/06/1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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