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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노갑·이인제가 손 잡으면…

민주당의 8월 말 전당대회가 일찍부터 차기를 겨냥한 본격적인 ‘파워게임장’으로 변질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고위원 경선이 그 장(場)이다.

이렇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동교동계 좌장인 권노갑 상임고문이 대표적 차기주자인 이인제 상임고문과 ‘콤비’를 이뤄 경선전에 뛰어든 것이다. 권고문은 최근까지도 “화갑(한화갑 의원을 지칭)이를 밀어야지”라며 자신은 경선에 나서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

총선과정에서 부쩍 가까워진 이인제 고문에게도 불출마를 권유한 것으로 전해졌었다. 이고문측이 최고위원 경선에 계속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던 데에는 권고문의 충고가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권고문 최고위원 경선출마 시사

그러나 권고문은 6월23일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돌연 “경선에 나가야 한다는 측근들이 많다”며 “나라와 당을 위해 무엇이 최선인지를 생각해 보겠다”고 말해 최고위원 경선 출마를 강력히 시사했다.

권고문은 여기에 더해 “이인제 고문도 출마키로 했다”고 말해 이고문과 연대를 형성할 가능성을 짙게 남겨 뒀다. 권고문의 발언이 알려진 뒤 이고문측도 “정면돌파하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밝히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이틀전인 21일 서울 한 호텔에서 만나 ‘동반출마’원칙에 합의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권고문의 이런 행보는 다른 차기 주자들의 경쟁심에 불을 붙일 게 확실하다. 더 나아가 동교동계의 세력 재편, 경계선이 불명확한 당내 제 세력간의 합종연횡에도 민감한 연쇄 반응을 불러 일으킬 게 명약관화하다.

권고문의 출마로 당장 최고위원 후보들의 합종연횡이 조기에 가시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 상황에서는 크게 나눠 ‘권고문 등 구세력 중진+이인제 연합’‘한화갑 지도위원+정동영 전대변인 등 소장파 대표+김근태 지도위원을 대표로 한 개혁파(가정)’의 두 세력이 가장 두드러져 보인다.

여기에 더해 당내 소외세력이랄 수 있는 노무현, 김중권 지도위원 등 영남권 주자들이 한 그룹을 이룰 수 있다.

기타 후보중 가장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박상천 총무는 범동교동계로 분류돼 ‘권·이’연대에 가세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 박총무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권고문이 지원을 약속했다”며 “이미 권고문측 운동원들이 뛰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동교동 주류와 함께 움직일 수 밖에 없다”면서 “그러나 권고문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지는 않으며 결과는 언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내게 좋게 나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권·이 연대, 한화갑의원 ‘당황’

‘권·이’연대와 ‘한·정·김 연대(가정)’는 여러 면에서 색채가 다르다. 우선 세대면에서 ‘권·이’연대는 구 야당출신 중진그룹이 주축을 이룰 수 밖에 없다. 이고문측 국민신당계의 세가 아직 미미하기 때문에 권고문이 주도하는 구 주류그룹들이 아래를 떠받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실제 권고문이 출마를 결심하는 데에는 안동선 의원 등 당 원로·중진그룹들의 권유가 강하게 작용했다고 한다.

이에 비해 ‘한·정·김’연대는 당소장파, 젊은 의원들이 핵심이다. 문희상 조성준 김한길 설훈 정동채 추미애 의원 등이 개혁적 목소리를 일궈내고 있는 대표적 인물들이다.

특히 한화갑 의원 개인적으로는 오랜기간 DJ 선거의 영남지역 담당으로 일해온 탓에 당내 영남위원장들 사이에 만만찮은 지지세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고문의 최고위원 출마는 동교동 내부 및 권력 핵심부 역학관계에 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당장 일찌감치 최고위원 경선에 뜻을 둬 온 한화갑 의원측이 당황해 하고 있다. 한 측근은 “동교동계의 분위기에 비춰 권고문이 직접 나서는 선거에 한의원이 출마해도 되는 지에 대해 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며 “상황추이를 좀 지켜봐야겠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권고문은 기자들에게 “경선은 선의의 경쟁”이라며 “구 민주당때도 같은 동교동계인 나와 한광옥 의원이 최고위원 경선에 함께 나간 적이 있다”며 ‘동반출마’에 개의치 않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권고문은 “여러 명을 뽑는 선거에서는 어차피 연대할 수 밖에 없다”며 “함께 선거운동하면 더 좋을 수도 있다”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정가에서는 이를 두고 “권력 핵심부, 특히 동교동 내부의 파워게임이 최고위원 경선을 계기로 표면화하는 게 아니냐”고 보고 있다. “그동안 당을 장악해 오다시피한 권고문과 청와대 모핵심인사, 모 핵심당직자 등이 최고위원 경선을 통해 특정 인사·그룹으로 힘이 이동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권고문 직접 출마라는 대응수를 결정한게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돈다.


권력핵심부 역학 관계에 묘한 파장

일각에서는 “어차피 경선에 뛰어든 이상 동교동 좌장을 자처해 온 권고문으로서는 1등을 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기존 세분석에서 가장 유력한 1등 후보였던 한화갑의원측도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두 세력간의 충돌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최고위원 경선이 자연스럽게 동교동계 신·구파 간의 세분열로 이어질 지도 모른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역으로 “두 사람 모두 동교동계의 분열이 곧 김대중대통령, 권력 핵심부에게 커다란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물밑에서는 긴장관계를 이룰 지 모르나 득표과정에서는 연합 전선을 형성하게 될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권고문의 출마와 관련해 또 하나 주목해 볼만한 사안은 김대중대통령의 의도. 권고문은 출마 의사를 표명하기 전날 청와대를 방문, 김대통령을 독대했다고 한다. 권고문측 사람들은 한결같이 “권고문이 언제 자기 뜻을 앞세워 움직이는 걸 봤느냐”며 경선 출마가 DJ의 의중에 따른 것임을 암시했다. 한 참모는 “차기 주자들이 모두 출마, 최고위원단에 들어온 뒤에도 지금처럼 권고문이 외곽에 있으면서 이들을 조정하고 조율하기는 힘들다”고 ‘경선출마의 불가피성’을 주장했다. 같은 동교동계인 한의원측도 “동교동계의 구조상 ‘어른’이 하지 말라고 했으면 벌써 그만뒀을 것”이라며 한의원에게도 DJ의 의중이 실려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한의원도 김대통령을 만났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한의원의 경선 출마는 기정사실이 되고 있다.


DJ의도는 무엇인가

여권 인사들은 DJ의 의도를 두 가지로 해석하고 있다. 하나는 권고문에게 가장 껄끄럽고 미묘한 문제인 차기 주자들간의 조정역을 맡기기 위해 권고문이 직접 최고위원단에 들어가도록 지시했다는 설이다. 다른 하나는 차기를 생각하고 있는 모든 여권 인사들에게 ‘클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차원에서 이인제 고문, 한화갑 의원 등을 직·간접적인 화법을 통해 경선 출마쪽으로 이끌지 않았겠느냐는 시각이다.

신효섭 정치부차장 hsshin@hk.co.kr

입력시간 2000/06/2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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