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정신에 도전한 화가들의 반역

■ 천국을 훔친 화가들(노성두 지음/사계절 펴냄)

지적활동이나 예술은 사회적 배경을 기반으로 이뤄진다.굳이 맑스같은 유물론자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류의 사상이 사회변화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너무나 자명하다. 특히 감수성이 뛰어난 학자나 예술가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중세 말의 유럽대륙에는 종교개혁과 봉건제의 몰락, 그리고 신대륙의 발견 등 거센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쳤다.

로마 가톨릭 교회와 신성 로마 제국의 굳건했던 위상은 서서이 허물어지고 그 자리를 도시국가가 차지했으며, 뒤이어 앙시엥 레짐(구체제)가 무너지고 각 민족언어가 활기를 띠었다. 역사가들은 중세의 종교적 분위기와는 판이하게 다른 이 시대를 ‘르네상스’라 불렀다.

변화의 상징이 된 르네상스는 학문과 예술 분야에서 인문주의를 다시 꽃피웠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인문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 인문주의자들은 중세의 종교적 생활을 벗어던지고 인간과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다. 르네상스인들은 중세를 거치면서 상실된 인간 정신과 지혜의 부활을 고대했다.

인문주의 정신이 가장 두드러지게 표현된 곳이 미술분야.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으로 대표되는 르네상스 회화는 인문주의 정신을 가장 명확하고 쉽게 보여줬다.

앞선 시대의 화가들이 단조롭고 종교적 테두리 안에 머물렀던 것과는 달리 인간과 인간정신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을 내놨다. 그들은 중세에는 도저히 거역할 수 없었던 성서와 종교적 계율의 울타리를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천국을 훔친 화가들’은 르네상스 화가들의 이러한 반역을 정감어린 눈으로 탐구하고 있다. ‘바벨탑은 무너지지 않는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더 행복하다’ 중세에 이런 말을 외치고 다녔다면 이른바 ‘마녀사냥’의 대상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천국을 훔친 화가들은 마녀사냥을 개의치않고 신의 정신에 도전했다.

천국을 훔친 화가들의 한 사람인 페라리. 그가 16세기에 그린 ‘아담과 하와’에서는 하느님의 저주로 고통받는 인간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하담과 하와는 에덴동산 바깥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

아담은 즐거운 표정으로 얼굴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는다. 만면에 노동의 기쁨을 가득 담은 채. 하와도 행복의 겨운 미소를 머금고 있다. 아담과 하와, 그리고 두 자녀의 모습은 그들을 추방시킨 하느님에게 ‘당신없어도 잘 살 수 있다’는 무언의 반항을 담고 있다.

페라리는 성서의 이야기를 뒤집어 신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켰다. 화가의 상상력이 일찍이 아무도 본 일이 없는 ‘에덴동산’을 땀흘려 일하는 일상속에서 찾아낸 것이다. 다른 화가들도 마찬가지다. 르네상스시대의 화가들은 기존의 틀을 깨는 발상의 대전환을 통해 새롭고 다양한 성화들을 탄생시켰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천국은 성서에 기록된 천국이 아니다. 화가들이 상상을 통해 훔쳐본 천국이다. 성서의 틀을 거부하고 붓의 상상력을 따르는 화가들의 행복한 천지창조 과정을 쫓아간다. 이를 통해 르네상스 시대의 사회적 혼돈과 잔존하는 중세 교회의 권위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예술적 창조에 혼을 바친 화가들의 땀을 찬찬히 살필 수 있다.

저자 노성두씨는 그동안 ‘문명 속으로 뛰어든 그리스 신들’ ‘보티첼리가 만난 호메로스’ 등 서양 고전 미술의 재해석에 몰두해온 젊은 학자.

모든 소재가 성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어 성경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은 다소 따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 중세의 엄격했던 기독교를 벗어나 창의라는 날개를 달기 시작한 화가들의 재치와 열정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송기희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7/04 16:15


송기희 주간한국부 gihu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