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지역 긴급점검] 물난리 단골 임진강변 주민들 또 장마걱정

하늘에 맡긴 한심한 수해대책
“올해는 큰 비 안오기만 바래야죠. 여기서 사는게 무섭지만 돈이 없어 못나가요. 작년엔 세간살이고 뭐고 다 떠내려가고 농사까지 망쳤어요. 7월만 되면 온 집안이 물난리 걱정이에요. 아들은 ‘이번 여름엔 아예 이삿짐 센터에 짐을 맡기고 대피할 준비를 해놓자’고 얘기까지 해요.”(성평일·54·문산읍)

“최선을 다해 대비하고 있지만 안전을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최근에 보수한 제방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기존 제방은 어디가 터질지 예측불가능입니다. 1,000㎜ 가까이 집중호우가 내리고 서해만조가 임진강의 흐름을 막으면 제방에는 과부하가 걸릴 수 밖에 없죠.”(경기도 제2청사 관계자)


치유되지 않은 수해상처

경기 문산읍 주민에게 수해는 현재진행형이자 미래형이다. 1996년과 지난해 거듭된 수해로 문산의 경제는 허리가 꺾였다. 얼떨결에 당한 1996년 수해 후 돈을 대출받아 재기를 시도했지만 지난해 물난리로 이마저 절딴 난 사람이 많다.

때문에 문산읍 주민중에는 부도로 쫓기고 있는 사람이 유달리 많다. 사채시장마저 마비지경이다. 셔터를 내린채 지난해부터 영업을 중지한 모 시중은행 지점이 문산읍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상처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해는 분명히 현재진행형이다.

올해의 안전을 확신하지 못한다는 면에서 수해는 미래형이기도 하다. 올해는 다행히 비가 적게 오든지, 복구와 대책이 비교적 완벽해 수해를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996년과 1998년, 지난해까지 세차례 물난리를 만난 임진강 수계의 주민은 홍수에 가위눌린채 장마철을 맞고 있다.

장마철이 임박했음에도 마무리짓지 못한 지난해의 피해복구 작업과 수해예방 사업은 주민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문산읍 앞으로 흐르는 동문천에는 제방건설사업이 한창이다. 미군부대 캠프 자이언트 부근이다.

지난해 이곳 제방이 터져 물이 범람하는 바람에 문산읍이 물바다로 변했다. 시공당국인 서울지방국토관리청 관계자는 장마가 오기 전까지 완공을 자신하고 있다. 하천 폭과 제방 높이를 크게 확대했다며 지난해같은 불상사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철야작업을 해서라도 기한내 마치겠다는 당국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주민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공사현장 근처 봉서3리에 사는 김은길(68)씨의 이야기.

“지난 겨울과 봄에는 뭘 하다 이제 장마철이 눈 앞에 다가왔는데 공사를 한다고 난리인지 모르겠어. 게다가 다리를 놓는다고 멀쩡하게 쌓았던 제방까지 다시 허물다니 이 무슨 낭비야.” 김씨도 지난해 동문천 범람으로 집이 잠기는 피해를 입었다.


못믿는 당국의 복구공사

동문천 제방은 너댓곳 합쳐 수백m에 걸친 구간이 가제방으로 설계돼 있다. 토지보상이 타결되지 않아서다. 제방을 높이고 하천을 넓히려면 불가피하게 토지를 잠식해야 한다.

하지만 보상가 시비와 지주의 사정으로 토지수용이 여의치않았다. 일부 당국자는 이같은 주민의 태도를 놓고 “주민들이 보상병(病)에 걸려있다”고 비꼬기도 했다. 동문천 공사 관계자는 가제방으로 설계돼 하천 폭이 다소 좁아진 지역이 있기는 하지만 물의 흐름에는 큰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임진강으로 유입되는 문산천의 하상 준설공사도 아직 진행중이다. 하상의 퇴적물을 퍼내 하천에 담아낼 수 있는 수량을 늘리고 물흐름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다.

문산천 배후에 농업기반공사 파주지부가 진행중인 ‘내봉지구 배수개선 사업’은 아직 기초공사도 마치지 못했다. 물이 찼을 경우 하천으로 물을 퍼내는 배수펌프장이지만 올여름에 가동하기는 불가능하다.

동문천을 가로질러 문산읍으로 진입하는 문산교 개수공사는 기초공사 단계에 있다. 교각이 낮아 물흐름을 방해하는 바람에 지난해 수해를 가중시켰다는 지적에 따라 교각을 높이는 작업(숭고작업)을 하고 있다.

작년 12월에 착공한 이 공사는 올 12월말이 돼서야 끝날 예정이다. 현장 관계자는 장마철이 되면 기초공사용 철제 프레임을 모두 잘라내기 때문에 하수유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기존에 비해 하천폭을 두배 가까이 넓혔기 때문에 작년보다는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며 주민들의 우려를 일축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작년 여름에도 이곳에서 기초공사용 철제 프레임을 방치하는 바람에 수위를 높여 결과적으로 상류의 범람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여름 수해로 파주시, 연천군, 포천군, 의정부시 등 임진강 수계에서는 13명이 사망하고 이재민 2만6,031명이 발생했다. 이로 인한 재산피해는 공공·사유시설을 합쳐 2,560억원. 경기도 제2청사 방재관계자에 따르면 복구예산으로 총 4,303억원이 책정됐다.

수해방지 관련 사업은 복구와 예방 두가지로 크게 나뉜다. 제방을 보수·개선하고 하천에 걸친 교량높이를 높이는 작업이 복구사업이다. 저지대 배수펌프 설치 및 하천준설은 예방사업에 속한다.

이중 복구사업은 6월13일 현재 약 96% 진척상황을 보이고 있다. 도로, 교량, 하천 등 1,850개 사업중 1,732건이 준공됐고 118건이 진행중이다. 예방사업 진척률은 약 57.7%. 예방사업은 예산배정과 설계 등으로 인해 지체되는 바람에 올 3월 이후 착공된 곳도 많다.

공사중인 저지대 배수펌프장은 14개 지구에 24곳. 당국자는 일부 완공이 늦어지는 곳도 7월10일까지 배수기능만은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손발안맞는 관청, 허둥대는 대책

수해후 반년이 더 지나서야 착공한데다 장마철이 코 앞에 다가와서야 부산한 모습에 주민은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방재관계자는 수해대책이 일관적, 통합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애로사항이 많다고 밝혔다. 국가 하천은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이, 지방 1·2급 하천은 시·도·군이, 소하천은 시·군이 따로 관리를 맡는 바람에 혼선이 빚어진다는 것.

수해위험지역 교량사업도 철교는 철도청이 알아서 하고 일반 교량은 국토관리청이 맡는 식으로 이원화돼 있다. 이 관계자는 또 임진강 주변에 군작전구역이 많아 군과의 조율에도 문제가 많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물난리를 겪은 후 정부대책도 일부 개선되기는 했다. 예산배정이 앞당겨지고 땜질식 원상회복에 국한되던 복구작업도 ‘개량보수’로 개념을 확대시켰다. 하지만 임진강 수계를 종합관리하는데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경기도청의 실무자들은 “제방붕괴는 과거 보수공사를 한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항상 발생했다”며 올해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임진강 수계 물난리는 종합하천관리체계 수립과 이에 따른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언제든 되풀이될 개연성이 있다. 임진강변 수해는 더이상 ‘전례없는 집중호우’란 변명으로 통할 수 없게 됐다. 1990년대에만 세차례나 수재를 만난 이곳 주민에게 앞으로 천재(天災)는 없다. 인재(人災)와 관재(官災)가 있을 뿐이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6/28 11:02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