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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아노미] 흔들리는 군의 가치관

군(軍)의 가치관이 흔들리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이 군의 존립 근거 자체를 뒤흔들어놓을 만큼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은 주적(主敵)의 문제.

현재 우리 군의 주적 개념은 북괴 국내 체제전복 세력 국제적인 북괴 지원세력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국방부가 마련한 ‘북한과 북괴 호칭 용어 사용 지침안’에 따르면 노동당과 정부기관, 정규군, 준군사조직 등에는 ‘북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결국 남북 정상회담 당시 우리 군의 최고통수권자인 김대중 대통령이 주적인 인민군의 사열을 받고, 인민군 간부들과 격의 없는 자리를 하면서 그들을 칭찬까지 한 셈이다.

더욱이 북한은 정상회담이 끝난 날부터 공식적으로 대남 비방방송을 중단했으며 나포된 우리 어선과 선원들을 곧바로 보내주는 예기치 못한 화해조치를 해오고 있다. 우리 군도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대북 비방방송을 중단했다.

국방부로서는 생중계 방송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의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보고 남북간에 비방방송이 사라진 상황들로 혼란을 겪고 있는 장병들에게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다”라고 교육시키는 것이 과연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이 문제와 관련, 국방부는 “1994년 3월까지 ‘적의 무력침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고’로 돼 있던 국방목표를 ‘외부의 군사적 위협과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고’로 수정하는 과정에서 언론과 국회에서 ‘북한에 대한 주적 개념이 없어진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고 문제를 제기함에 따라 ‘북한은 우리의 주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군은 북한의 어떤 변화을 주시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적 능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북한의 위협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 만큼 현시점에서 주적 개념의 변경 여부를 거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장밋빛 대북관에 경계

더욱 큰 고민은 남북 정상회담이후 신세대 장병을 포함해, 우리 사회 전체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집단최면과, 통일이 당장 이뤄질 것이라는 환상에 휩싸여 군의 임무나 존재 이유에 대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경고라도 하듯 조성태 국방장관은 지난 6월22일 열린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시종일관 김정일 위원장을 ‘김정일’이라고 호칭했다. 이에 덧붙여 “국방부는 김정일의 과거 행적과 군 장악 정도를 파악하면서 대비태세에 더욱더 만전을 기하겠다”며 불신의 눈빛을 감추지 않았다.

조 장관은 군의 임무와 관련해서도 “군은 어떠한 침범으로부터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위하는 것”이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남과 북이 어떻게 변화든 국방부의 기본임무는 불변”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현정부의 햇볕정책과, 정상회담 후 무르익은 화해분위기와 관련, “남북 공동선언의 실질적인 이행으로 양방간에 궁극적인 화해와 협력 및 평화통일도 확고한 대비태세가 확립돼야만 가능하다”며 “군은 이를 힘으로 뒷받침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같은 원칙적인 입장에도 불구하고 정부부처 가운데서는 가장 빠르게 ‘정상회담 후속조치 기획단’을 구성, 주적 개념과 장병 정신교육 등을 포함한 전반적인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은 남북 정상회담후 국방부의 고민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엿보게 해주는 대목이다.

황양준 사회부 기자 naigero@hk.co.kr

입력시간 2000/06/2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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