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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페이스

[비디오] 페이스

워낙 많은 영화들이 개봉되고 있어서 대박급 영화가 아니고는 꼬박꼬박 챙겨보기가 쉽지 않다. 영국 출신 안토니아 버드 감독의 1999년 작 <페이스:Face>(18세 이용가 등급, 베어 출시)도 그런 영화 중 하나다.

이 영화를 보고싶어 한 일차적 이유는 감독 때문이다. 여성 감독인 버드는 신부의 동성애라는 충격적인 소재를 차분하게 풀어낸 <프리스트>로 국내에 이름을 알렸다.

이어 비디오로만 출시된, 청춘기의 격정적이며 불완전한 사랑을 그린 <영 러버>로 역량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대다수 사람이 당연하게 고수하고 있는 상식과 행동 규범에서 이탈된 인물을 그리고 있지만 그들의 행동과 말을 끝까지 지켜보고 나면 사회의 틀이라는 것이 과연 유지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 우리가 이 틀 안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이런 의문이 갈 만큼 설득력 있게 파고드는 재능이 있다.

<페이스>의 은행 갱들도 그렇다. 최근의 범죄 영화들은 악당을 더 매력적 인물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버드 감독은 근사한 외모와 옷매무새로 한 수 접고 들어가게 만드는 배우들을 쓰지 않았다. 로버트 칼라일이 주연이라는 사실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페이스>를 보고 싶었던 두 번째 이유에 해당되는 주연 칼라일은 영화를 믿음직스럽게 한다. 칼라일은 작고 비쩍 마른 신체와 그에 못지 않게 빈약한 얼굴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광기와 온기, 진실과 고발을 불어넣는, 흔치 않은 배우다.

배우 같지 않은 친근한 외모 따위의 수식어와는 차원이 다르다. ‘배우 같지 않은 배우’라는 표현은 배우 자신은 물론 관객을 우롱하는 수사다. 돈과 시간을 투자하면서 배우 같지 않은 배우나 보다 나온다면 얼마나 허망하고 끔찍한가. 이웃집 남자로는 도무지 미덥지 않은 외모로 이웃집에서 전혀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저지르고 정리하는 배우가 바로 칼라일이다.

칼라일을 필두로 한 변두리 인생 출신들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남들이 직장 생활하는 것처럼 은행을 턴다. 그런데 은행털이는 초발심에서부터 사후처리까지 손발과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개죽음 내지 감옥행이 분명한 협업 필수 직종이다.

거기다 돈을 눈 앞에 두고 잔머리 굴리는 배신자라도 생기는 날이면 완전히 끝장이다. 지적 능력을 가늠하는 것이 무의미한 이들 중 한 명이라도 욱 하는 심정에 돌발사태를 저지르는 날이면 남은 멤버의 가족까지 위태로워진다.

바로 이 지점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감독은 연쇄 사슬처럼 묶인 이들의 관계 붕괴를 쫓아간다. 무릇 세상의 범죄라는 것이 다 그러하듯 약점 잡히기, 지나친 욕심에서 파멸의 싹이 튼다.

밤거리를 달리는 차 안의 두 사내를 좌우로 카메라를 이동하며 한 프레임에 담지 않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 감독은 끝내 이들이 분열되고 말리라는 점을 암시한다.

라디오의 음악 퀴즈 답이 제각각인 점, “우리가 달리는 차 안에 있는 데 답을 아는 게 무슨 소용이야”라는 대사도 마찬가지다. “현대사회의 진짜 병폐는 냉소야. 요즘 애들은 돈만 알아”라는, 은행털이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의아한 이 대사는 결국 이들에게도 해당되는 굴레가 된다.

영화의 처음과 끝만 잘 보면 된다는 말이 있듯 감독은 인물소개나 상황 설명에 할애되기 마련인 도입부에 많은 것을 흘리고 있다. 그럼 영화는 어떻게 마무리될까. 총을 맞은 멍청한 동료와 함께 애인의 도움으로 현장을 빠져나가며 칼라일은 중얼거린다. “모든 게 다 잘될거야. 잘 될거야” 그리고 우리는 안다. 잘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옥선희 비디오칼럼니스트 oksunhee@netsgo.com

입력시간 2000/07/1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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