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프레디타

깨진 맥주병으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이의 얼굴을 짓이기고, 시체의 팔다리를 잘라내어 가마솥에 넣고 끓여서는 그 국물을 마시며, 애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납치한 여자와 한바탕 섹스의 향연을 벌이고…. 눈 똑바로 뜨고는 끝까지 보기 힘든 짓만 골라 하는 사내와 계집이 주인공인 영화를 왜 만들고 보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하나. 악취미를 즐기는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밖에는.

영화 홍보 담당자들은 스페인 감독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를 ‘헤모글로빈의 악동’으로 불리던 미국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그의 친구인 로버트 로드리게즈와 함께 세계 젊은이를 열광시키는 컬트 감독이라고 선전한다.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 로드리게즈의 <황혼에서 새벽까지>는 영화 장르를 파괴한 기이한 유혈극이긴 하지만 이들은 더이상 구역질 운운할 만한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 따라서 연출작 세 편을 끔찍한 인물과 행동으로 채운 이글레시아만 정신검증을 받으면 되지 않을까.

이글레시아는 <액션 무탕트>의 비디오 출시로 국내에 처음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내노라 하는 규모의 비디오 가게에서도 이 영화는 찾기 어렵다. 그의 진가를 처음부터 알아챈 이는 드물었고 영화광 몇몇이 변종인간이 설치는 딴 세계 이야기를 즐겼을 뿐이다.

세계의 종말을 앞두고 사탄과 대결하는 <야수의 날>이 극장에 걸리기는 했지만 이 역시 흥행 운운할 정도는 아니었다. 1998년작인 <프레디타:Perdita Durango>(18세, 새롬) 또한 극장에 잠깐 걸리는 시늉만 했다.

<프레디타>는 데이비드 린치의 기이하다 못해 난해한 영화 <로스트 하이웨이>의 원작자인 베리 기포드의 소설 <59도와 비-페르디타 듀랑고 이야기>를 영화로 옮긴 것이다.

배경은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지대 황무지와 라스베가스. 뱀 모양의 구두와 검은색 쫄티, 선글라스, 귀밑만 밀어낸 치렁한 머리로 멋을 부린 로메로(하비에 바뎀)는 은행 강도, 마약 거래, 살인을 일삼다 고향인 멕시코의 황무지로 돌아와 부두교와 비슷한 사교인 산테리아 의식을 집행하는 다혈질 사내.

그의 꾀임에 기다렸다는 듯 응한 여자 페르디타(로지 페레즈)는 언니와 조카들을 죽이고 자살한 형부에 대한 기억 때문에 악몽을 꾸는 관능적인 떠돌이.

만나자마자 사보텡 아래 거친 땅 위에서 엉킨 남녀는 죽은 자를 제물로 바치느니 아예 사람을 납치하면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모은다. 데이트 나온 젊은 백인 커플 드웨인(할리 크로스)과 에스텔(에이미 그레함)이 트럭에 실린다.

로메로와 페르디타에게 각기 강간당하면서 난생 처음 섹스에 황홀해하는 철부지 커플. 미용품으로 쓰일 태아를 실은 트럭을 라스베이거스로 운반해주는 일을 맡은 로메로에게 끌려다니며 탈출 기회를 엿본다.

“인생 최고의 쾌락은 섹스와 살인”이라는 페르디타와 “살기 위해 죽고 죽이는 것”이라는 로메로의 사랑은 의외로 순수하다. 죽음을 두려워 않기 때문인가? 로메로는 영화 <베라 크루즈>를 즐겨보는데 게리 쿠퍼의 손에 죽으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악당 버트 랑카스터를 흠모하기 때문이다. 그 자신도 그렇게 죽게 되었으니 행복할까?

반면 순수해보였던 백인 커플은 자신이 살기 위해 상대를 죽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엽기, 잔혹, 광신, 카니발리즘이 난무하고 도덕 따위는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 않은 영화, 비위 좋은 분만 보시길.

옥선희 비디오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0/06/20 20:00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