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투자, 아직은 비포장길 달리는 격

경험자들이 말하는 투자환경 현주소와 전망

“북한에는 미화 10만~100만 달러를 소유한 신흥갑부가 10만명 정도 된다. 당 간부와 북송 재일교포, 화교, 농민시장을 통해 부를 축적한 사람, 중소기업 지배인, 외화벌이 간부들이다.

이들이 북한 금융의 60%를 움직이고 있으며 구매력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남북관계가 활성화하면 일반 주민의 임금도 올라가고 전반적인 구매력도 크게 향상될 것이다.”(방영철 평양컨설팅회사 대표)

“현재 남북간에는 투자보장협정이나 이중과세협정을 비롯한 법적 보호막이 전혀 없다. 따라서 문제가 생기면 투자업체가 완전히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인프라를 비롯한 투자 여건도 상상 이상으로 부실하다. 전력공급이 불안할 뿐 아니라 기계설비를 보내도 운반할 지게차가 없는 실정이다. 투자기업은 거의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KOTRA 북한실 관계자)


신중한 투자자세 필요

전자가 대북 투자의 가능성과 전망에 무게를 두고 있다면 후자는 현실 여건을 중시해 신중성을 강조하고 있다. 양자의 주장은 대북 투자를 준비하고 있는 한국 기업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시장선점에 목적을 두는 대기업은 당장의 손해를 감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잘못된 투자가 파산을 부를 수 있는 중소기업은 후자의 경고를 간과할 수 없다.

남북한 화해 가능성이 커지면서 업계가 때이른 북한특수 기대에 들떠있다. 하지만 북한 투자 경험을 갖고 있는 업체와 대북경협 관계자들은 대부분 조심스런 접근을 주문하고 있다.

북한의 투자환경에는 분명히 장점과 단점이 있다. 장점은 무엇보다 노동력의 질이 높고, 양질의 인력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국과의 합작기업에서 일하는 여공의 학력은 전문대졸 이상이 대부분이다. 기술습득 속도도 매우 빠르다.

평양에 컴퓨터 모니터 조립공장을 가동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북한 진출 성공기업으로 평가받는 아이엠알아이(IMRI) 조봉현 이사의 이야기.

“평양공장의 제품 불량률은 국내공장보다 훨씬 낮다. IMRI 평양공장 인력 120명 전원이 전문대졸 이상이고, 이중 30명은 김일성대와 김책공대를 졸업한 엔지니어다.”

노동윤리와 근로자세도 믿을 수 있는 수준이다. 조 이사는 “목표의식이 강해 특정 제품개발을 발주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정해진 기한내에 성과를 내놓는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현대건설 동남아 프로젝트 현장에서 채용하고 있는 북한 근로자들은 남한 근로자에 못지 않은 작업 성실성을 보이고 있다.


인적자원 우수, 인프라 미비가 큰 부담

상품생산을 위한 응용과학 분야 기술은 낮지만 기초과학기술은 남한을 능가한다. 평양컨설팅회사 방 사장은 “중학교 3학년 때 미적분과 상대성 이론을 배운다”며 기초과학 수준이 높은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북한에는 현재 10만명에 이르는 정보통신기술(IT) 인력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북한의 지문·음성인식, 번역 소프트웨어 기술은 세계적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3차원 애니메이션 기술은 미국의 수출규제에 묶여 슈퍼컴퓨터 도입이 차단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팬티엄급 컴퓨터 50여대를 크로스시켜 3차원 동영상을 만들어내는 것. 세련도는 다소 떨어지지만 전반적 수준은 상상 이상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평가다.

남북간 투자보장협정 등은 사실상 정치적 수준에서 타결돼야 할 문제다. 이런 점에서 대북 투자환경의 최대 단점은 전기와 도로 등 열악한 인프라 시설이다.

북한이 대외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나진·선봉지구는 인프라 미비로 인해 현재 거의 죽어버린 상태다. 남포공단 역시 간접자본 수준이 기대 이하다. 따라서 남한기업이 투자할 경우 인프라 시설까지 떠맡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현대의 금강산 개발이 대표적이다.

인프라 설비부담이 커 ‘배보다 배꼽이 커진’ 사례도 있다. 금강산 샘물을 들여오기 위해 1995년 북한에 진출한 태창은 금강산에서 원산까지 철로 108㎞를 깔아주어야 했다. 생수와 자재 수송로를 열기 위해서였다.

철도건설에 태창이 들인 돈은 총사업비 1,200만 달러의 절반에 달했다. 철도 부설비로 북한에서 아연을 받기로 했지만 자금부담으로 태창은 1998년 4월 부도를 맞아 화의에 들어가는 운명을 맞았다.

그나마 인프라가 갖춰진 곳은 평양이다. IMRI의 조 이사는 “평양 이외의 지역에서는 현지 근로자와 방북 기업인을 위한 기본적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상황이 나은 평양 주변으로 남한 기업이 몰려들면서 자연스레 공단이 형성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전력공급 사정은 평양도 만족스럽지는 않다. 북한이 대중교통 수단을 전기에 의존하고 있어 출퇴근 시간대에는 전력공급이 상당히 불안정하다. 전력 불안정은 정밀기계에는 치명적 오작동을 유발한다.

IMRI측은 평양공장의 불량률을 줄이기 위해 출퇴근 시간대에는 작업을 중단하고 있다. 겨울에는 난방장비가 전기소모를 증가시켜 제품불량을 낳기도 한다. IMRI측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방한 작업복을 특별 제작하고, 형광등을 고효율 발열전구로 교체해 난방용 전기소모를 줄이고 있다.


안전장치 마련해두고 들어가야

수익성 있는 품목이 극히 한정돼 있다는 것도 문제다. 양질의 인력을 싸게 이용할 수 있긴 하지만 물류비를 계산에 넣으면 그게 그것이기 때문이다. LG전자 TV조립공장의 경우 계속적인 원부자재 물류비 때문에 생산단가가 국내보다 더 비싸게 먹히고 있다.

북한 주민의 구매력을 감안할 때 앞으로 상당기간 제품을 현지판매하기는 어려워 물류비 부담은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지금까지 북한진출 제조업체들이 물류비 부담이 비교적 적은 섬유 위탁가공에 치중해 온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국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북한실 배상범 과장은 “특히 중소기업의 북한 투자는 임금비중이 높은 품목 위주로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투자업종은 북한측의 선호와 맞아 떨어지면 금상첨화다. 업계에 따르면 북한은 전자분야와 전력소모가 적은 업종에 대한 투자를 특히 환영하고 있다.

투자방식도 업종선택 이상으로 중요하다. IMRI 유완영 회장은 “대북진출은 최소한 2년의 경과기간을 두고 추진하되 투자규모도 여유분으로 한다는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잘 풀리지 않을 경우 과감하게 털고 나올 수 있어야지 너무 깊이 발을 담갔다 물리게 되면 계속 북한측 요구에 끌려다니게 된다는 이야기다.


대북투자방식

대북 투자 방식은 크게 합영·합작방식과 단순 임가공방식이 있다. 합영·합작방식은 토지와 건물은 북한측이 제공하고 각종 세금을 포함한 나머지는 투자회사가 부담하는 것.

대우의 남포공단 투자가 대표적인 이 방식은 양측에 분규가 생겼을 경우 투자회사가 전적인 손실을 입게 된다.

단순 임가공방식은 기존 공장시설에 투자회사가 원부자재와 임가공비를 제공해 제품을 생산하는 방법이다. 섬유의 90%가 이 방식으로 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기술지도 목적의 방북이 어려운데다 북한측이 자체물자 생산을 위해 임의적으로 임가공 생산을 잠정중단할 수 있어 불리한 점이 있다.

북한은 민족경제협력연합회(회장 정운업·차관급)를 통해 남한 기업의 투자를 관장한다.

민경련은 산하에 개선, 삼천리, 광명성, 금강산 등 4개의 무역총회사를 두고 남한 기업인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북한은 장기적 투자가 필요한 사업보다는 단기적 실적이 나오는 업종을 선호한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7/18 20:04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