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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스타열전(18)]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사장(上)

반도체 공장이라면 먼지 하나없이 아주 깨끗한 클린 룸과 그 속에서 우주인 같은 모습으로 일하는 근로자들이 떠오른다. 그런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깨끗한 게 반도체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어렵게 찾아간 반도체 전(前) 공정장비인 화학증착(CVD)장치 전문업체 주성엔지니어링도 외관부터 깔끔했다.

경기도 광주군 오포면 능평리 일대에 흩어져 있는 공장들과는 첫인상부터 다르다.

안으로 들어가려면 슬리퍼로 갈아신어야 한다. 공장이 아니라 일반 사무실도 마찬가지다. 직원이든 손님이든 사장이든 예외는 없다. 슬리퍼로 갈아신고 카페트 감촉을 느끼며 악수를 나누니 어쩐지 어색하다. 슬리퍼가 주는 어색함 속에서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사장을 만났다.

영원한 엔지니어. 누군가가 그에게서 잘 나가는 벤처기업 사장의 면모를 찾지 못하자 그렇게 불렀다. 사실도 그렇다.

국내 기술자들이 고가의 반도체 장비에 손도 못대던 1980년대에 그는 다니던 회사에서 일부러 기계에 고장을 내가며 악착같이 기술을 배운 현장 엔지니어 출신이다. 수줍은 표정으로 말도 조용조용하게 한다. 말없는 기계와 오랫동안 씨름하면서 언제 남들 앞에서 큰소리나 한번 질러보았을까 싶다.


"CVD 말고는 아는게 없어요"

그러나 그에게는 반도체에 대한 집념이 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물으면 “CVD 장치의 기술개발, 생산에 몰두하느라 다른 데 신경쓸 틈이 없어서 아는 게 없다”고 솔직하게 답변할 정도.

그는 오로지 CVD 하나에만 자신의 삶을 걸고, 땀과 열정을 쏟아부은 프로 엔지니어다. 그런 만큼 주성엔지니어링 제품에 대한 자부심만을 알아줘야 한다.

“국내의 크고 작은 20여개 반도체 장비업체중 기술력과 제품 경쟁력은 가장 뛰어나다고 자부합니다. 자체 기술로 CVD를 개발해 양산체제까지 갖추고 전세계 반도체 선진국에 공급하니까요.

국내 고객은 삼성전자와 현대반도체(옛 LG반도체) 정도지만 해외에는 우리 기계를 쓰는 곳이 20여곳이나 됩니다. 그것도 미국 일본 대만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반도체 회사들이죠.” 주성엔지니어링이 일반인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일반 소비자를 상대하지 않는데다 해외에서마저 기술력을 인정하고 찾아오니 광고를 할 일이 없다.

주성엔지니어링의 자부심을 알려주는 일화 한가지. 주성엔지니어링은 1999년12월 역사상 최고의 공모가인 32만원(액면가의 64배, 액면가는 5,000원)에 코스닥에 상장했다.

황사장은 그때 코스닥 등록 1주년이 되는 시점에서 주가가 공모가 아래로 떨어지면(몇가지 전제조건이 있지만) 코스닥 시장에 유통중인 주식을 모두 32만원에 되사가는 스톡 바이백 프로그램(주식리콜제)을 검토했다.

리콜제가 현행법상 불가능하다는 법률검토 결과때문에 유가증권신고서상에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그 마음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니까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섰지, 가능했다면 끝까지 추진했을 겁니다. 자기의 기업가치에 대해 그 정도 자부심도 없다면 경쟁력을 더 키워 국민앞에 내놓아야 도리죠. 아니면 처음부터 기업가치를 낮추든가.”


수출 비중 큰 '알짜매출'

주가는 그때보다 큰 폭으로 떨어진 상태지만 황사장은 여전히 당당하다. 도대체 주성엔지니어링이 어떤 회사길래 이렇게 큰소리를 칠까. 1995년 회사를 세운 첫해 매출은 16억원, 1996년에는 83억원, 1997년 330억원, 지난해 600억원 등으로 급상승했다. 수출비중이 35%에 달하니 매출도 ‘알짜매출’이다.

주력상품은 반도체를 만드는 장비인 유레카 2000. 실리콘 웨이퍼(기판) 위에 절연체, 전도체 등의 특수막(필름)을 화학적으로 입히는(증착·蒸着) 기계다. 대당 가격은 30억-40억원 정도.

유레카 2000의 경쟁력은 저압화학증착(LP CVD) 유기금속화학 증착(MO CVD) 플라즈마화학증착(PE CVD) 등 다양한 증착공정을 한 기계내에서 가능하도록 한 집적장비라는데 있다.

“전 공정장비를 만들겠다고 하니 주위 사람부터 말리고 나섰어요. 세계적 장비업체들이 막강한 자본과 기술력으로 전 공정장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 벽을 뚫고 들어갈 수 있겠느냐는 거죠. 맞는 말입니다. 반도체 장비란 워낙 하이테크한 분야라 조그만 장비 하나만 잘못돼도 모든 공정이 헝클어지기 때문에 반도체 업체가 새 장비 도입을 꺼리는 게 당연하죠.”

반도체 공정은 통상 세부분으로 나뉜다. 실리콘 웨이퍼 위에 필름을 증착해 원하는 회로를 만드는 전공정과 그후 실리콘 웨이퍼를 가공하는 후공정, 그리고 측정분석하는 공정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전 공정분야에서 대기업은 절대로 모험에 나서지 않는다. 그럼에도 주성엔지니어링이 그런 대기업으로부터 주문을 따내고, 일취월장하는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황사장이 지나온 삶의 궤적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일부러 기계 고장냈다 고쳐

동양공고와 인하공전, 인하공대를 나온 황사장은 1995년까지 외국 반도체 장비업체 ASM 한국지사에서 근무했다.

그의 꿈은 반도체 분야의 최고 엔지니어. 그러나 아이디어를 내면 외국기술자들은 ‘네가 뭘 아느냐’는 식의 핀잔만 주기 일쑤였다. 오기가 생겼다. 그는 주머니 돈을 털어 자신의 아이디어로 특허를 신청했다.

그때만 해도 한국인 기술자는 반도체 장비에 손도 대지 못했다. 장비를 팔면 본사에서 기술자들이 와서 설치하고 유지·관리·보수했다. 황사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1986년 ASM에 들어갔더니 하는 일이라는 게 본사에서 나온 기술자들 뒷바라지였어요. 한 3개월쯤 지나니까 ‘이게 아니다’ 싶어요. 그래서 기술자들이 쉴 때 일부러 기계에 사소한 고장을 내 기회를 보았어요.”

반도체 장비는 조그만 나사 하나만 잘못돼도 올스톱이다. 그만큼 정밀한 기계다. 사소한 고장이라지만 반도체 업체에서 보면 당장 일을 못하게 되니 난리가 났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황사장이 “내가 한번 해보겠다”고 나서 어물쩍 고장난 부분을 고쳤다.

그후부터 황사장은 마음대로 기계를 만질 수 있는 특별대우(?)를 받게 됐다. 황사장은 또 삼성, LG 반도체 연구소를 오가며 연구원들과 신뢰를 쌓았다. “좋은 분들이었어요. 새 아이디어를 실험해 보려면 각종 고가의 장비가 필요했는데 연구원들이 기꺼이 빌려주었습니다.”

그때 인연을 맺은 사람이 현재 황사장을 그림자처럼 보좌하는 이영곤 영업이사다. 한국에서 고전을 면치못하던 ASM이 어쩔수 없이 한국에서 철수를 결정하자 황사장은 독립을 결심했다. 1993년 여름이었다. <계속>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jinhlee@hk.co.kr

입력시간 2000/07/05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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