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조치훈의 3패 후 4연승 신화

‘조치훈’이란 이름 석자를 떠올려서 가슴이 뜨거워진다면 그는 오래된 바둑팬이다. 조치훈이란 이름을 떠올리면 ‘열혈 승부사’, ‘목숨을 걸고 바둑을 둔다’, ‘3패후 4연승’, ‘폭파전문가’, ‘휠체어 대국’, ‘불사조’ 등의 치열함을 상징하는 표현들이 동시에 떠른다.

그렇다. 치열무쌍한 승부사 조치훈은 바둑을 목숨으로 여기며 현해탄 건너에서 바둑입국을 완수한 자랑스런 대한의 바둑인이다. 지금은 세계 바둑의 흐름이 단일화해가는 느낌이라 최근에 바둑을 즐기는 팬이라면 조치훈의 성가에 대해 솔직히 좀 과소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불과 10년전에 대하드라마처럼 일구어낸 혼인방전에서의 3패후 4연승은 세계 바둑사상 그 전례를 찾기 힘들만큼 센세이션을 일으킨 대역사였다.

3패후 4연승의 신화. 말 그대로 하자면 3번을 연거푸 지고난 다음 4번을 연달아 이겨낸 도전기의 명승부를 일컬을 뿐이다.

그러나 막판에 몰린 핀치 속에서 4번을 기적처럼 살아났다고 해서 그것을 신화라고 놀란다면 조치훈의 승부인생을 채 10분의1도 제대로 못 본 주마간산(走馬看山)격이라 할 것이다. 어쩌면 조치훈은 인생 자체를 드라마틱하게 살아왔다고 할 것이다.

한글도 제대로 깨치지 못한 6세의 고사리 손으로 현해탄을 건너 물 설고 낯 설은 땅에 정착한 소년 조치훈. 500여 일본 프로기사들 중에서 군계일학(群鷄一鶴)으로 올라서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5년 정도지만 그들과의 무수한 단련 속에서 가슴까지 차돌처럼 단련된 인간 조치훈.

혹자는 그가 일본인 아내와 결혼했다 하여 아직도 귀화한 일본인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고, 그가 본의 아니게 일장기를 달고 나온다고 하여 아예 한국사람 취급을 안 하는 경우까지 있지만 그것은 철저한 무지애서 나온 아이러니일 뿐이다.

조치훈은 일본 바둑사의 거의 전 페이지를 장식한 살아있는 역사다. 아직 40대 중반으로 그 역사를 계속 새로 쓰는 중이지만 실제로 500년의 일본 승부바둑에서 조치훈이 섭렵하지 않은 기록은 거의 없다.

최연소 입단기록(11세)은 일본 바둑상황에서는 결코 깨질 수 없는 기록이며 최다 타이틀 획득, 최다 7번기 진출, 최다 7번기 승리, 최다 상금 등 성적으로서 해낼 수 있는 기록은 모조리 조치훈이 갈아치웠으며 대삼관왕 3연패, 대4관왕 1차례, 혼인방전 10연패 등 감히 일본 기사들은 상상도 하지 않았던 무수한 진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운다. 그래서 조치훈의 또하나의 별명이 ‘기록제조기’다.

조치훈이 조치훈으로서의 이름을 한국인의 가슴에 확실히 새긴 건 역시 1인자 시절의 무수한 왕관이 아니라 잠시 불가피하게 겪어야했던 시련의 시간에 보여 주었던 인간승리가 아닐까 한다. 이른바 필생의 라이벌 고바야시 고이치와의 혼인방전 쟁기(爭棋).

1990년대 초반 일본의 명예 혼인방을 둘러싸고 고바야시 고이치와 벌였던 쟁탈기는 세계 바둑인, 아니 오히려 일본 바둑팬에게 가슴 저미는 감동을 주었다.

10년전 전대미문의 휠체어 대국을 통해 일본의 악습을 상대로 불굴의 한국인임을 과시한 조치훈이 불사조가 돼 일본 천하를 일본인에게 맡기려던 1990년대 초반의 일본 바둑계를 또한번 경악시키며 3연속 고바야시의 도전을 극적으로 물리치며 다시금 일본 1인자로 올라서게 된다.

승부의 세계는 흔히 그렇듯 1인자의 권좌를 건네 준 이가 다시금 1인자로 복귀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특히 바둑계에선 한·중·일을 통틀어도 권좌에서 물러나 다시 복귀한 예는 조치훈이 유일하다. 더욱이 그렇게 센세이션하게 복귀할 예는 없다.


<뉴스와 화제>

· 마인드스포츠 올림피아드 한국서 열린다

한국 두뇌들의 축제의 장이 될 제2회 마인드스포츠 올림피아드 한국대회가 7월1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코엑스 메가웹스태이션에서 치러진다.

(社)마인드스포츠올림피아드가 주최하고 (株)엠에스오코리아가 주관하는 이번 대회는 PC게임 스타크래프트, 로그스피어와 함께 바둑 장기 체스 오델로 등 10개 종목으로 나뉘어 온라인 통신대국으로 치른다.

일반부와 학생부로 나눠지는 바둑계에서는 100만원의 우승 상금이 주어지고 8월 영국에서 개최되는 제4회 MSO세계대회 한국대표로 파견된다.

지난해 한국에서 처음 열린 올림피아드에서 한국은 금3, 은3, 동1개로 종합 10위에 올랐는데 19줄 바둑에서 장시영·윤사련 5단이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차지했다. 참가신청은 엠에스오코리아 사이트(www.insokorea.com)로 하면 된다.

진재호 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0/06/28 16:51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