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 두배, 재미도 두배 "패러디가 판친다"

광고·TV ·인터넷에 '풍자' 홍수, 새로운 유행어 양산

바야흐로 패러디 세상이다. 풍자적 시문이나 변곡을 뜻하는 문화·예술의 전문용어인 패러디. 이제는 일반용어가 돼버린 외래어로 굳어졌다. 패러디는 창작이 아닌 재창작 혹은 번안을 뜻한다.

그래서 양산(量産)이 상대적으로 쉽다. 공감의 폭도 크다. 물론 원작의 인기도와 인지도에 따라 우승열패가 좌우되기는 한다. 패러디를 차용하지 않는 매스커뮤니케이션 수단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먼저 광고. 이미지를 팔아 돈을 버는데 지상목표를 둔 광고가 너나 없이 패러디에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시대 패러디의 효용가치를 방증하고도 남는다. 패러디를 담고 있지 않은 광고는 이제는 상상조차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영화 ‘딥 임팩트’를 패러디한 승용차 광고, ‘빠삐용’과 바퀴벌레 퇴치제, ‘간첩 리철진’과 자동차, ‘매트릭스’와 세탁기, ‘쉬리’와 타이어, ‘조용한 가족’과 휴대전화, ‘용가리’와 건강음료, ‘반칙왕’과 초콜릿·라면…. 영화 뿐 아니다.

‘순풍산부인과’ 등 TV 드라마나 ‘서세원의 좋은 세상 만들기’ 등 예능 프로그램들도 훌륭하고 만만한 패러디 광고의 소재다.


친근하게 소비자에 접근

광고 전문가들은 “잠재적 소비자의 뇌리에 가장 확실한 자극을 주는 데 패러디 CF만큼 좋은 것은 없다. 인기 있는 영화나 TV 프로의 주요 장면에다 독특한 아이디어를 가미, 친근감과 돌출성을 아울러 살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구동성이다.

민망스러워 언급 자체를 자제해온 측면이 없지않지만 패러디가 매우 활발한 분야는 16㎜ 성인비디오다. 월 60여편씩 쏟아져나오는 에로비디오의 제목은 패러디의 극치다. 지난 6월28일 한 비뇨기과 여의사가 에로비디오 제작사인 M월드 대표 김모씨(34)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임씨가 문제삼은 비디오의 타이틀은 ‘비뇨기과 전문의 허순’. 이전에도 ‘과부들의 저녁식사’ ‘개같은 날의 정사’ ‘이보다 더 야할 순 없다’는 등 히트작 제명을 우스꽝스럽게 바꾼 비디오들은 끊임없이 출시돼왔다.

시대의 화두로 전가의 보도처럼 위세를 떨치고 있는 인터넷도 패러디를 그냥 넘길 리 없다. 인터넷 종사자중 절대다수가 젊은층이기 때문인지 기발한 패러디로 승부하는 사이트들이 허다하다.

인터넷에는 패러디 신문이 잔뜩이다. 딴지일보이래 우후죽순이다. 패러디 뉴스사이트인 엑스뉴스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주목했을 정도다.

‘스타’를 걸고 넘어져 패러디 효과를 상승시키는 수법은 당연하다. 인기물이나 인기인은 즉각 패러디의 대상이 된다. 드라마 ‘허준’이 ‘정치보감’을 썼다며 헛된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인에게 ‘진실 고약’을 처방, 입을 막아버린다는 식이다.인터넷 패러디는 엽기성도 띈다.

‘텔레토비’의 뽀가 텔레토비 동산의 토끼를 잡아먹고, 이를 목격한 나나는 살해되고, 그 시체를 요리해 식탁에 올리기도 한다. 린다김 파문은 ‘린다 정(情)’ ‘린다 박’ ‘연정’ ‘연서’ ‘이민러브’ ‘러브래터’ 등의 대화명을 낳았다. 인터넷 채팅 아이디어다.

‘삼승 데우 현데를 능가하며 21세기 초우량 기업을 지향한다’고 공언하는 기업 패러디 사이트, 청와대를 패러디한 사이트인 ‘국민의 식당 청기와’, 사이버 패러디상의 서울대학교인 ‘구라대학교’ 등 인터넷 패러디에는 금기도, 성역도 없다.


유행어가 새로운 버전 양산

유행어는 곧 패러디의 아이템이 된다. ‘잘 자, 내 꿈 꿔’라는 유행어가 세포분열하듯 패러디를 거듭, 100여가지에 달하는 버전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패러디 대상은 유명인 전원이다.

누구에게나 갖다대기만 하면 새로운 버전이 생겨나온다. 대상자의 캐릭터에 맞춰 ‘잘 자, 내 꿈 꿔’를 바꿔주면 된다. ‘잘자라. 니 꿈은 내가 꾼다’(최민수), ‘흐음, 잠도 자고, 흐음, 내 꿈도 꾸고’(김응룡 감독), ‘음, 그, 그러뉘깐 구웃 슬립하쉬구요, 마이 듀림 꼬옥 꾸시길 바래요오’(박찬호), ‘에, 잘 주무시구요, 에, 내 꿈은 꼭 꾸셔야 됩니다’(김대중 대통령), ‘잠은 잘 자야 되며 내 꿈을 꾸지 않는다면 침을 놓아야겠소’(전광렬) 등등.

유머작가 김상현씨는 “과거 최불암 시리즈같은 창작이 아니라 귀에 익은 기존 광고 카피나 인기인의 말버릇 등을 바탕으로 각색한다는 점이 최근 패러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정신과전문의 서호석 교수(영동세브란스병원)는 “패러디는 삶과 대인관계의 활력소라는 사실을 부인할 필요는 없다. 심지어 음담패설도 집단의 동질감 확인 등 나름대로의 존재가치를 갖는다. 깊이 없이 표피만 보면서 말초적 농담이나 늘어놓는다고 작금의 패러디 유행을 폄하할 일은 아니다. 가벼운 말장난을 즐기며 한순간이나마 환하게 웃는다면 현대인의 정신건강면에서도 좋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세대간 벽쌓기" 우려의 목소리도

패러디 붐을 우려하는 시각도 엄연하다. 청소년 지도자 우옥환 이사장(한국청소년마을)은 “범람하는 패러디가 세대간 벽쌓기일 수도 있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열심히 TV를 보지 않는 성인이라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장난을 주고받으며 좋아라 하는 아들 딸이 점점 별종처럼 느껴진다는 부모도 많다고 한다. 우 이사장은 “패러디가 다양해지고 또 버전업을 거듭하면 할수록 세대간 ‘왕따’시키기도 심화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긍정과 비판은 있을 수 있지만 패러디가 사회현상이라는 데 토를 달 사람은 없다. 그래서 패러디는 단순한 모방 차원이 돼서는 안된다.

전략상 제품의 이미지와 부합하고 광고목표 달성을 위한 분명한 가치를 지니거나, 패러디를 접하는 이들이 치기발랄함보다는 유쾌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을 때 패러디는 비로소 ‘베끼기’라는 비판의 소리를 잠재우고 창조적 노력이 가미된 진정한 재창조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신동립 스포츠투데이 생활레저부 기자

입력시간 2000/07/05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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