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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들여다보기] 변호사의 견제

[미국 들여다보기] 변호사의 견제

요사이 국내 언론을 보면 정부에 대한 비난이 대단하다. “사회 전반의 문제점을 인식하지도 못하면서 문제해결은 커녕 일관성 없는 발언으로 오히려 시장의 혼란을 가중시킨다”면서 꼬집고 있다.

최근의 국군 포로 발언이나 은행의 지주회사 설립에 대한 관료들의 발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심지어 유력 일간지에서는 별 탈없이 끝난 상급자의 연설에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담당 공무원의 모습이 만평으로 나오기도 했다.

고위 공직자의 발언은 미국에서도 상당히 주목받는다. 대통령이나 장관 등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은 언론의 감시를 받는다.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경우라도 관련 전문가 집단의 집중된 시선을 피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연방 통신위원회 위원장이 무슨 내용의 연설을 하였느냐는 바로 다음날 통신 전문 뉴스레터에 그대로 실린다. 미국, 아니 어쩌면 세계의 수많은 통신 사업자들이 그의 발언에서 어떤 실마리라도 찾아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공직자의 발표는 내용뿐만 아니라 어휘선택에 있어서도 내부적으로 상당한 검토를 거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변호사의 검토를 거친다는 것이다.

미국의 고위 공직자들은 정치적으로 임명된 사람들이다. 전형적인 대통령 중심제 아래서 이들은 대통령과 같은 배를 타고 있는 공동 운명체이기 때문에 백악관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백악관의 정책을 집행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들에게는 상당한 정도의 재량이 부여돼 있다. 고위 공직자의 행동 반경을 제한하고 견제하는 것이 바로 변호사다. 정부 각 부처에는 법무실이 있다. 법무실에서는 부처내의 모든 법률적 문제를 검토하여 의견을 주고 각 부서에서는 법무실의 의견을 따라 의사결정 또는 집행을 한다.

물론 공직자들은 법무실의 의견과 다른 의사 결정이나 집행을 할 수 있겠지만 그에 따른 책임을 질 각오를 해야 한다. 반면에 법무실의 의견을 따른 경우에는 오히려 자신의 결정에 방패막이가 되어줄 수 있는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의 고위 공직자로 있는 한국계 인사들에 따르면 클린턴 자신이 변호사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문제들은 법무실에 자문을 구한다고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분야에 처음 들어온 사람으로써 혹시나 범할 수도 있는 실수를 예방할 수 있고 자기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제대로 일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의 행정부처에는 수많은 변호사가 있다. 예를 들어 전체 직원이 3만명 가량인 상무성에 변호사들이 모두 800명 있다고 한다.

물론 상무성내에 특허청이나 국제통상 분쟁 등을 다루는 조직이 있어 법률 수요가 많기는 하지만 다른 부처도 별반 차이가 없다. 변호사들이 각 부처의 공식적 입장을 표명하는 자리에는 꼭 참석하여 법률적인 검토를 해준다.

한국에서 한창 재외동포에게 이중국적을 허용하느냐를 놓고 논란이 있었을 때 미국 이민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이민국 담당자는 사안의 성격상 국무성의 관련 담당자도 동석시키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막상 이민국에 가보니 우리가 접촉한 이민국 담당자 및 국무성 담당자 외에 이민국의 변호사가 한사람 더 있었다. 이민국의 입장을 외국 정부에 이야기한다고 하자 변호사의 입회가 없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알다시피 미국엔 변호사가 많다. 수많은 변호사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스며들어 각 조직의 견제와 여과의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 기업에서 의사결정의 병목 현상은 대부분 법무실에서 일어난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한때 IBM에서는 “법무실만 없애면 생산성을 20% 향상할 수 있다”는 농담까지 나왔을까. 그러나 미국은 이렇게 법률적 검토로 지연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더 큰 위험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깨달은 것 같다.

심심치않게 말썽을 빚는 우리 공직자의 발언이 법률가들의 자문을 얻었는지는 모르겠다. 훌륭한 법률 자문에 따른 의사 결정이나 행위라 하더라도 사회적 비난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최선을 다했다는 논리는 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갈수록 복잡하고 다양화하는 사회에서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수장(首長)은 이제 설 자리가 없어져 가는 것 같다.

박해찬 미 HOWREY SIMON ARNOLD & WHITE 변호사 parkh@howrey.com

입력시간 2000/07/18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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