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칼럼] 한여름의 골프

한 시즌이 6, 7개월에 불과한 우리나라의 여건상 한여름은 그 중심에 위치하면서 어쩌면 놓치고 싶지 않은 골든 피어리어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달 가까이 계속되는 장마와 그 뒤를 잇는 불볕더위는 골퍼들의 안테나를 종긋 세우게 하고 운 좋게 출발한 라운딩에서 심심지 않게 당혹스런 일을 겪게 한다.

우선 비가 많이 내리는 상황에서 골퍼는 평상심을 발휘하기가 매우 어렵다. 주의력이 떨어져 상황판단이 어렵고 플레이의 리듬이 매우 빨라진다. 우산 쓰랴, 그립 닦으랴, 장갑을 꼈다 벗었다, 모든 것이 산만하다.

당연히 치밀하고 정교한 샷은 구사하기 어렵다. 그 어떤 매커니즘보다 더 릴랙스해지는 ‘마음의 평정’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비가 많이 내리는 상황에서는 떨어진 볼이 많이 구르길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스푼(3번 우드)으로 평소 200야드를 보낸다면 적어도 10 내지 20야드의 거리 손실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180야드를 캐리로 보내는 크리크(5번 우드)를 선택하는 것과 결과로 보아서 다를 것이 없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비에 흥건히 젖어있는 잔디에서는 볼 밑으로 정확하게 클럽헤드를 넣기가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일 뿐 아니라 일단 잔디와 접촉이 되면 물기의 저항으로 채가 잘 빠져나오지 못한다. 따라서 로프트가 작은 스푼이나 롱아이언의 선택을 고집하는 것은 그리 현명하지 못한 생각이다.

젖은 그립은 미스 샷을 유발하기 십상이다. 마른 수건을 두, 세장 준비하여 수시로 닦고 장갑도 여분의 것을 몇 개 준비해야 한다. 장갑은 통풍이 잘되는 합성피혁이 좋고 그립마저 흠뻑 젖었을 때는 면장갑을 사용해도 좋다. 아무리 비가 많이 오는 상황이라도 에티켓은 잘 지켜야 한다. 허리춤에 긴 목욕용 수건을 찬다든지 바지단을 양말 속에 집어넣는 등의 패션은 보기에 별로 좋지 않다.

장마가 끝나면 곧이어 불볕더위가 시작된다. 나이가 많거나 심장질환 등 건강이 좋지 못한 사람은 한낮 라운드를 자제해야 한다. 라운드 20분쯤 전에는 자외선 차단제를 노출부위에 바르고 9홀 후에 한번 더 발라준다. 과도한 수분손실에는 충분한 물의 섭취가 필요하다.

최근에는 그늘집마다 정제 소금이 준비되어 있어 무심코 몇 알씩 집어삼키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수분공급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소금을 먹는 것은 오히려 탈수를 더욱 조장한다. 요즈음 많이 나와있는 이온음료는 우리의 체액과 농도가 같으므로 빠른 흡수가 가능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행여 라운드 도중 열사병으로 쓰러지는 사람을 보면 조이는 부분의 옷을 풀고 빠른 시간내 체온을 떨어뜨리는 것이 중요하다. 전신을 주무르는 것보다 냉탕에 들게 하는 것이 바른 응급조치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지금까지는 금기로 되어있던 골프장내 반바지 착용이 혹서기 동안만은 허용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여기에는 골프장마다 정한 일정한 복장의 기준, 즉 스타킹 착용의 의무 등을 골퍼들이 충실히 따라야 할 것이다.

작년에 어떤 분이 소형 선풍기가 부착된 모자를 쓰고나와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든 적이 있었다.

코미디 소품 같다는 말에 그분은 효과가 만만치 않다고 하였는데 그 모자에 달린 앙증맞은 선풍기 덕이었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가장 좋은 스코어를 기록했었다. 작지만 성의있는 준비를 하는 사람을 주위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면 골프의 재미는 더해갈 것이다.

박호규 골프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0/07/05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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