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갑·이인제 자존심 건 1위 싸움

민주당 전당대회, 최고위원 경선열기 가열

민주당이 여름 날씨 만큼이나 뜨거워지고 있다. 민주당은 7월14일 전당대회 준비위원회 및 최고위원 경선 선관위원회를 띄웠다.

민주당은 20일 인천시지부를 시작으로 8월1일까지 전국 16개 시·도지부에서 잇달아 개편대회를 치룬다. 8월30일의 전당대회로 가는 사전 길목이다.

시·도지부 개편대회를 바라보는 각 후보의 눈에서는 열기가 묻어난다. 후보들에게 일괄적으로 시·도지부 개편대회에서 연설할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겠지만 사람이 모이는 곳에 표가 있기 때문이다. 경선 후보의 유권자는 전국에 산재해 있는 대의원이다.


움직이는 이인제고문

최고위원 경선을 관리할 당 조직이 뜨고 이를 계기로 후보군이 대체로 정리되면서 그동안 “아직 최종 결정을 하지 않았다”며 발을 빼온 이인제 상임고문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행보에 들어갔다. 허허실실이다.

이 고문은 15일 부산을 시작으로 영남권 순방에 나섰다. 부산 방문에선 지역 지구당위원장 13명과 저녁식사를 같이 했고 지역 유지도 두루 접촉했다. 16일엔 대구에서, 17일엔 경주·울산, 18일엔 창원에서 똑같은 행사를 가졌다.

이 고문 진영은 이에 대해 “총선에서 영남권 후보들이 전멸한 데 대해 위로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일 뿐 별다른 정치적 의미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당내에서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선 이 고문이 사실상 경선 행보의 출발지를 영남지역으로 잡은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영남지역은 1997년 대선에서 ‘이인제 때문에 정권을 뺐겼다’고 생각하는 강한 반감이 자리잡고 있는 지역이고 역으로 경선 1위 다툼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한화갑 지도위원에겐 오히려 강점이 있는 지역이다.

한 지도위원은 오랜 야당시절 부산·경남지역을 중심으로 조직사업을 해왔기 때문에 지역 대의원들을 훤하게 꿰뚫고 있다. 이에 대해 이 고문측은 지난 4·13 총선에서 반감을 증폭시킨다는 이유로 선거지원 유세를 제대로 다니지 않았으니 마음이 급해질 만도 하다.

그러나 이 고문이 제일 먼저 취약지 공략에 나선 것을 달리 생각해 보면 최고위원 경선 1위를 목표로 확실한 깃발을 세웠음을 의미한다.


한화갑 “1위 뺏길 수 없다”

권노갑 상임고문의 불출마 선언을 전후해 이미 막강한 1위 후보로 떠올라 있는 한 지도위원과 이 고문 진영의 1위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당내에선 이를 두고 “김대중 대통령이 경선의 성격을 ‘대권이나 당권과는 관계없다’고 규정했지만 선거를 치르다 보면 어디 그렇게 되겠느냐”면서 “선거를 통해 최고위원으로 선출되면 대통령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그만큼 힘이 실리는 것은 당연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당내 최대 실세인 동교동계의 유일 후보라는 모양새를 갖춘 한 지도위원측은 선거과열에 대한 우려를 의식한 듯 아직은 물밑에서 정중동(靜中動)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 지도위원 캠프에서는 1위가 목표임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 고문과 한 지도위원간의 1위 다툼이 최고위원 경선의 최대 관심사가 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경선의 전부는 아니다.

집권 후반기 당 지도체제의 골격을 짜는 일이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세력판도가 그대로 경선에 반영될 것이란 보장은 없다. 그래도 의식수준으로 볼 때 일반 국민보다는 상당히 정치적인 대의원이 향후 대권 재창출 가능성 및 당 내부의 변화도 상당히 의식하면서 표를 던질 것이기 때문이다.

당내에 논란과 함께 미묘한 신경전의 대상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최고위원 선출방식이 ‘4인 연기명’ 투표로 결론이 날 경우 오히려 경쟁관계가 노출돼 있는 이 고문과 한 지도위원이 아닌, 2위 그룹의 누군가가 1위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이다.


2위그룹·소장파 움직임도 활발

경선의 기본축을 이 고문과 한 지도위원간에 설정하는 ‘빅2’식 분류를 가장 듣기 싫어하는 사람이 박상천 전총무다.

박 전총무는 총무-법무장관-총무로 이어지는 ‘검증된 경력’을 바탕으로 가장 분주히 누비고 다니는 경선후보중의 한 사람이다. 일부 후보 진영에서는 대의원을 상대로 설문조사도 실시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박 전총무의 득표력이 만만치 않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김근태 지도위원의 경우 같은 재야출신인 이창복 지도위원이 불출마로 기울면서 ‘개혁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에 섰다.

김 지도위원은 “턱걸이해서 (최고위원단)에 들어가겠다”고 겸손해 하지만 당내 초선의원이 59명에 달하는 판도가 김 지도위원에게는 잠재적 우군이 될 가능성이 높다. 4·13 총선을 거쳐 의정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누구보다도 변화와 개혁의 바람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소장파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현재 소장파 중 출마의사를 굳힌 사람은 ‘전북의 기대주’ 정동영 의원(2선)과 서울의 386 다크호스 김민석 의원(2선)이다.

김 의원의 경우 이번 경선을 집권당의 전체 모습을 결정할 지도체제의 구도로 설명하고 있다. 그 구도는 구체적으로는 후보군을 4개의 소그룹으로 분류한다. 당에 깊숙히 뿌리박고 있는 당권파, 차기 대권주자파, 개혁선도 세력, 소장파 중심의 당내 변화지향 세력 등이 그것이다.

경선판도는 결국 이 구도로 갈 것이며 따라서 소장파의 약진도 충분히 기대해볼 만 하다는 것이다.

지역적으로 흥미로운 것은 내부 경쟁이 치열한 전북의 중진중 김원기 고문이 구민주당 시절 자신의 최고위원 경선을 도왔던, 역시 전북의 김태식·이협 의원의 출마강행에 따라 오히려 지명직 최고위원쪽으로 선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밖에 권노갑 상임고문 진영에 있던 안동선 지도위원은 권 고문이 불출마를 선언하자 자신이 직접 경선전에 뛰어들었다. 여성인 김희선 의원은 신낙균 지도위원이 정수가 늘어날 지명직에 관심을 보이자 유일 여성 경선후보임을 주장한다.

영남의 김중권 지도위원과 김기재 의원도 출마가 확실하나 김 지도위원은 김대중 대통령의 확실한 의중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1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를 강력하게 비난했던 비주류 중진인 정대철 의원도 “안 나갈 수 없다”는 쪽이다.

고태성 정치부 기자

입력시간 2000/07/18 19:45


고태성 정치부 tsg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