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의술을 남기고 허준은 떠났다

재미·감동에 신드롬까지, 역사적 논쟁 불 지펴

“이제 무슨 재미로 텔레비전 보냐?”(회사원 김남기씨) “‘허준’은 근래보기 드문 재미와 감동이 있는 드라마였는데 끝나니까 아쉽다.”(대학생 김주현씨) “인식부족이었던 한의학에 자부심을 심어준 작품이었다.”(한의사 박정식씨)

의약분업을 둘러싸고 생명을 담보로 하는 의사들의 폐업이 전국을 강타한 가운데 27일 64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 MBC 월·화 드라마, ‘허준’에 대한 아쉬움을 표명하는 시청자들의 소감들이 PC통신 등을 통해 쏟아지고 있다.

광해군의 사랑을 받던 허준은 선조를 살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귀양을 가게되고 유배지에서 역병에 걸려 신음하는 백성들을 치료하다 장엄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허준(전광렬).

그리고 평생을 옆에서 허준을 절절하게 사랑해왔지만 한마디 표현조차 못한채 가슴앓이 해온 예진(황수정). “그분은 내의녀님을 사랑하셨습니까?”라는 어린 의녀의 질문을 받고 “내가 죽어 땅속에 묻히고 흐르는 물이 되어 만난다면 그땐…그땐, 꼭 여쭈어봐야겠다.” 지리산 자락에 묻힌 허준의 무덤을 바라보는 예진(황수정)의 애절한 대사가 ‘허준’의 대미를 장식했다.


월·화 밤엔 TV앞에 모여…

방송되는 7개월여 동안 ‘허준’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엄청났고 급기야는 허준 신드롬까지 나타났다.

지난해 11월 22일 첫회를 방송한 ‘허준’은 이은성원작의 ‘소설 동의보감’ 을 원작으로 한 최완규 극본의 작품. 조선시대 명의 허준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 ‘허준’은 흑백TV 시절이던 1976년 MBC일일 드라마‘집념’과 1991년 ‘동의보감’에 이어 세번째 드라마화 한 것이다.

물론 이전의 두 드라마도 당시 많은 인기를 끌었지만 이번 작품처럼 엄청난 시청자의 관심 수준은 아니었다.

첫회 21%의 시청률을 보인 ‘허준’은 불과 방송 한달만에 40%대에 진입하더니 4월 24일 63.5%를 기록, KBS‘첫사랑’(65.8%), MBC‘사랑이 뭐길래’ (64.9%), SBS‘모래시계’(64.5%)에 이어 역대 시청률 4위를 차지했다. 시청률 60%이상을 넘긴 횟수로 보면 8회를 기록해 MBC‘사랑이 뭐길래’(20회)에 두번째.

특히 밤10시에 방송된 ‘허준’은 드라마의 주시청자층인 성인 여성들뿐만 아니라 연속극을 평소에 보지 않던 성인 남성들도 안방으로 끌어들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초등학생을 비롯한 10대들도 열렬한 ‘허준’팬으로 등장해 학교에서 ‘허준’을 보지 않으면 왕따를 당하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또한 MBC 인터넷 사이트의 ‘허준’ 접속건수가 하루 평균 1만3,000여건에 달했고 ‘허준’ 대본 조회건수도 3,000여건을 기록하는 등 과히 ‘국민 드라마’라는 명성을 구축하기에 충분했다.


극적이고 매력적인 인물설정

‘허준’은 왜 그렇게 인기가 있었던 것일까? 우선 허준이라는 인물 자체가 극적이고 매력적인데 있다. 드라마‘허준’은 허준이라는 인물을 통해 사람들에게 잠재된 성공에의 욕망과 인간의 얼굴을 한 영웅주의를 교묘히 자극했다.

드라마속 허준은 서얼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며 성공의 계단을 하나씩 밟아올라간다. 그냥 상승하는 것이 아니다. 주변 인물과 경쟁자의 무자비하고 간교한 탄압으로 눈물겨운 시련을 겪는다.

명의를 향해 나가는 어려운 과정에서도 정도를 걸으며 소외계층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지순한 여인에 대한 사랑의 끈을 놓지 않는다. 부정과 권모술수로 권력과 금력을 잡는 사람들이 많고 환자의 생명보다 돈벌이에 관심이 많은 의사들이 존재하는 현실에 살고 있는 시청자들은 드라마속 허준을 보며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또한 드라마의 골격을 이루는 선과 악의 대립구조와 절망과 극복이라는 순환구성은 시청자들이 가장 접근하기 쉬운 드라마 방식인데 ‘허준’ 은 이 두가지 구조를 토대로 극을 전개해나갔다. 사랑과 의학공부 과정에서 선과 악으로 대변되는 허준과 유도지(김병세), 두 사람은 갈등을 증폭시키면서 시청자의 관심을 고조시킨 것이다.

사극으로선 예외적으로 빠른 템포로 진행시켜 요즘 시청자들의 취향에 맞추는 전략을 구사한 것도 주효했다. 한회에 좌절과 극복이라는 순환구조를 3~4회정도 구사해 역동성을 부여함으로써 극적 재미를 배가시켰다.

매회 제공되는 의학정보도 시청률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 일반 생활에서 쉽게 응용할 수 있는 한의학 정보를 전달해 건강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기도 했다.


치솟은 몸값, 방송늘이기 병폐도

물론 최완규의 탄탄한 극본, 이병훈의 치밀한 연출 그리고 출연진의 연기가 조화를 잘 이뤘다.

특히 주연과 조연들의 연기 화음은 근래보기 드문 것이다. 연기력이 약한 허준역의 전광렬과 예진역의 황수정 그리고 허준 아내역의 홍충민 등 주연들의 부족함을 노련한 조연들의 연기로 채워나갔다. 허준의 스승유의태의 이순재, 임오근역의 임현식, 허준 어머니역의 정혜선, 의녀역의 최란 등 조연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그러나 이러한 인기 요인에도 불구하고 ‘허준’은 드라마 구조를 너무 단순화시켜 시청자들로 하여금 쉽고 단순한 드라마만을 선호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문제점도 노출시켰다.

또한 인기가 올라가자 무리하게 20회를 연장해 극적 긴장성이 이완되고 작품성을 저하시키는 우리 방송의 고질적인 병폐도 답습했다.

드라마‘허준’은 드라마의 성공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에 허준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다. 방송되는 동안 허준과 동의보감 관련 서적이 200여종이 쏟아져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는 출판열풍을 몰고 왔다. 또한 한의학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을 개선시키면서 한의원이 때아닌 호황을 누린 것을 비롯해 한방치약 매실 목초액 등 한방관련 상품들이 허준효과를 톡톡히 봤다.

가장 큰 수혜자는 연기자들. 사극 출연자는 광고모델 기용을 꺼리는 경향을 깨뜨리며 전광렬 황수정 임현식 등은 각종 광고에 출연해 3억~15억원이라는 엄청난 수입을 올렸다.

이밖에 4·13총선 당시에는 입후보한 사람들이 허준을 자처하며 선거운동에 이용했으며 허준 유머시리즈가 탄생하고 ‘허준’이라는 상호의 카페 다방이 속속 등장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허준을 둘러싼 역사적 논쟁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드라마 ‘허준’이 거둔 큰 수확이다.

김호박사는 드라마 방송도중 출간한 ‘허준의 동의보감 연구’를 통해 유의태가 허준의 스승이 아니라 100여년 후대 인물이라는 점과 양예수는 허준을 탄압한 인물이 아니라 의학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는 주장을 제기해 실존인물 허준의 역사적 사실 논쟁에 불을 당겼다. 출생지와 성장지, 과거를 통한 입격여부 등 허준을 둘러싼 역사적 진실에 대한 논쟁은 그후 끝없이 이어졌다.


교육적 기능, 높이 살 만

이에 대해 작가 최완규는 “드라마를 시작하면서 작가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이 원작이라고 밝혔다. 드라마 내용과 전개는 일정한 부분은 사실이지만 대부분 작가의 상상력을 토대로 한 것이며 시청자들과 학계에서 극본과 사서(史書)와 구분해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의학계와 학계는 드라마 사상 처음으로 조선시대 의녀의 존재를 알리는 등 ‘허준’의 교육적 기능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높게 평가했다. 조선시대 의녀는 간호뿐만 아니라 여자 죄수를 수사하는 직책이라는 것을 시청자들이 ‘허준’을 통해 처음 안 것이다.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며 사회적 신드롬까지 낳은 ‘허준’은 이제 끝났다. 드라마가 우리 사회의 문화의 흐름을 주도하는 장르라는 것을 새삼 일깨워준 ‘허준’이었다.


‘허준’작가 최완규

마지막 64회 극본을 쓰고 6월 19일 만난 기자를 만난 최완규(35)는 “멀리 도망가서 원없이 술을 마시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술고래지만 ‘허준’을 준비하고 집필하는 동안 술을 마시지 못했기 때문.

“기대가 큰 만큼 멋진 마무리를 하고 싶었는데 그냥 생각했던 대로 했다”고 담담하게 ‘허준’마무리를 했다.

그는 드라마 ‘허준’의 성공을 ‘소설 동의보감’작가 고(故) 이은성씨에게 돌렸다. “워낙 소설 자체의 드라마 구조가 탄탄해 재미있었다.”

그는 방송내내 일었던 역사왜곡 논쟁에 대해 “모르고 시작했던 것도 아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드라마 ‘허준’이 허구라는 것을 밝혀왔다. 앞으로 학자들과 드라마 제작진이 모여 드라마와 역사적 사실의 관계를 조명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1991년 베스트극장 단막극으로 출발한 최완규는 ‘종합병원’‘간이역’‘야망의 전설’등으로 입지를 굳히고 ‘허준’으로 중견작가로 거듭났다.

배국남 문화부기자

입력시간 2000/06/28 19:28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