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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장의 대권수업 '통일'

남북정상회담 이후 '통일공부'에 분주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요즘 ‘통일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총재는 남북 정상회담 직후 전직 총리들과 만찬을 가진데 이어 주한 미국대사를 비롯, 외교사절과 잇따라 접촉을 가졌다.

또 김경원 전주미대사 등 외교전문가들과도 은밀한 만남을 가졌다. 이 총재는 이들에게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 등에 대해 조언을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원내 제1당 총재로서 급변하는 남북관계에 맞춰 전문적 식견과 비전을 갖추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총재가 ‘통일공부’에 열을 올리는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이 총재의 궁극적 지향점은 2002년 대선. 2002년 대권 레이스의 주요 이슈로 ‘통일 대통령’이 부각될 것으로 내다보고 미리 예습을 하겠다는 속셈이다.

이 총재의 측근들도 굳이 이같은 속사정을 감추지 않는다. 한나라당 정태윤 비서실차장은 “정상회담으로 물꼬는 터졌지만 실질적인 통일문제는 어차피 다음 정권의 몫으로 넘어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을 감안할 때 적극적으로 대처해나간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더구나 이 총재는 총선 승리에 이어 전당대회에서의 압승을 계기로 ‘부동의 야권 차기 대권후보’로서 이미지를 굳혀가다 예측불허의 ‘정상회담풍(風)’을 만나 정국 주도권을 상실했다는 비판을 듣고 있는 마당이다.

그동안 남북문제의 특성을 고려, 섣부른 비판이나 제동걸기를 조심했지만 이제는 어떤 식으로든 남북관계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의견분분한 한나라당

하지만 이 총재가 명쾌하게 남북관계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기에는 스스로 몸담고 있는 한나라당이라는 ‘그릇’의 특성상 그리 녹록치 않은 것 같다. 공공연하게 ‘흡수통일’을 주장하는 강경 보수세력부터 김대중 대통령의 통일행보에 긍정적 시각을 지닌 좌파세력까지 다양한 세력이 혼재하는 당에서 중심잡기가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실제 당내에는 김 대통령이 북한의 통일전략에 말려들고 있는 만큼 이념논쟁을 제기해야 한다는 강경론자부터 통일문제에 관한한 협조해야 한다는 지지론자까지 등장하는 등 의견이 분분하다.

국가보안법의 반국가단체 개념과 찬양·고무죄 등의 개정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최소한의 개정’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 전향적 검토가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목요상 정책위원장의 ‘헌법 제3조(영토조항) 발언취소 해프닝’. 목 위원장은 최근 당 원외지구당 위원장 연찬회에서 “헌법 제3조의 개정을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가 이 총재의 ‘제지’를 받고 취소하는 해프닝을 빚었다.

‘대한민국의 영토가 북한까지 미치고 있음’을 명시한 ‘헌법 제3조’의 개정 문제는 통일전문가들 사이에도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 보수성향의 한 핵심당직자는 “6·15 공동선언에서 남북의 통일론에 공통점이 있다고 규정한 것을 놓고 북은 연방제 통일론의 우월성이 드러난 것처럼 선동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다른 주요당직자도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김대중 대통령의 3단계 통일방안의 1단계인 국가연합 단계로 진입했다면 평화정착 등의 문제는 국제문제에서 국내문제로 전환되고 미군철수의 논리적 근거가 된다”고 우려했다.

반면 한 초선의원은 “이산가족 문제 하나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회담인데 어설프게 시비를 거는 것은 좋지 않다. 우리 당도 이제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비판적 지지입장을 밝혔다.

홍사덕 국회부의장은 “한나라당은 기본적으로 정부와 차별화할 필요가 있지만 이는 협상과정에서 북측이 군부를 협상 카드로 이용할 경우, 우리측은 야당을 카드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라며 ‘협상지렛대론’까지 펴고 있다.


그래도 아직은 보수?

하지만 이 총재는 봇물터진 통일논의 속에서도 나름대로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지만 일단 남북관계에 관한 한 자신과 한나라당의 입장을 섣불리 움직이지 않기로 작정한 것 같다.

그것은 남북 정상회담 이후 이총재가 처음으로 입을 연 6월19일 기자회견의 기조와 한국전쟁 기념일을 전후로 보인 이 총재의 동선(動線)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 총재는 19일 회견에서 “대화와 협력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며 원칙적인 지지입장만 밝힌후 곧바로 6·15 공동선언에 대한 우려와 비판을 쏟아냈다.

이 총재는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언급하지 않았고 ▲북측의 연방제 주장을 수용한 듯한 표현을 포함했으며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것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또 대북경협과 지원에 관련해서는 좀더 엄격한 상호주의 원칙을 강조하는 동시에 북한의 선(先)자구노력을 촉구했다. 결국 이날 기자회견의 기조는 향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좀더 견제와 비판의 목소리를 내겠다는 쪽으로 무게가 실려있는 셈이다.

또 24일 여의도 당사에서 납북자 가족모임 대표들과 면담을 갖고 혈육과 생이별하고 있는 이들의 고통과 애환을 위로한데 이어 한국전쟁 50돌인 25일에는 부인 한인옥씨와 함께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전몰군경 미망인회 회원 20여명에게 오찬을 베풀었다.

특히 25일 발표한 담화문에서는 “한미동맹에 기초한 연합방위전력은 우리의 안보와 한반도 평화유지의 근간이었으며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며 ‘한미동맹’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 당직자는 “작금의 통일논의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채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성급한 시각전환보다는 정상회담 성과에 대한 면밀한 검증작업과 차분한 통일논의가 중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당직자는 “남북관계의 특성상 얼마든지 역풍이 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되묻고 “야당으로서 손들어줄 것은 손들어주지만 비판할 것을 비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찌됐건 급변하는 남북관계 속에서 한나라당의 중심잡기는 대권가도에 나설 이 총재에게는 ‘또하나의 시험대’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박천호 정치부 기자 toto@hk.co.kr

입력시간 2000/06/27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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