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경주 남산

신라의 시작과 끝이 살아있는 불교 박물관

경주 하면 떠오르는 것이 불국사와 석굴암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신라 불교 예술의 정수이다. 너무도 유명해서일까. 요즘 불국사와 석굴암을 찾으면 그리 흥겹지 않다. 움직일 때마다 돈을 내야 하는 짜증, 절간을 시장 바닥으로 만들어버리는 단체 관광객들의 추태…. 모처럼 의미있는 여행을 기대했던 이들은 피곤에 지친다.

경주 남산은 ‘관광지 경주’가 아니라 ‘답사지 경주’의 정수로 꼽을 만한 곳이다. 산 전체가 살아있는 불교 박물관이다. 길을 돌면 부처를 만나고, 바위를 타고 넘으면 석탑에 닿는다. 절터가 130여 곳, 석불과 마애불이 100여 체, 석탑과 폐탑이 71기에 이른다. 13개의 보물과 12개의 사적, 10개의 지방유형문화재가 밀집해 있다.

남산의 봉우리는 높지 않다. 468㎙의 금오산과 494㎙의 고위산이 최고봉으로 서울 남산의 두 배 쯤 되는 규모이다. 그러나 이 산은 옛 신라 젊은이들의 심신 수련장이자 백성들이 믿고 따랐던 신앙지였다. 신라의 시작과 마지막도 남산에서 이루어졌다. 신라의 개조 박혁거세가 남산 기슭에서 태어났고 견훤이 경애왕을 쳐 신라를 속국으로 만든 현장인 포석정이 이 산의 끝자락에 있다.

그래서인지 경주시민들의 남산 사랑은 예사롭지 않다. 휴일은 물론이고 평일 이른 아침에도 산을 오르는 시민들이 많다. 부지런히 걸으면 정상까지 왕복 1시간 30분. 아침운동으로 그만이다. 그들은 단순히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다. 골짜기를 돌아 부처를 만나면 합장하며 예를 갖추고, 탑에 닿으면 몇바퀴를 돌며 그날의 소망을 빈다.

경주 남산의 골짜기와 능선은 약 40여 곳. 삐죽삐죽 솟은 바위를 포함해 봉우리가 180여개이다. 답사 코스만도 70여 가지에 이른다. 골마다 펼쳐진 문화유적을 살피는데에는 1주일도 모자란다. 남산을 연구하는 교사들의 모임인 신라문화원(054-774-1950)이 제시하는 코스를 따르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삼릉과 용장을 연결하는 코스가 가장 인기가 높다. 배리 삼불사에서 시작해 산기슭을 따라 냉골의 유적을 답사하고 금오산 정상에 오른 뒤 용장계곡으로 하산한다. 신라시대의 석불을 시대별로 모두 만날 수 있다. 냉골의 석조여래좌상, 하늘에서 하강하는 모습의 마애관음입상, 남산에서 유일하게 고려 때 만들어진 마애여래좌상은 물론 거대한 바위산을 배경으로 한 용장사 삼층석탑등이 이 코스에 포함돼 있다. 오르는 길은 평탄하지만 용장골로 내려오는 길은 너덜지대(바위지대)가 많아 조금 위험하다. 음료와 행동식을 준비하고 반드시 등산화를 신어야 한다.

그 다음이 부처골~칠불암 코스.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까지의 불교미술을 만난다. 신라 최초의 불상으로 알려진 감실불상, 높이 10㎙ 둘레 40여㎙의 거대한 바위에 부처의 세계를 환상적으로 조각한 탑골 부처바위 마애조상군, 삼국통일의 위업을 기리는 통일전 등을 구경할 수 있다. 신라 마애불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칠불암 마애불상군도 이 코스에 포함돼 있다.

남산의 기슭을 자전거를 타고 빙 둘러보는 것도 좋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와 왕비, 남해, 유리, 파사왕의 무덤이 한 곳에 모여있는 오릉을 비롯해 초기 왕궁터인 창림사지, 풍만한 아름다움이 으뜸인 삿갓골 석조여래입상등을 돌

아볼 수 있다. 경주역, 터미널, 시청, 대릉원 주차장 등에서 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

권오현 생활과학부차장

입력시간 2000/07/04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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