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의 '대책없는' 과외대책

면피에 급급, 불확실한 정책으로 혼란만 가중

과외문제가 세달여만에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지난 4월27일 헌법재판소가 과외금지 위헌 결정을 내린 이후 학부모들은 뭔가 고액과외를 규제할 수 있는 대책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결국 허망하게 어긋나고 말았다.

과외대책의 최종판은 7월10일 민주당과 교육부의 당정협의 결과로 발표됐다. 골자는 이렇다. 우선 모든 과외교습자는 시·도 교육청에 교습 사실을 신고하고 1년에 한번 과외소득을 세무서에 신고해야 한다. 단, 대학생과 대학원생은 예외다.

신고의무를 어길 경우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과외소득에 대해서는 일정액 이하는 면세하고 일정액 이상은 국세청이 별도로 액수를 규정, 중과세토록 할 계획이다. 이런 대책은 학원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법제화한다.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 이같은 내용의 당정협의 결과 발표까지 세달간의 과정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교육당국의 의식과 수준이 그대로 드러난다.

당초 헌법재판소가 과외금지를 위헌으로 결정한 것은 “누구든지 과외교습을 하여서는 안된다”고 규정한 학원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제3조가 자녀교육권과 직업선택권의 자유를 너무 포괄적으로 침해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헌재는 위헌 결정과 함께 “고액과외나 현직 교사의 과외교습과 같이 중대한 사회적 폐단이 우려되는 경우에는 별도의 입법을 통해 규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이에 따라 과외문제는 ‘원칙적 금지, 예외적 허용’에서 ‘원칙적 허용, 예외적 금지’로 접근틀을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초점 흐려진 고액과외대책

문제는 예외적 금지. 현직 교사나 교수의 과외는 국가공무원법의 영리업무 및 겸직금지 조항에 따라 헌재 결정에 관계없이 여전히 불법인만큼 문제는 고액과외로 압축됐다.

교육부도 정치권도 사회적 폐해가 심각한 고액과외 규제로 논점을 맞췄다. 그러나 이번 대책을 보면 문제의 초점이 완전히 흐려지고 말았다. 한마디로 고액과외 규제용 대책이 전혀 아니다. 왜 그런가.

예를 들어보자. 한 주부가 이웃집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고 한달에 10만원을 받는다고 치자. 개인별로 또는 몇명씩 모두 20명을 가르치면 그의 월 과외소득은 200만원이다.

반면 유명 학원강사가 학생 1명에게 영어를 개인지도해주고 200만원을 받을 때 그의 월 과외소득도 200만원이다. 두 사람 모두 교육청에 과외교습 사실을 신고하고 세무서에 과외소득을 신고해야 한다.

소득이 같으니 세금도 똑같다. 10만원짜리 ‘저액’과외와 200만원짜리 ‘고액’과외가 신고의무와 과세 측면에서 전혀 차이가 없는 것이다. 특히 대학생이 기업형 과외로 한달에 200만원을 벌 때는 신고조차 면제된다. 신고가 없으니 과세도 물론 없다.

또한가지. 이번 대책은 학원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법제화하게 된다. 그런데 이 법은 학원비를 규제하기 위한 법규다. 따라서 동일한 법률로 학원에 대해서는 학원비를 정부가 규제하고 개인에 대해서는 자유화하는 모순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뒤죽박죽인 상황이 벌어지는 이유는 이번 대책의 정책목표가 불확실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도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목표와 방법이 모호한 이유는 과외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고 있고,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도 미약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정책 목표 불확실, 방법도 부적절

교육부는 당초 고액과외 규제를 위해 경찰·국세청과 합동으로 고액과외단속반을 운영하고 새 법을 만들 때까지 우선 고액과외 기준을 만들어 과외교습자에 대해서는 중과세하고 과외 학생의 부모에 대해서는 자금출처 조사 등의 방식으로 압박을 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달여가 지나면서부터 슬그머니 “고액과외 단속은 물론 고액과외의 기준을 정하기조차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발을 빼기 시작했다.

심지어 관계자들은 “1980년 7월30일 과외 전면금지 조치 이후 실질적으로 과외단속이 된 적이 있느냐”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고액과외 교습자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고액과외 단속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학부모도 고액과외 규제법을 만든다고 해서 고액과외를 모두 단속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왜 설문조사에서 70% 이상의 국민이 고액과외를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을까.

고액과외 문제는 사회통합의 문제다. 초·중등 교육은 보통평등 교육이라고 한다. 고등학교까지는 누구나 똑같이 적절한 교육을 받을 기회가 보장돼야 하는 것이다.

대입제도의 헛점 때문에 돈 많은 사람의 자녀만 고액과외를 통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기회를 독점하게 된다면 똑같은 세금을 낸 서민은 억울할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사회보장제도가 취약한 나라에서 교육기회 조차 재산 정도에 따라 차등적용된다면 사회통합은 정말 어렵다.

더구나 이제는 옛날처럼 교과서만으로 공부해서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도 아니다. 그러지 않아도 가난한 집 자녀와 부잣집 자녀의 교육기회 차이는 더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가가 이를 적절히 메워주지도 않는다.

더구나 고액과외는 교육 자체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창의성을 키워주지도 않고 바람직한 인성을 형성해 건전한 사회인으로 크는 데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교과목을 남보다 먼저, 조금 깊게 배워 대학에 들어가는 데 일시적 도움이 될 뿐 진정한 학업능력 향상과는 큰 관계가 없다. 특히 21세기 국가경쟁력 향상에는 전혀 도움이 안된다.

고액과외 규제는 이처럼 폐단이 많은 사안에 대해 이 사회가 용납하지 않겠다는 하나의 선언이다. 현실적으로 규제가 어려운 것과 규제가 어렵기 때문에 규제를 포기하겠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윤락행위를 단속하기 어렵다고 해서 윤락행위방지법을 없앨 수 없는 것이나 낙태금지법이 있어도 한국이 낙태 1위국이라는 오명을 여전히 떠 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과외문제는 이제 물 건너 간 얘기가 됐다. 교육부는 헌재 결정에 대한 대비는 커녕 문제가 터진 이후에도 우왕좌왕하다가 대책 발표까지 민주당에 떠넘기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교육부가 과외문제의 폐해를 교육적으로 심각하게 고민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한 흔적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저 대책을 세우겠다고 해놓았으니 ‘뭔가 하긴 했다’는 면피를 하는 데 급급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이런 정부가 과외대책으로 공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교육세를 영구세화하고 세율을 인상해달라고 할 때 국민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광일 사회부 차장

입력시간 2000/07/18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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