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아노미] 잊혀진 전쟁 '6·25'

각종 행사 취소·축소…의미 재정리 시급

한국 전쟁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발발 50주년을 맞은 올해, 6·25의 의미는 어느 때보다 각별할 수 있다. 하지만 남북 정상회담으로 인해 기념행사들이 줄줄이 축소되거나 취소되면서 우리의 역사의식에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남북 정상회담 이후 국가 전체가 너무 들떠 안보의식 따윈 안중에도 없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의 이같은 분위기는 미국 등 6·25 참전국에서 한국 전쟁을 재조명하자는 열기가 일고 있는 것과는 극명히 대조된다.


“북한 자극하지 말자” 조심 조심

올초까지만 해도 우리 정부는 6·25 기념행사를 참전국들과 협조하여 성대하게 치를 계획이었다. 하지만 정상회담으로 남북 화해무드가 조성되자 상황은 급반전했다. 남과 북이 화해하고 상호신뢰를 쌓아가는 마당에 북한을 쓸데없이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

정부는 예정대로 6월25일 오전 전쟁기념관에서 국내·외 참전용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가졌지만 행사 분위기는 예전과 달랐다. 지난해 같은 비장함과 뜻 깊은 날이라는 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고 시민들도 행사의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이날 오후 2시부터 3시반까지 남대문에서 광화문까지로 계획됐던 4,000여명 규모의 시가행진은 아예 취소됐다.

북한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게 이유였다. 국방부는 또 6·25 50주년 기념행사로 준비했던 부대별 진지점령 훈련, 무장행군도 취소했다. 이밖에도 25일 서울의 기념행사에 맞춰 지방자치단체 별로 준비했던 행사도 대부분 참전용사에 대한 추모행사와 위로연 등으로 대체됐다.

정부는 또 6·25 기념일 이후 차례로 예정된 인천상륙작전, 낙동강 반격, 서울수복 등을 비롯한 각종 전투기념행사에서 전투장면 재연은 빼기로 했다.

당초의 계획이 수정된 것은 정부주도 행사 뿐 아니다. 자유총연맹이 주최하는 6·25 50주년 기념전시회에서는 전시될 사진을 미리 검토해 북한을 자극할 만한 것은 모두 제외했다. 재향군인회는 18일 개최한 기념행사의 명칭을 ‘6·25 50주년 북괴 규탄대회’에서 ‘평화통일 결의대회’로 바꿨다.


전쟁의 의미 재정립할 때

반면 참전국들의 6·25 기념 열기는 예년보다 훨씬 뜨거워 눈길을 끌었다. 미국은 25일 워싱턴 DC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까지 참석한 가운데 한국전 기념식을 거행했으며 유타주에는 한국전 기념관을 세울 계획이다.

일리노이주에선 2만여명이 참석해 23일부터 25일까지 사흘간 기념퍼레이드, 불꽃놀이 등 기념식을 성대하게 치뤘다. 벨기에서는 6월 중순부터 유럽의 시각에서 한국전을 조명하는 대규모 학술회의와 전시회가 열렸다.

또한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해외 참전용사의 수도 크게 늘어났다. 예년에는 600~700명 수준이던 것이 올해는 1,000명을 훨씬 넘었다.

이런 대조적인 상황에 대해 자유민주민족회의 김도 사무국장은 “정부는 왜 북한 눈치를 보느냐. 외국처럼 순국선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되는 것 아니냐”며 분개했다.

한국 반공청년회의 김은식 조직국장도 “기념행사는 축소하더라도 안보의식은 확실히 해야 하는데 우리는 지금 너무 들떠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동족상잔의 비극성과 북한의 호전성 등 이데올로기적 선전성이 강했던 한국전쟁의 의미를 재정립할 때가 왔다.

송기희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6/27 17:50


송기희 주간한국부 gihu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