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여다보기] 직접 하는 사회

사무실 보이스 메일에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집에서 온 전화인데 “지하실 수도배관에서 물이 새니 빨리 집에 오라”는 것이다. 바로 전화를 걸어서 적절히 응급조치를 취하도록 해놓고 집에 들어갈 때 우리나라로 치면 철물점 같은 곳에 들러 수리용 동파이프와 기타 필요한 물건을 사 가지고 들어갔다.

집에 와 보니 예상했던 대로 오래된 수도배관이 수압을 견디다 못해 생긴 조그마한 구멍으로 물줄기가 세차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배관의 메인 밸브를 잠그고 전체 배관의 물을 빼낸 다음 구멍이 난 곳의 좌우 1cm 정도를 잘라낸 다음 연결부위를 사포나 강철 브러시 등으로 깨끗이 닦아내고 플럭스를 바른 후 수리용 파이프를 끼우고 땜질을 했다. 대체로 걸린 시간을 따져보니 한시간 전후였다. 맨처음 했을 때는 두세 시간 걸렸던 것을 생각하며 ‘이제는 나도 많이 숙달되었구나’ 하면서 스스로 대견해 했다.

미국에 살다보면 집 안팎을 관리하기 위하여 온갖 일을 다 잘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아주 부자이든지. 수도배관이 새는 경우라든지 하수구가 막힌 경우 전문적인 배관공을 부르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대개는 직접 고쳐야 한다. 전기배선도 마찬가지다.

전화선 잭이나 전기 콘센트를 새로 설치하는 정도는 직접 하는 것이 보통이다. 벽의 페인트 칠도 직접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벽지나 목욕탕의 타일도 직접 붙인다. 식기 세척기나 garbage disposer도 고칠 줄 알아야 하며, 부엌의 캐비닛 문이나 손잡이는 당연히 손볼 수 있어야 하고 캐비닛을 직접 다는 경우도 있다.

뿐만 아니라 자동차 엔진오일도 갈 줄 알아야 하고 컴퓨터의 메모리 업그레이드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이 미국에서는 원한다면 무엇이든지 자신이 직접 할 수 있도록(Do it yourself) 도와주는 시스템이 정착돼 있다. 서점에 가면 자신이 직접 하는 방법에 관한 책이 벽면 한가득 쌓여 있다.

주요 상가에 있는 자동차 용품점에는 엔진 오일부터 점화 플러그, 배터리, 연료 펌프나 라디에이터, 심지어는 엔진까지도 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것은 미국에 돌아다니는 수많은 종류의 차량에 대한 수리법 내지 구조도가 적혀 있는 매뉴얼이 비치돼 있어 직접 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홈 디포’(Home Depo)라는 창고식 매장은 집과 관련된 모든 것을 다 파는 곳인데, 그 매장에 있는 물건만 있으면 집 한채는 거뜬히 지을 수 있을 정도로 수도꼭지나 변기, 나사에서부터 목재, 철근, 시멘트 및 이들을 다룰 수 있는 공구까지 모든 것을 완비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일반인이 어떻게 집 안팎의 간단한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곁들인 서적도 수십 종이 비치돼 있다.

미국인들 사이에 직접 하는 것이 성행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첫째는 높은 인건비 때문일 것이다. 자동차 브레이크 패드 한번 가는데 십만원 가까운 돈이 드니 웬만큼 손재주 있는 사람은 직접 하려고 한다. 둘째로는 성취감을 들 수 있다.

자신이 직접 계획하고 설계하여 무엇인가를 완성해 일상생활에 사용할 수 있다면 이를 볼 때마다 뿌듯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가끔 친구 집을 방문하면 “이 덱은 내가 직접 설계하여 만든 것”이라고 자랑하는가 하면 “마당의 아이들 놀이터를 만들어 주었다”, “이 벤치는 내가 만들었다”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버지의 날 미국 아버지들이 원하는 선물 목록 중에는 공구 세트와 작업장이 항상 수위에 들어있다.

흔히 미국의 벤처기업은 차고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 미국 가정의 차고를 가보면 온갖 공구와 자재들이 쌓여 있다. 미국의 벤처 정신은 ‘Do it yourself’정신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박해찬 미 HOWREY SIMON ARNOLD & WHITE 변호사

입력시간 2000/07/0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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