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도 "내가 북한으로 가는 길"

대북 컨설팅 업체 봇물… 신뢰성·능력은 아직 미지수

북한특수는 컨설팅 업계에 먼저 찾아왔다. 남북 정상회담으로 북한특수에 대한 사회적 기대감이 커지면서 북한 컨설팅 업체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남북 정상간 첫 만남이 이뤄진 6월13일 이후 한달도 채 안돼 줄잡아 40~50개의 북한 컨설팅 업체가 등장했다. 소위 ‘북한을 좀 안다’는 사람은 앞다퉈 창업대열에 끼여들고 있다.

이같이 새로 생겨난 북한 컨설팅 업체에는 탈북자 출신이 세운 것만 5개에 달한다.

방영철씨가 창업한 ‘평양 컨설팅회사’와 윤승재씨의 ‘대유T&C’가 대표적이다. 방씨와 윤씨는 최근 북한투자지침서인 ‘이제 벤처는 평양이다’와 ‘평양 비즈니스아이템 100’을 각각 출판해 스타덤에 오른 인물들. 이들은 북한 출신으로서 북한 내부사정에 정통하고, 북한 주민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미 중국을 상대로 사업해본 경험이 있는 소규모 컨설팅 업체도 북한 투자 컨설팅으로 전환하거나 겸업을 서두르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강점은 중국과 북한이 같은 사회주의 체제 국가라는 점. 중국 투자 컨설팅에서 쌓은 노하우가 북한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신설 업체에 컨설팅을 의뢰하는 기업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평양 컨설팅회사 방영철 대표는 최근 2~3주간 컨설팅을 의뢰해온 기업이 40개에 달한다고 밝혔다. 의뢰기업은 제조업과 유통업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중소기업이 주류다. 대기업은 자체 정보라인을 가동하고 있기 때문에 컨설팅사를 거의 찾지 않는다고 한다.

컨설팅사에 대한 창업투자사의 구애열기도 뜨겁다. 최근 정보통신분야 벤처기업 창업이 주춤해져 투자처를 잃은 창투사가 북한 벤처 쪽으로 방향을 트는 양상이다. 10여개의 창투사로부터 투자제의를 받은 평양 컨설팅회사의 경우 이중 조건이 가장 유리한 창투사를 골라 단번에 10억원을 유치했다. 방 대표는 여세를 몰아 내년중 코스닥에 등록할 계획이다.


난립·이상 열기에 우려의 목소리

하지만 이같은 북한 컨설팅 업체의 난립과 이상열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컨설팅 업계 내부에서뿐 아니라 북한 투자 경험이 있는 업체들은 최근의 이상열기가 거품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고 경고하고 있다.

섣부른 투자로 인한 손실은 물론이고 장기적으로 남북한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북한실의 한 관계자는 “북한 전문 컨설팅 회사가 등장한 것은 남북 정상회담 이후의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까지 북한 투자는 선발 진출업체가 소개하는 형식으로 이뤄져 신뢰성이 있었으나 신설 컨설팅 업체의 신뢰도나 능력은 아직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북한과 협력사업을 벌이고 있는 기업인도 이들 컨설팅 업체를 회의적 시각으로 보고 있다. 북한에 진출한 중소기업 중 가장 성공한 케이스로 주목받는 ㈜아이엠알아이(IMRI) 유원영 회장의 이야기.

“북한을 상대로 제대로 된 컨설팅을 하려면 최소한의 구비조건이 있다. 우선, 의뢰받은 후 며칠내로 베이징(北京)에서 북한 관계자와 남한측 의뢰자의 면담을 성사시킬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늦어도 두달 이내에 평양측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아낼 능력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현재 남한에서 이같은 능력을 갖춘 컨설팅 회사는 사실상 없다.”

북한 컨설팅 업무는 대체로 상담(자문), 거래알선, 북한 관계자와의 연결 등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중 상담과 거래알선 단계는 지금까지 KOTRA 북한실, 무역협회 남북협력팀, 중소기업진흥공단 대북교역지원센터, 중소기업중앙회 등이 담당했다. 이들 4개 기관은 북한시장 분석과 투자상담은 할 수 있지만 북한측과 기업을 직접 연결해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업체선정 앞서 옥석 가려야

일부 탈북자 출신 컨설턴트들은 이들 4개 기관이 해온 수준의 업무에서는 충분히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방영철 대표는 “국정원과 KOTRA가 보유하고 있는 북한 정보는 구체성이 부족하다”며 자신이 더 수준높은 시장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최근 설립된 컨설팅사 중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춘 곳은 10곳 미만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 탈북자 출신들이 남한 기업인과 북한 관계자간 연결역을 맡는데는 강점이 있을까. KOTRA와 기존 진출업체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북한측이 ‘배신자’로 규정하고 있는 탈북자들을 파트너로 용납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 이들은 북한의 대남 경협 창구인 민족경제협력연합회가 철저한 당기관이자 관료집단이라는 성격만 봐도 자명하다고 설명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탈북자 출신에 지나친 기대를 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대북 컨설팅사에 대해 옥석을 가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IMRI 조봉현 이사는 “대북 컨설팅사의 난립은 자칫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북한에 이용당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 기업이 컨설팅사를 선정할 때는 해당 컨설팅사의 과거 실적을 꼼꼼히 따져 옥석을 가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북 사업을 위해서는 북한 관계자에게 로비를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간에서 다리를 놓는 컨설팅사가 (북한측에)돈을 줬다는 근거는 바로 북한측이 발부하는 초청장”이라고 잘라 말했다.

초청장이 오지 않으면 컨설팅사가 돈을 가로챘다고 봐도 좋다는 이야기다. 이 관계자는 “이같은 일이 생기면 (기업인들은)남한 사람에게 당하고 욕은 북한에 하는 경우가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7/11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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