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두 천재기사의 엇갈린 운명

한국의 조훈현과 서봉수가 희대의 라이벌이라면 일본엔 조치훈과 고바야시 고이치가 꼭 그런 관계다. 물론 조치훈의 아성에 고바야시가 근접해 있다는 뜻은 아니다. 조치훈 바둑인생의 하이라이트이자 정점에 고바야시는 늘 침울한 그림자처럼 따라 붙었고 그 그림자를 떼어내는 처절한 작업 중에 조치훈은 더욱 더 강해진다.

고바야시에 대한 일본인들의 애정은 끝이 없다. 이른바 ‘메이드 인 저팬’이 고바야시다. 일본 바둑계는 1945년 전후(戰後)를 기점으로 오늘날까지 근 60년동안 일본인이 일본을 지배한 적이 없었다. 1950년대에서 60년대초엔 대륙의 거성 우칭위엔이 일본을 점령했었고 60년대 중반 잠시 사카다라는 걸출한 기사가 등장했지만 70년대를 거치면서 사실상 일본에 ‘일본은 없었다.’

대만출신 린하이펑이 사카다를 물리쳤고 잠시 린하이펑을 이시다라는 준재가 꺾었지만 정작 린하이펑시대를 끝내준 이는 바로 한국인 조치훈이었다.

조치훈이 등장하던 80년대초는 사실 상당한 거물들이 배수진을 치고 있었다. 대만의 거장 ‘이중허리’린하이펑과는 당장 세대교체가 되지는 않았으니 윗길이라 할 것이고, ‘컴퓨터’ 이시다, ‘대마킬러’ 가토, ‘우주류’ 다케미야, ‘미학’ 오다케, ‘치밀’ 고바야시 등 모두 기라성 같은 희대의 걸물이었다.

이들 모두가 조치훈보다 나이상으로 윗길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따라서 아직도 많은 한국팬들은 조치훈의 나이가 상당히 많은 줄로 착각하는 수가 많다. 조치훈의 나이 이제 44세. 수많은 역경을 헤쳐나온 경력과 앞서 거론한 당대 기린아들을 헤치고 우뚝 솟은 저력을 감안하면 많지 않은 나이다.

그만큼 조치훈의 천재성을 대변하는 대목일 것이다. 그것이 또 남아있는 일본기록을 모조리 바꿀 수 있는 위인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중 고바야시 고이치를 주목한다. 올해 나이 48세로 조치훈보다는 4살 연상이다. 1965년 13세의 나이에 프로가 되었으니 12세에 입단한 조치훈보다는 못하지만 그도 당연히 천재기사의 반열에 속하는 대기사다.

그러나 하늘은 동시에 두 명의 거장을 내려보냈고 어쩔 수 없이 한명은 승자가 되고 다른 한명은 패자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조치훈이 일본 최우수기사상을 8회 수상한 반면 고바야시는 7회를 수상했다. 입단 연수도 그렇지만 고바야시는 뭔지 모를 야릇한 조치훈 컴플렉스를 느낄 만큼 조금 모자랐다. 최정상이 되기엔 모자랐다.

일본인은 그래서 고바야시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는다. 1990년도의 일이다. 고바야시가 일본의 1인자로 우뚝 솟는 일이 생긴다. 조치훈이 몰락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메이저 리그의 최정상은 고바야시였던 때가 있었다.

정통성에 아무런 하자가 없는 고바야시의 1인자 시대. 그러나 고바야시의 한쪽 옆구리가 시린 건 그가 조치훈을 꺾고 올라선 자리가 아니라 조치훈이 비어 있어서 올라간 자리라는 점이 문제였다.

당시 일본 바둑계 판도는 고바야시가 기성 명인 십단 등 일본랭킹 1,2,4위 타이틀을 독식하고 있었다. 정확히 거의 독식하고 있었다. 일본은 타이틀 개수를 중시하는 한국과 달리 1위 기전 기성을 가진 기사를 최고의 기사로 꼽는다. 따라서 당연히 당시 고바야시는 일본의 1인자였다.

그러나 고바야시에겐 목표가 있었다. 바로 일본 최고 전통의 본인방을 따보는 것이다. 그래야 할 이유가 있었다. 전통 때문도 아니고 돈 때문도 아니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조치훈이기 때문이었다. <계속>


<뉴스와 화제>

· 이상훈·세돌 형제 ‘저기압’

끝간데 모르고 치솟던 이상훈 이세돌 형제가 최근 잇달아 부진하여 상승세가 꺾이는 조짐이다. 형 이상훈은 6월30일부터 7월3일까지 서울과 제주를 오가면

치러졌던 한중신인왕전에서 중국의 류스전 5단에게 2:0으로 패해 통합신인왕 등극에 실패했다. 또 동생 이세돌은 왕위전 도전자 결정전 동률 재대국에서 서봉수 9단에게 패해 타이틀도전에 실패했다. 특히 이세돌은 리그 전적 6전전승을 기록중이다 5승1패의 서봉수 9단에게 덜미를 잡혀 동률재대국까지 갔으나 역시 연패하여 도전권을 놓쳤다.

· 조선진 본인방 '흔들'

7월4, 5일 일본에서 벌어진 제55기 본인방 도전5국에서 본인방 조선진은 도전자 왕밍완에게 1집반을 패해 종합전적 2승3패를 기록하여 막판에 몰리고 있다. 왕밍완은 제6국에서 이기면 사상 첫 타이틀홀더가 된다.

<진재호 바둑평론가 >

입력시간 2000/07/12 14:43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