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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국회상임위 배정, 정략적 나눠먹기 '구태' 여전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로 온나라가 들떠 있던 지난 9일 16대 국회개원협상을 마무리한 여·야는 정치개혁을 희망해온 국민을 또다시 실망시켰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발표한 19개 상임위 및 특위위원장과 위원 내정자의 면면을 살펴보면 당총재 등 보스정치의 위력이 그대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여·야는 16대국회에 들어서도 전문성보다는 당충성도와 당지도부의 정략적 판단에 따라 상당수 의원들에게 자리를 나눠주는 구습을 그대로 반복한 것이다.

민주당의 경우 대한약사회장 출신으로 보건복지위에서 활동해온 김명섭의원(서울 영등포갑)을 정보위원장으로, 건교위 출신의 이용삼의원(강원 철원·화천·양구)을 행정위원장으로 지명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김의원은 정보위원장 내정사실이 발표되자 스스로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을 정도. 또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서 활동해온 유용태의원(서울 동작을)이 재선임에도 불구하고 환경노동위원장을 맡게 된 것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모두 4·13총선에서 시민단체로부터 ‘철새 정치인’이라는 비난을 받았으나 당선되자 민주당 지도부로부터 영입파 배려라는 ‘훈장’을 받은 셈이다.

김의원은 1998년 한나라당에서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겼으며 최연소 행정위원장이 된 이의원은 1997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에서 국민신당으로 옮긴뒤 줄곧 이인제씨를 따라 민주당에 입당했다.

유의원도 15대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당선돼 당내 초선의원 모임을 이끌었으나 정권교체후인 98년 국민회의로 옮겨 영입파 의원 모임인 ‘국민통합 21’을 주도한 공로를 인정받았다는 후문이다.


자리안배기 최우선 고려사항

민주당은 반면 이상수 임채정 장영달의원 등 원내총무 경선참여자들은 모두 상임위원장에서 배제됐다. 모두 호남출신이어서 지역안배차원에서 뺐다는 것이 당지도부의 설명이지만 당사자들은 몹시 억울해 하고 있다.

전문성을 배제한 정략적인 나눠먹기는 야당인 한나라당도 만만치 않다.

이회창총재의 측근인 최돈웅의원(강원 강릉)과 김영일의원(경남 김해) 박주천의원(서울 마포을)이 각각 재정경제위원장, 건설교통위원장, 정무위원장 등 노란자위 자리를 모두 차지했다. 특히 최의원의 재경위원장 임명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경월소주사장인 최의원은 한나라당 재정위원장까지 맡고 있어 정부의 경제정책과 국세청까지 관할하고 있는 재경위원장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시비가 계속되고 있다. 김의원도 검찰출신이지만 상임위중 가장 경쟁이 치열한 건교위원장을 차지했다.

재경통인 박명환의원(서울 마포갑)은 남북정상회담 후속조치 등 중요 현안이 산적한 통일외교통상위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김덕룡계보 끌어안기와께 총무경선에서 막판 사퇴한 배려차원에서 위원장에 임명됐다.

박의원과 함께 이규택의원(경기 여주)과 전용원의원(경기 구리)도 총무경선에서 사퇴할 때 상임위원장을 보장받았다는 소문이 무성했으나 이번에 각각 교육위원장과 보건복지위원장을 맡게돼 소문이 사실로 확인됐다.

박헌기 법사위원장(경북 영천)은 대구·경북 배려차원에서 일찌감치 내정됐다는 분석이고 이연숙 여성특위위원장(비례대표)은 이총재의 신임을 바탕으로 공천심사위원과 비례대표, 지명 부총재에 이어 국회 요직까지 꿰차게 됐다.


추잡한 정치권 이전투구

각당의 나눠먹기에 자민련도 자리를 달라고 요구하면서 상임위원장을 둘러싼 정치권의 이전투구(泥田鬪狗)는 더욱 추잡해졌다.

자민련은 민주당과 협상에서 “농림해양수산위·환경노동위원장 두자리를 할애해달라”고 요구했으나 민주당이 농림위원장과 윤리특위위원장 자리를 비워둔채 9일 명단을 발표하자 상임위원 명단도 제출하지 않은채 의총을 열어 항의성 농성을 계속해 결국 상위·특위원장 선출건이 연기되기도 했다.

상임위원장뿐만 아니라 상임위원 배분에서도 해당 상임위와 이해관계가 분명한 의원이 눈에 띄어 비난을 받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 김무성의원과 정인봉의원이 법사위에 배치된데 대해서는 말이 많다. 두의원 모두 선거법위반 혐의로 검찰이 법원에 기소한 상태여서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상충된다는 지적이다. 김의원은 법조경험이 전혀 없어 당지도부가 보호막을 제공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국회 상임위를 당지도부가 나눠먹기식으로 배분하는데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14일 상임위와 이해관계가 있는 의원의 배정을 금지하는 내용의 국회법 48조가 너무 추상적으로 규정돼 있어 실효가 없다며 이를 구체화한 개정안을 국회에 청원했다.

여·야 지도부의 일방적인 상임위원장 내정에 대해 각당에서도 반발의 목소리가 없지는 않았다. 민주당 소장의원 일부는 상임위원장 내정단계부터 의원총회 추인절자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모아 김성호의원이 정균환 원내총무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정총무는 16대 국회 후반기부터 의원총회를 통한 추인절차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며 무마했다.

한나라당내 반발은 더욱 거세 총재경선에 나섰던 손학규의원은 상임위원장 내정자가 발표된 9일 의원총회에서 “상임위원장 인선을 당직 배분하듯 지도부가 결정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홍신 이재오 남경필 의원 등 초·재선의원 20여명도 만찬모임을 갖고 지도부를 성토했으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이권·권한 좇는 후진정치의 전형

당내 반발과 여론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여야는 온나라가 남북정상회담의 감격에 젖어있는 틈을 타 16일 상임위원장과 위원들을 당초 안대로 확정했다.

정치전문가들은 의원들이 이권이나 권한이 많은 이른바 노른자위 상임위 배속을 바라거나 상임위를 옮기는 것은 선진국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지만 한국처럼 전문성을 전혀 배제한 채 당지도부가 시혜를 베풀듯이 배분하는 것은 후진정치의 전형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의회발전연구회 소속 박찬표 국회도서관 연구관이 15대 국회의원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전체의원 57%가 4년 임기중 상임위를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14대의 58.4%보다는 조금 낮아졌지만 절반 이상의 국회의원이 두개이상의 상임위를 바꾼 셈이다. 15대 국회에서 10회 이상 상임위를 바꾼 의원은 16명, 15회 이상도 10명에 이르며 자민련 이상현의원은 무려 22차례나 상임위를 교체했다.

의회정치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도 중요 상임위로 가기 위해 당지도부에 로비를 하는 등 잡음이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민주·공화당 모두 당내에 20명 내외로 구성된 ‘상임위 배정위원회’를 설치해 공정성을 높이고 있다.

또 96년 민주당 하원의원을 기준으로 조사한 결과 재선의원의 43%가 상임위를 바꾼 것으로 나타났지만 3선의원만 돼도 상임위 변경비율이 16.2%로 떨어지는 등 선수가 높아질수록 전문성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송용회 주간한국부 기자 songyh@hk.co.kr

입력시간 2000/06/20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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