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 정통 무협지, 설 땅을 잃어간다

게임에 치이고 환타지소설에 밀리고…

‘뇌령일식. 그것은 18년전 금륜맹(金輪盟)의 맹주 막비와 대결할 때 시전한 바 있는 것으로 천하제일 고수 뇌진자(雷震子)의 독문무공으로 극강의 검법이었다.… 하지만 기를 더 강하게 하는 법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뇌격지기(雷擊之氣). 벼락이 떨어질 때 그 기운을 체내에 흡수했다가 한꺼번에 발출하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검법이었다.…’(검궁인 작 ‘신독보강호’중에서)


암울한 군사독재시절 젊은이의 해방구

30~40대 중년 남자라면 마분지처럼 두터운 종이 위에 세로쓰기로 조악하게 내용이 인쇄돼 있는 무협지에 대한 아련한 기억이 남아 있을 것이다.

실내 가득한 담배 연기, 텁텁한 종이 냄새, 그리고 희미한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때가 잔득 묻어 있는 허름한 만화방 한켠 구석 의자에 앉아 ‘비룡’, ‘무유지’같은 무협지 한 질을 게눈 감추듯 읽었던 10대의 아련한 추억. 마땅한 오락거리가 없었던 당시, 유신독재, 12·12 쿠데타와 같은 암울한 군사 독재 하에서 만화방 가득이 쌓여 있던 무협지는 젊은이에겐 일종의 해방구와도 같았다.

대부분 황당무계한 과장과 비현실적인 가상 속에서 펼쳐지는 내용이지만 그 속에는 당시 현실에서 맛 볼 수 없는 ‘정의’‘용기’‘꿈’이라는 명제가 들어있었다.

호남호색에 천하제일의 무공을 쌓은 절세영웅이 우여곡절 끝에 결국에는 악을 물리치고 권세와 영화를 누린다는 권선징악을 주테마로 담고 있었다.

중국 대륙의 유구한 역사와 풍물, 그리고 그 광활한 대지 속에서 펼쳐지는 당대 최고 무사의 무예와 희로애락을 유·불·선 사상과 접목한 동양적 환타지 소설이었다. 그것은 당시 젊은이에겐 일종의 현실도피이자 상상의 카타르시스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위안처였다.


“무협지 시장은 끝났다”

비록 순수문학에 밀려 ‘주변 문학’‘장르 문학’이라 불렸지만 무협지는 해방후 지금까지 가장 오랜 기간, 가장 많은 독자층을 확보했던 대중문학의 한 부류였다.

무협지의 소재는 그동안 만화는 물론이고 다른 순수문학이나 영화, 방송, 캐릭터 산업에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심지어는 일상생활에서 쓰는 비어나 속어에도 상당수 무협지 용어가 있을 정도다.

이처럼 ‘대중문학의 꽃’이었던 무협지 시장이 최근 들어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한때 만화방과 책대여점에서 굳건히 1위 자리를 구축했던 무협지는 이제 웬만한 곳에서는 찾아보기도 힘들 정도다. 앞다퉈 무협지를 쏟아내던 출판사도 이제 “무협지 시장은 끝났다”며 아예 손을 놓고 있다.

그나마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PC통신이나 인터넷의 온라인 동호회와 스포츠 신문의 지면 정도다.

홍익대 앞에 위치한 만화방 ‘모티브’의 아르바이트생 이재은씨는 “지난해부터 무협소설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고 간간히 무협만화만을 찾고 있어 아예 무협지를 매장에서 치워버렸다”며 “간혹 30대 이상의 손님만 무협지를 찾지 대학생들은 거의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무협지 시장이 갑자기 퇴색기를 맞게 된 것은 전자오락이나 인터넷 네트워크 게임, TV, 인터넷, 영화, 비디오 등과 같은 대체 오락물의 폭발적 보급 때문이다.

이런 첨단 영상 매체의 발달은 예전 만화방 한 구석에서 책으로만 보던 가상의 무협지 주인공을 총천연색 화면 위에서 생생한 동영상으로 구현시켜 놓았다. 이런 감각적이고 원색적 영상 매체의 마력에 빠진 청소년이 다소 황당무계한 구성과 구태의연한 스토리에 머물러 있는 무협지를 찾을 리 만무하다.

한때 인기 무협지 작가의 경우 ‘작가 재벌’ 소리까지 들었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30여명을 제외하곤 대부분 만화 스토리 작가로 전향해버렸다.


인터넷 확산, 컴퓨터 게임으로 몰려

1998년 이영도의 소설 ‘드래곤라자’(황금가지)가 50만권 이상 팔리고 PC통신에서 180만회의 조회를 기록하며 인기를 끈데 이어 이우혁의 ‘퇴마록’(들녘)이 히트를 치면서 국내에서는 환타지 소설 붐이 일기 시작했다.

서양의 미래가상적 현실을 다룬 환타지 소설이나 사무라이들을 다룬 일본 무협 소설은 무협지를 밀어내고 국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최근 들어 새롭게 선보이는 무협지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무협 내용을 다룬 무협만화 정도만 그런대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1980년대 창작 무협시대에 5대 인기 작가의 한사람이었던 ‘검궁인’은 “1980년대를 전후해서 무협지 시장은 추리소설과 만화는 물론이고 일반 순수문학 시장까지 거의 잠식했을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당시 출판사들은 유명세있는 작가를 영입하려고 거금을 제시하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사회 전반에 무협지 용어가 은어로 쓰였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러나 대만과 홍콩 작품의 무분별한 번역과 국내 작품이 일부 인기 작가에게만 쏠리면서 무협 작품의 전반적 질 저하가 나타났다.

여기에 전자오락이나 컴퓨터 네트워크 게임 등 각종 영상 매체의 등장으로 무협지 시장은 결정타를 맞았다”며 “무협지 시장이 서점 판매가 아닌 대본소용으로 정착한 것도 무협지 성장의 한계를 가져온 큰 원인이 됐다”고 진단했다.

한때 젊은이의 억눌린 꿈과 상상력의 보고였던 무협지. 이제 책은 청계천의 중고 책방 속으로 들어가고 있지만 그것이 만들어 낸 상상력과 캐릭터는 컴퓨터 게임이라는 또다른 모습으로 재현되고 있다. 모든 문화는 순환하듯 언젠가 무협지속 불멸의 영웅들이 더 큰 무공을 쌓고 다시 살아돌아올 날이 찾아올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1세대 무협작가 '야설록'

㈜야컴의 최재봉(40) 회장은 자신의 이름보다는 ‘야설록’이라는 필명으로 더욱 유명한 1세대 창작 무협 작가다.

최회장은 1980년대초 ‘사마달’‘금강’‘검궁인’‘서효원’등과 함께 무협지 5대 작가중 한명으로서 창작무협지의 전성시대를 이끈 주인공이다. 최 회장이 1982년과 1985년 펴낸 ‘마객’과 ‘향객’은 무협지 시장에서 대히트를 친 작품.

최 회장은 1990년대부터 무협지 시장이 주춤하자 1993년 일간스포츠에 이현세씨와 함께 ‘남벌’이라는 장편만화를 시작으로 소설 ‘대란’(1995년), 장편만화 ‘북벌’(1997년), 그리고 지난해까지 ‘동풍’이라는 영상 첩보소설을 잇달아 연재했다.

최 회장은 “10대였던 1970년대 중반 처음 무협지에 빠졌던 기억을 잊지 못해 25년을 이 세계에서 보냈는데 최근의 쇠퇴기에 있어 가슴아프다”며 “1980년대 말 무협지 시장이 위축됐다가 1990년 중반 다시 살아난 것처럼 300만에 가까운 무협지 마니아들이 잠재해 있는 한 제2의 중흥기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4~5년전부터 무협소설보다는 만화나 첩보·추리·환타지 소설 등 다양한 분야의 출판을 하고 있는 최 회장은 “‘한번 무협 작가는 영원한 무협 작가’라는 말이 있듯 아직도 무협지에 대한 애착과 관심을 아직도 각별하다”며 “비록 수지타산은 맞지 않지만 무협 소설을 쓰겠다는 작가가 있는 한 끝까지 무협 소설을 발행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최 회장은 “중국에 ‘종즉적시도래’(終卽適時到來·마침내 때가 이르렀다)라는 고어가 있듯 언젠가는 무협지 세상이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려달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7/11 20:28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