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의 실험 '지주회사'

재벌의 미래 가늠할 '소유구조개편' 신호탄

‘신(新)재벌’이 탄생할 것인가.

LG 그룹은 지난 7월4일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발표, 해방 이후 이 땅을 지배해왔던 재벌체제의 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재벌 소유구조 개편의 첫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이다. LG의 발표는 선단식 경영 해체 등 정부의 재벌 개혁 요구에 끌려왔던 재벌이 나름의 선택을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화두는 지주회사였다.

먼저 그 화두부터 살펴보자. 지주회사(holding company)는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순수하게 자(子)회사의 주식만 보유, 전략적 경영 참여 등을 통해 배당이익으로 운영되는 순수 지주회사다. 순수 지주회사는 공장 등 사업자산을 갖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자회사 주식 합계의 50% 이상을 보유하되 나머지 주식으로 자기 사업을 하는 사업 지주회사다.

사업 지주회사는 배당과 함께 사업이익도 추구한다. 공정거래법(2조)에 지주회사는 ‘주식의 소유를 통하여 다른 국내 회사의 사업 내용을 지배하는 것을 주된 사업으로 하는 회사’라고 정의돼 있다.


경영의 분업화·효율화 구도

지주회사는 또 금융관련 자회사를 거느린 금융 지주회사와 비금융 자회사만 둘 수 있는 일반 지주회사로도 구분된다.

지주회사를 설립하려면 지주회사의 부채비율을 100% 이하로 낮추고 자회사 이외에는 지배 목적으로 국내 회사 주식을 소유할 수 없는 등 몇가지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특히 재벌이 지주회사를 세울 때는 지주회사와 관련된 일체의 채무보증을 먼저 해소해야 한다.

지주회사의 고유업무는 한마디로 자회사를 경영, 관리하는 것이다. 지주회사는 전략적 경영을 담당하고, 일상적 경영은 자회사가 담당하는 경영의 분업화·효율화가 지주회사의 선진국형 구도다.

지주회사 설립은 1987년부터 이를 금지해오던 정부가 지난해 4월 기업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해 공정거래법을 일부 개정함으로써 가능해졌다. 정부는 경제력 집중 등의 우려가 있지만 지주회사가 재벌 구조조정과 개혁의 촉매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이전에 비서실 조직과 비슷한 역할을 맡고 있는 현재의 재벌 구조조정본부를 해체하라는 정부의 요구에 대해 재벌이 대안을 제시하라고 요구한 것도 지주회사 허용에 영향을 끼쳤다.

공정거래위 관계자는 “지주회사 제도는 재벌의 소유지배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시스템중 하나”라며 “재벌을 인위적으로 해체하지 않고 재벌구조를 바꿀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산업경쟁력으로 승부하겠다”

LG의 지주회사 체제전환 발표는 LG가 정부의 구조조정·개혁 촉구에 재벌로서는 처음으로 진지하게 반응한 것이다.

LG가 2003년까지 만들겠다고 한 지주회사는 순수 지주회사고 일반 지주회사다. 달리 말하면 구본무 회장 등 LG 지배주주가 자회사 관리 외에 직접 사업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금융 계열사는 거느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재벌 오너가 일상적 현장경영에서 물러서고 기업의 돈줄인 금융을 두지 않고 산업 경쟁력으로만 승부를 걸겠다는 것이다.

이는 놀랄만한 일이다. 현재까지 재벌 오너들은 계열사 대표이사나 이사 자격으로 경영을 하고 있고 생명보험사나 증권사 등 금융 계열사를 통해 연명하거나 몸집을 불려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지주회사 체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SK엔론㈜이 있다. SK엔론㈜은 미국 최고의 에너지 회사인 엔론과 유공의 후신인 SK㈜가 50대50의 지분으로 출자, 1999년 1월 설립한 지주회사다.

SK엔론㈜은 휘하에 충남도시가스를 비롯한 9개 도시가스와 열병합발전소, SK가스 등 모두 11개의 사업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30대 대기업 집단(재벌)과 관련된 지주회사는 SK엔론㈜ 하나다. 하지만 SK엔론㈜은 재벌 전체의 지주회사가 아니라 재벌 계열사 하나가 지주회사 체제로 바뀐 것이어서 LG의 발표와는 격이 다르다.


2003년까지 단계적으로 지분 정리

그럼 현대, 삼성에 이어 재계 3위(자산 기준)의 거대 재벌 LG가 어떻게 47조여원의 자산과 42개 계열사를 정리하고 지주회사 체제로 가겠다는 것인가. LG의 계획은 이렇다.

LG는 1단계로 2001년까지 LG화학과 LG전자를 중심으로 관련 업종을 계열화해 화학·에너지 계열은 LG화학이, 전자·통신 계열은 LG전자가 각각 지주기능을 수행토록 한다.

이를 위해 LG는 계열사에 분산돼 있는 구씨와 허씨 등 지배주주의 지분을 단계적으로 매각, 지주회사 설립전까지 지주기능을 수행할 LG화학과 LG전자의 지배주주 지분율을 높일 계획이다. 두 회사의 안정적 경영권 확보에 필요한 지분율은 20~25% 수준이다.

이어 2단계로 2003년까지 자본금과 잉여금을 합한 자기자본 규모 5~6조원의 지주회사를 만들어 화학계열과 전자계열을 지주회사 아래 사업 자회사로 둔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구씨와 허씨 등 LG 지배주주는 가칭 ‘LG 홀딩스’라는 지주회사의 주식만 보유한 채 출자 포트폴리오 관리에만 주력하고 사업 자회사는 전문경영인과 이사회 중심으로 운영된다.

앞으로 3년 뒤면 구본무 회장 등 LG 오너와 특수관계인 등 지배주주의 화학과 전자계열 주식이 지주회사 주식으로 전환돼 지배주주는 지주회사 주식만 갖게 되는 것이다. LG 지주회사가 선진국 모델로 운영된다면 재벌 오너들은 경영인으로서 보다는 주주로서 경영에 참여하게 되는 셈이다.

당장 지주회사로 넘어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중간역’을 두겠다는 것이 LG의 입장이다. 지주기능을 수행할 화학 계열과 전자 계열이 그것이다. LG의 2단계 전략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경영 간여문제 여전히 불투명

LG는 여러 면에서 삼성이나 현대와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지만 지분 분포는 특히 색다르다. 락희산업으로 출발한 LG는 창업때부터 이뤄온 구씨와 허씨간 동업을 3대째 유지하고 있다.

때문에 삼성 현대와 달리 0.01%의 작은 지분까지 갖고 있는 양 가문 주주들을 헤아리면 200명선에 이른다. 특정 계열사를 구씨와 허씨 한쪽이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경우도 드물다. 좋게 말해 지분이 골고루 분산돼 있고 달리 보면 너무 산만하고 복잡한 것이다.

두 가문과 계열사간의 지분을 정리하는데 적잖은 시일이 걸릴 것은 명약관화하다. 게다가 외국인 주주와 소액 주주 등의 이익을 해치지 않으면서 지분을 정리하고 지주회사 체제로 가기 위해서는 시간 뿐 아니라 치밀한 계획도 필요하다.

하지만 여전히 몇 가지 의문이 남는다. 첫째, 구 회장 등 오너와 그 가족이 지주회사 체제에서는 사업 자회사 경영에 일체 간여하지 않을 것인가. 그래야만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선진 기업체제를 갖추는 것이고, 재벌 개혁의 취지에 부합하는 것이지 않은가.

이에 대한 LG측 설명은 불분명하다. “구 회장은 지주회사의 대표이면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회사의 이사회 의장(사실상의 대표)을 맡을 수 있다. 필요한 만큼 관여할 것이다.” 한마디로 소유와 경영이 완전히 분리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둘째, 화학과 전자계열 말고 나머지 금융부문과 서비스 부문 회사들은 어떻게 되는가. LG는 현재 금융부문에 LG투자증권 LG투자신탁운용 LG선물 LG캐피탈 부민신용금고를, 서비스 부문에 LG상사 LG건설 LG백화점 LG유통 홈쇼핑 한무개발 LG애드 LG스포츠 LG경영개발원, 아워홈 등을 두고 있다.

2개 부문 계열사들은 2003년까지 분사·외자유치 방식 등을 통해서 그룹에서 완전히 떨어져나갈 수도 있고, 자회사는 아니지만 지배주주들이 지분을 갖고 있는 준자회사로 독립 운영될 수도 있다.

끝으로 지주회사 설립이 황제경영 등 재벌의 폐해를 불식시킬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지주회사로 간다고 해서 재벌 체질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드웨어의 변화가 소프트웨어의 개선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 점에서 LG는 재벌 개혁의 실험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윤순환 경제부 기자

입력시간 2000/07/11 21:16


윤순환 경제부 goodm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