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 정치인 의정실험 한달, 좌절·한계

우리 정치사에서 16대 국회만큼 큰 기대 속에 출범한 국회도 없었을 것이다. 세기의 전환과 함께 정치도 변해야 한다는 당위와 맞물려 세칭 386세대의 대거 진출이 이러한 기대를 뒷받침했다. 국회가 개원한지 꼭 한달이 지났다.

선거에 처음 당선, 정치인의 ‘틀’이 갖추어지기까지 줄잡아 2년은 걸린다는 통설을 따르자면 임기 4년중 1개월이 지났을 뿐인 현시점에서 이들 386의 성적을 매기기는 무리일 것이다.

그러나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이 어느 정도의 경험적 진실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때, 386의 지난 한달을 돌아보는 것은 향후 이들의 정치적 성패를 점치는 잣대로서 유용한 가치를 지닐수 있을 것이다.


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여의도 입성

총선 이후 386 정치인이 도하 일간지의 정치면에서 차지한 비중은 신인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었다.

386끼리 모이는 자리는 어디건 기자들이 따라붙었고 이들이 모임에서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대로 기사화되었다. 정치신인의 일거수 일투족이 뉴스거리가 되는 것은 전례가 드문 일로서 386이 16대 국회 최고의 ‘히트 상표’임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다.

언론의 관심을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즐길 줄 안다는 점에서 386은 이전 세대와 남달랐다. 자신에게 쏠리는 기대가 구(舊)정치와의 차별성에 있음을 십분 이해한 그들은 스스로의 개혁성을 포장하는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다. 대표적인 예가 여야 386간의 정책연대, 크로스보팅, 당내 의사결정구조의 민주화에 대한 공공연한 다짐이었다.

개원 이전인 지난 5월 재선 386 정치인인 민주당 김민석(金民錫) 의원과 한나라당 남경필(南景弼) 의원이 만나 ‘개혁을 향한 초당적 연대’를 결의했다. 여야 386이 합심해 각종 개혁입법을 추진하고 당론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투표하는 크로스보팅의 범위확대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

이후 정책연대와 크로스보팅은 마치 교리처럼 모든 386에 의해 그 당위가 역설되었다. 여야 386은 또 5월치 세비에 대해 ‘무노동 유임금’이라는 지적이 나오자마자 이를 자선목적에 사용키로 결의하는 민첩성을 보였다.

비민주적 의사결정구조에 대한 이의제기는 386의 차별성을 가장 두드러지게 했다. 민주당 386의 경우 이점에서 좀더 적극적이었다. 국회의장 후보로 당시 이만섭(李萬燮) 상임고문을 합의추대하려는 당지도부의 의지에 맞서 경선을 요구한 것이 단적인 예.

김영배(金令培) 고문이 경선의사를 포기함으로써 결과적으론 합의추대 형식이 되고 말았지만 이 과정에서 386과 지도부가 마찰음을 냈던 것만은 분명하다. 당시 몇몇 386은 기자들을 만나면 지도부에 대해 노골적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광주 술판’으로 첫번째 시련

첫번째 좌절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왔다. 민주당 386의 ‘5·18 술자리’ 사건이 그것이다.

자신들의 정신적 모태(母胎)나 다름없는 5·18 기념일에 걸판진 술판을 벌였다는 사실은 광주민주화운동 20주년의 엄숙성과 교차되면서 한편의 코미디처럼 여겨졌다. 엄혹한 1980년대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386의 정체성으로 굳어진‘정치적 엄숙주의’, ‘이념적 진지성’이 졸지에 희화화했다는 점에서 그것은 그 어떤 정치적 시련보다도 치명적이었다.

5·18 술판사건 이후 386의 목소리는 현저하게 위축되었다. 비판세력에서 처신이 염려되는 문제아 그룹으로 위상이 급전직락한 것이다. 386만의 통일된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고 한나라당 386은 민주당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사라진 소신

지난 6월29일 실시된 이한동(李漢東) 국무총리에 대한 임명동의안 표결은 386의 한계점을 드러낸 좋은 예다. 인사청문회가 실시되기 전부터 민주당 386 그룹은 이 총리의 5, 6공 참여 및 공안검사 전력을 문제삼아 거부의사를 노골화했다.

모 의원의 경우 “당론에 상관없이 소신대로 표결하겠다”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표결결과 139표의 찬표가 나와 여권에서 단 1표의 이탈표도 없었음이 드러났다.

표결에 앞서 가진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지도부는 ‘일사분란한 행동’을 강조했고 386은 한마디의 이의 제기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이 386의 소신인가’라는 회의가 제기되었음은 물론이다.


시행착오 인정, “더 배워야”일침

민주당 임종석(任鍾晳) 의원은 “기대 일색이었던 것이 기대반 우려반으로 바뀌었다”고 지난 한달을 한마디로 요약했다. 임 의원은 “주변을 돌아본다거나 지지기반 확보를 위한 노력없이 무모하게 말을 앞세워 실망감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며 시행착오를 부분적으로 인정했다.

그는 그러나 5·18 술판사건 이후로 386의 개혁목소리가 위축됐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단호히 반대했다. 임 의원은 “총리인준의 경우 이 총리 개인에 대한 선호와는 별개로 자민련과의 관계유지가 정국안정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인식에서 386 스스로 내린 결정”이라며 “처음이나 지금이나 개혁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왜 꼭 당지도부와 갈등관계에 있어야만 개혁적 것으로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386과 이전 세대의 접점에 위치한 민주당 신계륜(申溪輪) 의원의 평가는 좀 더 차갑다. 신의원은 “386은 이전 세대에 비해 용감하고 이후 세대에 비해서는 덜 이기적인 세대”로 평하면서도 “아직까지는 말을 내세우기 보다는 현실로부터 배우고 차분히 준비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노원명 정치부 기자

입력시간 2000/07/11 20:52


노원명 정치부 narzi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