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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그리고 아이들] “다른 아이랑 똑같이 대해주세요”

‘한부모 가정’ 아이들, 사랑과 관심이 가장 큰 '응원'

경기도 고양시 모 초등학교 4학년 정(11)모군은 속칭 ‘왕따’를 당하고 있다. 학급에서 아무도 그와 어울리려 하지 않는다. 선생님까지 아예 손을 든 상황이다. 급우들을 못살게 구는데다 워낙 떼를 써 담임교사도 당해내지 못할 지경이다. 어쩌다 혼이 나도 그때 뿐이다.

1학년때부터 ‘악명’을 떨치는 바람에 학부모들도 아이들에게 그와 어울리지 못하게 주의를 줄 정도가 됐다.

정군에겐 동생이 하나 있지만 떨어져 산다. 부모가 이혼하면서 정군은 아버지가 맡고 동생은 엄마가 데리고 갔기 때문이다.

공무원인 아버지와 마주 하는 시간은 아침식사 때가 거의 전부다. 함께 사는 아버지의 동거녀가 있긴 하지만 정군에겐 거의 신경을 안쓴다. 그는 또래들과 달리 학원 등 과외수업을 받지 않는다. 덕분에 자유시간은 많지만 같이 놀 친구가 없어 고민이다.

열린 교육을 위해 학급 명예교사로 참가한 적이 있는 한 학부모의 이야기. “엄마들이 관심을 표시하면 정군은 어쩔줄 몰라 오히려 반항을 한다. 무얼 시키면 안하고 버티기만 한다. 옷과 얼굴이 꾀죄죄한게 집에서 사랑과 관심을 너무 못받고 있는 것 같다.”


부모사랑 결핍, 공격적 성격

정군은 가정환경의 피해를 극도로 받고 있는 예다. ‘한 부모 가정’(편모·편부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해 일탈의 문턱에서 서성거리는 경우다. 무관심과 사랑결핍은 아이들의 정상적인 사회화에 결정적인 해를 끼친다.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은 또래들에 당연시되는 부모의 관심과 사랑에서 소외돼 있다.

그리스도신학대 박영희 교수(사회복지학과)는 한 부모 가정의 아이들이 어긋날 위험부담은 정상 가정의 아이에 비해 분명히 높다고 말한다.

박 교수의 이야기. “아이들은 의존욕구가 충족돼야 한다. 사랑해 달라는 사인이 거부되면 행동이 보다 공격적이고 말투도 거칠어진다. 한 부모 가정에서는 엄마가 돈벌러 나가기 때문에 아이가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일탈로 빠져들 위험이 그만큼 커지게 된다.”

서울 강서구 방화동 방화아파트 6단지 복지관 지하의 ‘또래 모임터’. 박 교수가 강서구청의 위탁을 받아 작년 8월부터 한 부모 가정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곳이다. 박 교수는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을 지도하고 부모와 상담도 한다.

비록 기본적인 탁아·교육, 부모 상담에 그치고 있지만 한 부모 가정을 위한 공공시설로는 국내에서 유일하다. 아이들은 모두 17명.

또래 모임터에서 만난 강서구 모 초등학교 1학년 배모(8)양. 왕방울만한 눈에 티없는 모습이 다른 또래들과 다름이 없다.

눈이 크다고 친구들이 놀리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답이 오히려 어른스럽다. “아뇨. 눈이 좀 클 수도 있죠, 뭐.” 1학년이라 학교수업이 일찍 끝나 혼자서 공부하고 있다는 것이 박창민 교사(그리스도신학대 사회복지학과 4년)의 이야기다.


곱지않은 사회의 눈

배양은 외가에서 엄마, 외조부모와 함께 산다. 배양이 아버지와 떨어진 것은 6개월전. 어머니가 남편의 폭력에 못이겨 친정으로 오면서부터다. 어머니는 피학대 후유증으로 약간의 정신장애를 겪고 있다고 한다.

“아빤 외국 가서 집에 안계셔요. 가끔 전화만 해요. 그런데 애들이 아빠가 안계신다고 놀려요.” 배양은 엄마 아빠가 별거중인 사실을 모른다. 외국으로 돈 벌러 나가 잠시 떨어져 있는 줄로만 안다. 또래들이 아빠가 없다고 놀리는 이유가 의아할 뿐이다.

또래 모임터의 또다른 학생 김모(10)군. 이름이 뭐냐고 묻자 “나도 몰라요”라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다정하게 재삼 묻자 그제서야 마음을 연듯 이름을 말했다. 김군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컴퓨터 인터넷 접속.

그는 집에 컴퓨터가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김군은 친모 및 친모의 동거남과 함께 살고 있다. 배양과 김군은 또래 모임터를 이용할 수 있어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대부분의 한부모 가정 아이들이 정군처럼 방치돼 있다.

한 부모 가정의 아이들을 보는 사회의 눈은 그리 곱지 못하다. 한 부모 가정 어머니들이 가장 가슴아픈 것도 이때다. 11년전 임신사실도 모른채 이혼을 당했다는 이모(53)씨. 좌반신이 불편해 지팡이에 의지하고 지내는 그녀에게 가장 괴로운 것은 주위의 말이다.

“엄마는 왜 이혼했니?”라며 딸의 자격지심을 건드릴 때면 혹시 딸이 충격을 받지나 않을까 조바심이 나곤 한다. 딸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단란한 가정이다. 이젠 “엄마, 여자한테 잘해주는 사람에게 시집가”라고 말할 정도로 철이 들었다.


“딸 위해 재혼하지 않겠다”

생후 7개월된 딸을 데리고 11년전 이혼했다는 임모(40)씨는 돈벌이하며 아이 키우느라 바빠 재혼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딸이 유치원생 시절 “왜 나는 아빠가 없어. 도대체 결혼은 해서 날 낳은거야?”라고 물어왔을 때는 돌아서서 눈물을 흘려야 했다.

아이는 새아빠를 원한다. “엄마가 힘드니까 아빠를 얻어야겠다. 하지만 야근하는 직업 가진 아빠는 싫어.” 어린 딸의 말에는 가족의 관심과 사랑에 대한 갈구가 담겨있음이 틀림없다. 임씨에겐 남편이 없다는 사실이 자신뿐 아니라 딸의 대인관계까지 제한하고 있다. 혼자 사는 게 당당하지 않아 집안모임에도 잘 안나가게 되고 주위사람과 교제도 기피하기 때문.

임씨는 그래도 꿋꿋하고 구김없이 커주는 딸이 대견스럽다. 그녀는 딸을 위해서도 앞으로 재혼하지 않을 생각이다. 임씨는 “주위에서 정상 가정 아이와 똑같이 우리 딸을 대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이 딸에게 “엄마가 널 키우느라 고생하시니 네가 잘해야 한다”는 식의 설교를 할 때 가장 화가 난다고 강조했다.


“엄마의 중요성을 자각해야”

그리스도신학대 사회복지과 박영희 교수는 한 부모 가정의 문제점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엄마가 자신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 교수는 서울 강서구 방화동아파트 6단지에서 한부모 가정을 위한 ‘또래 모임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 생활보호대상 한 부모 가정이 많기 때문이다.

그의 지론은 ‘어머니가 안정돼 있으면 아이도 안정된다는 것’. 하지만 대부분의 한 부모 가정 어머니가 먹고살기에 바빠 아이에게 뭐가 중요한지를 미처 헤아리지 못하는 게 현실.

따라서 박 교수는 이곳에서 상담을 통해 어머니에게 바른 자리와 자세를 지도한다. 아이들을 위해서는 탁아·교육을 통해 어머니를 대리, 보조하는 심리안정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한 부모 가정에 이르게 되는 원인은 사별과 이혼, 미혼 출산이다. 30~40대에는 사별보다 이혼의 비율이 더 크다. 박 교수는 시대추세에 맞춰 학교교육과 사회의식이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혼가정도 사회의 한 모습이라는 점을 해당자와 사회 전체에 교육해야 한다는 것. 이혼가정을 더이상 정상·비정상의 시각이 아니라 사회적 다양성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 부모 가정이라 하더라도 어머니의 소득 정도에 따라 아이의 생활태도가 크게 달라진다. 가난할수록 어머니가 생계에 매달려야 하고, 그만큼 아이를 위해 보내는 시간이 줄기 때문.

박 교수는 가난한 한 부모 가정을 위해서는 정부지원과 사회시설 확충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혼부모의 자녀 친견권에 대한 그의 견해는 다소 조심스럽다. 자녀를 만나는 부모의 성숙한 자세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아이에게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박영희 그리스도신학대 교수>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입력시간 2000/06/20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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