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 2000'은 통해 본 세계축구와 한국축구의 미래

지난 3일 끝난 ‘2000유럽축구선수권’(유로 2000)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화려한 명승부를 연출해 유럽은 물론 전세계를 경악시켰다.

이번 대회는 국내에도 많은 화제를 뿌렸고 시청률이 심야프로로는 굉장히 높은 6~8%를 기록했다고 한다. 2002년 월드컵개최국으로서 관심이 높았던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번 대회가 어느때보다 수준높은 축구를 선보였고 최고, 최다의 명승부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에 나타난 가장 큰 특징은 이제 기술없는 축구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4강 진출팀인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포르투갈은 물론 스페인 루마니아 등 기술있는 팀들이 판도를 주도했다.

반면 전통적인 ‘킥 앤 러시(치고 달린다)’의 독일과 잉글랜드는 예선탈락함으로써 체력을 앞세운 축구는 한계에 도달했음을 여실히 입증했다.


기술·스피드 압박수비 벗어나

이번에 나타난 새로운 기술축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지난 10여년간의 세계축구 흐름을 알 필요가 있다.

세계축구 흐름이 크게 바뀐 것은 1990년의 이탈리아월드컵때이다. 당시로서는 전혀 새로운 3-5-2 시스템의 일명 ‘압박축구’가 새롭게 등장, 세계축구를 주도했다. 한국대표팀을 맡아 월드컵사상 최악의 성적(3패)을 올린 이회택(전남)감독은 “생전 처음 경험해보는 압박축구에 선수들이 크게 당황했다”고 회고한다. 그때만 해도 한국은 세계축구의 흐름에 크게 둔감했던 것이다.

3-5-2시스템은 일대일 대인마크가 특징이다. 말하자면 ‘공은 놓쳐도 사람만은 놓치지 않는다’는 전술로 22명의 플레이어중 양팀 골키퍼와 스위퍼(리베로)를 제외한 18명이 각자 마크맨을 갖고 뛰는 형태이다.

자연히 체력과 태클, 탄탄한 수비위주의 팀이 득세를 하게 됐다. 경기흐름은 자주 끊겼고 골은 터지지 않았다. 94년 월드컵때도 이러한 추세는 계속됐다.

이러한 흐름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것이 96년 유럽선수권이다. 대부분의 팀들이 4-4-2시스템의 공격적인 전술을 채택했다. 3-5-2가 대인방어가 특징이라면 4-4-2는 지역방어 전술이다.

특히 3-5-2는 미드필더들이 수비에 무게중심을 두지만 4-4-2는 수비수 4명이 일자수비를 쓰면서 미드필드진을 공격적으로 강화하는 전술이다.

그러나 98년 월드컵때까지도 수비가 약한 팀은 살아남지 못했다. 우승팀 프랑스가 대표적인 경우로 프랑스 수비는 당시 최강이었다. 전술적으로도 4-4-2시스템을 위주로 하면서도 대인마크(압박수비)는 더욱 강해지는 성향을 보였다.


공격추구 유도

이번 유로 2000은 바로 그러한 강한 압박수비속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기술축구가 선보인 대회였다고 할수 있다. 세계축구의 흐름으로 볼때 어차피 압박수비는 더욱 강해지지만 그것을 이길수 있는 기술개발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상대의 압박수비를 벗어나는 비결은 바로 스피드였다.

허정무 대표팀감독은 “개인기와 태클, 그리고 배후에서의 침투 등 모든 플레이의 기술에 스피드가 가미되었다”고 분석한다. 압박수비를 펼치기 전에 빠른 기술과 선수들의 빠른 움직임으로 상대를 흔들어놓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라는 것이다.

일부 외신은 이러한 전술적 특징을 ‘플렉시(Flexi)축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또 어떤 전문가들은 ‘퓨전축구’라고 말한다. 이는 시스템상 4-4-2나 3-5-2 를 기본적으로 하면서도 상황에 따라 4-3-3, 또는 3-6-1, 4-5-1 등으로 순식간에 전술대형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선수들이 일정한 포지션에 얽매이지 않고 흐름에 따라 역할과 임무를 바꿔가며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게 하고 자기팀 선수와 상대팀의 특징에 따라 선수의 역할과 기능을 다양하게 바꾸는 것을 말한다.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포르투갈이 대표적인 경우. 4강팀중 가장 완벽한 수비시스템을 쓴 이탈리아가 결승전에서 프랑스보다 경기내용면에서 압도할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선수들의 특징에 맞는 전술을 채택했기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축구가 세계축구의 흐름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우선적으로 이뤄져야할 선결과제는 ‘심판’에 대한 대개혁이다.

압박축구가 기승을 부려 축구가 점점 재미없는 수비축구로 흐른다는 지적이 일자 국제축구연맹(FIFA)은 90년대 중반부터 공격축구를 유도하기 위한 엄격한 규칙을 적용했다.

특히 백태클이나 위험한 플레이(98월드컵때 멕시코전서 첫 골을 넣은 뒤 백태클을 했다가 곧바로 퇴장당한 하석주가 대표적인 예)에는 곧바로 퇴장시키도록 했다. 말하자면 모든 규칙은 공격수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바뀌었고 이번 대회서 기술축구가 만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아직도 공격수들은 수난을 당하고 있다. 고정운 이동국 백승철(이상 포항) 황선홍(전 수원 삼성) 안정환(부산) 드라간(안양) 등 걸출한 골게터들은 지난해부터 장기간의 부상치료를 경험했고 일부는 지금도 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축구가 올들어 극심한 관중격감을 겪고 있는 것은(다행히 요즘 스타들이 부상에서 속속 회복하는 추세이다) 바로 스타들이 그라운드에 없기때문이고 그 책임은 바로 심판에게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정무감독도 “심판들과 선수들의 각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외경험, 한국적 팀워크 절실

다음은 선수들의 경기경험이다. 90년과 94년 월드컵서 연속 본선티켓획득에 실패한 프랑스는 98년 월드컵 개최국으로서 대회를 준비하면서 뼈아픈 자성과 완벽한 준비로 세계축구 최강국의 위치에 올랐다.

94년이후 A매치 55승20무5패로 성적으로는 브라질을 앞선다. 그것은 프랑스가 이번 대회 최고의 스타 지네딘 지단 등 옛 식민지인 알제리출신의 흑인및 혼혈선수를 포용하고 선수들의 경기경험을 크게 늘림으로써 완벽한 팀워크를 만들어낸 소산이다.

우리의 경우 2002년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전남 수비수 마시엘 등 외국선수의 귀화와 우수선수 19명의 해외진출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기로 했으나 단 한명도 성사시키지 못하고 있다. 걱정스러운 일이다.

현재로서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해외축구 경기경험(친선경기)을 대폭 늘리고 한국적인 팀워크를 만들어내는 것뿐이다. 장기간의 합숙이 필요한데 대표선수차출에 따른 국내 프로축구계의 희생감수와 팬들의 성원, 축구협회의 예산투입과 노력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개최국으로서 축제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면 이정도 희생은 감수해야하지 않을까.

유승근 체육부 기자

입력시간 2000/07/12 14:37


유승근 체육부 us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