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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전북 김제시 금산사

고려의 개국 과정을 그린 드라마 ‘왕건’(KBS1)이 방송되고 있다. 초반의 산만한 전개에서 벗어나 주인공들의 개성이 부각되면서 보는 재미가 점점 깊어진다. 후삼국의 영웅은 왕건, 궁예, 견훤 등 세 호걸.

현재까지 드라마에서 어깨를 펴고 있는 인물은 궁예와 견훤이다. 파죽지세로 세력을 넓히고 있는데다 이미 황제의 칭호까지 듣고 있다.

역사에 비참하지 않은 패배가 있을까. 둘은 결국 왕건에게 패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미륵불의 현신을 자처하던 궁예는 지나친 폭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나 백성들에게 맞아 죽는다. 폭압자에 어울리는 인과응보일 수 있다. 견훤의 최후는 조금 다르다. 스스로도 가슴이 미어질 만큼 불쌍한 죽음을 맞는다.

지평선으로 해가 떠서 지평선으로 해가 지는 전북 김제. 한반도에서 가장 너른 들판 한켠에 모악산이 우뚝 서 있다.

모악산 남쪽 자락에 자리잡은 금산사(金山寺)는 호남 미륵신앙의 터전이다. 백제 법왕 원년(599년)에 임금의 복을 비는 사찰로 처음 지어졌으니 만 1,400년이 넘었다. 10세기 초에 활동했던 견훤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보았고 그의 죽음과도 인연이 깊은 곳이다.

후백제는 고창(古昌)에서 왕건에게 대패하면서 갑자기 망국의 내리막길을 달렸다. 그 때 견훤의 억장을 완전히 무너뜨린 것은 다름 아닌 맏아들 신검.

넷째 아들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는데 불만을 품은 신검은 아버지를 잡아 가두는 집안 쿠데타를 일으켰다. 지키는 군졸에 술을 먹인 후 천신만고 끝에 탈출한 견훤은 왕건에게 투항하고 아들에게 칼을 겨누며 후백제 멸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왕건으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았지만 황산(논산)의 한적한 산사에서 등창에 걸려 곧 죽음을 맞았다. 울분과 번민으로 얻은 병이었다.

금산사는 신검이 아버지 견훤을 잡아 가둔 유폐의 절이었다. 견훤은 이 절에서 석달간 갇혀있으면서 배신에 치를 떨며 자식에게 복수를 다짐했다.

그후 1,000여 년이 흘렀다. 그 때의 주인공들은 이미 역사의 한 켠으로 밀려나 있지만 미륵정토 금산사는 그 허망한 권력싸움을 비웃듯 여전히 강건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모악산의 옛 이름은 엄뫼와 큰뫼. ‘어머니의 산’이자 ‘큰 산’이란 의미다. 사방이 평야였던 이 곳에서 모악산은 자연스럽게 숭배의 대상이었다. 한자로 이름이 바뀌면서 엄뫼는 지금의 산 이름이, 큰뫼는 절 이름이 되었다.

금산사는 김제의 너른 벌판을 닮아 시원스럽고 장중하다. 일주문 금강문 불이문 등을 차례로 지나면 학교 운동장만한 마당이 나타난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후백제의 비운을 기억하라는 듯 큰 소나무 한그루가 ‘누워있다’. 육중한 절 건물들은 이 소나무를 중심으로 둘러서 있다.

이 절은 통일신라시대 불교의 5대 흐름 중 하나인 법상종의 원찰이었다. 모두 11개의 국보와 보물이 있어 예전의 위용을 증명한다. 중생의 머리를 절로 숙이게 하는 곳은 보물 제62호인 미륵전. 밖에서 보면 3층이지만 안은 모두 터져있다.

법당 안에는 10㎙가 넘는 미륵불이 자애로운 표정으로 내려다 본다. 머리를 조아리고 ‘나무아미타불’을 읊조릴 수 밖에 없다. 금산사에서 또 하나의 명물이었던 것은 보물 제476호였던 대적광전 정면 7칸, 측면 4칸 건물로 한반도에서 옆으로는 가장 긴 법당이었는데 1987년 12월 소실됐다.

드라마나 영화의 무대가 인기 여행지가 되고 있다. 드라마 ‘왕건’이 크게 성공할 경우 견훤의 비운을 간직한 금산사는 다시 한번 세상에 얼굴을 크게 드러낼지 모른다.

권오현 생활과학부차장 koh@hk.co.kr

입력시간 2000/06/20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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