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제 2의 아편전쟁’

마약 급속 확산, 백서 발간 등 사회정화 박차

161년전인 1839년 6월3일, 중국 남부의 광둥(廣東)성 후먼(虎門) 해안에서는 237만근에 달하는 아편이 불타고 있었다. 황제의 마약척결 명을 받아 파견된 흠차대신 린쩌쉬(林則徐)가 영국 상인들로부터 몰수한 아편이었다.

아편소각 사건은 중·영간 아편전쟁(1839~1842)을 촉발시켰다. 중국은 4년에 걸친 전쟁에서 무참히 패해 서구열강의 반식민지 상태로 전락하게 된다.

중국이 반식민지의 굴욕을 벗은 것은 100여년 뒤인 1949년. 신중국이 출범하면서 비로소 영토의 완전성을 획득하게 된다.

그래서 아편전쟁은 중국 현대 민족주의의 알파요 오메가다. 아편전쟁은 중화(中華)의 자존심을 서구 오랑캐에 짓밟힌 상징이자 홍콩과 대만을 비롯한 영토할양의 출발점이었다. 때문에 아편전쟁의 치욕은 새로운 중국건설을 위해 민중의 에너지를 동원할 수 있는 키워드였다.

1990년대 들어 중국에서 매년 6월3일은 국가적 기념일로 자리잡았다. 린쩌쉬는 봉건왕조의 관리가 아닌 민족적 영웅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재평가의 이면에는 민족주의를 정신혁명으로 연결시키려는 중국 공산당의 의도가 숨어있다. 개혁·개방에 따라 사회주의 의식이 해이해지고 이 틈을 타 급속히 확산되는 마약을 척결하기 위한 대책이다.


국가 존망걸린 중대사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은 6월26일 처음으로 마약백서(中國的禁毒白皮書)를 발표했다. A4용지 7쪽 분량의 백서는 전문과 마약에 대한 당국의 입장, 복용자 처벌 등 7개 장으로 구성됐다.

백서는 ‘마약척결을 중화민족의 존망이 걸린 막중대사로 취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중국이 바야흐로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셈이다.

백서의 규정에서 드러나듯이 중국에서 마약문제는 이미 체제의 근간을 흔들수 있을 만큼 심각한 폐해를 드러내고 있다. 백서가 추산한 마약복용자는 전인구의 0.54%. 중국 인구를 12억명으로 잡을 때 650만명에 달한다.

이 바람에 날아가는 돈은 1년에 2,000억 위앤(24조원) 이상으로 집계되고 있다. 마약은 특히 청소년 사이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어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마약복용자의 79.2%가 35세 이하로 조사됐다. 마약은 에이즈 창궐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 보고된 에이즈 환자 1만7,316명 중 72.4%가 마약을 정맥주사하는 과정에서 감염된 것으로 밝혀졌다.

땅이 넓고 인구가 많다보니 적발된 마약사건 건수와 압수마약 물량도 엄청나다. 1991~1999년 9년간 당국이 적발한 마약범죄는 80만건이 넘었다. 압수된 마약은 헤로인 39.67톤, 아편 16.894톤, 대마 15.079톤, 메틸알데히드 23.375톤에 달했다.

마약제조에 전용할 수 있는 각종 화학물질 불법거래와 밀수도 당국의 골치거리다. 1997~1999년 3년간 적발된 마약제조용 약품 불법거래건는 548건에 달하고 양은 자그만치 1,000톤이 넘었다.


마약 경유지에서 소비·생산국으로

백서는 중국이 국제적 마약유통의 단순 경유국에서 경유국이자 소비국으로, 나아가 생산국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과거 중국으로 유입되는 마약의 원산지는 속칭 ‘골든 트라이앵글’로 불리는 인도차이나 반도의 태국-미얀마 국경지대.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에서 생산된 마약이 국경을 접한 윈난(雲南)성과 구이저우(貴州)성 등을 통해 중국으로 유입된 뒤 해외로 재수출됐다. 1982년 이래 윈난성에서 적발된 마약은 7만여건에 80여톤 규모.

이곳에서 월경과 국내판매, 해외재수출 루트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조직범죄단(흑사회). 흑사회는 1990년대 초반 당국의 대대적인 소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력이 꺾이지 않고 있다.

마약 밀수, 유포를 막기 위해 당국이 지금까지 취한 대책은 ‘3도방선’(三道防線)으로 불리는 중층 단속 전략. 국경에 1선 방어선을 세우고, 다시 내륙 후방에 2선, 마지막으로 주요 교통로와 공항 역 항만에 거점 방어망을 두어 단계적으로 걸러내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마약생산 자체를 원천봉쇄할 수 없다.

따라서 중국은 주요 마약작물 재배지로 지목된 동북지역 따싱안링(大興安領) 산맥과 서북지역 리엔화산(蓮花山) 등지의 원시산림 지역에 대한 항공조사와 실지조사를 강화하고 있다.

마취약과 각성제를 비롯한 향정신성 의약품도 당국의 요주의 대상이다. 중국은 마취약 118종과 향정신성 의약품 119종을 중점 관리대상으로 지정해 생산, 사용, 수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마약제조 원료로 전용될 수 있는 과망간산칼륨 불법수출 적발만 지난해 4~12월 8개월간 1,160톤에 달했다.


복용자는 처벌, 거래자는 총살

중국은 이번 백서발행을 통해 마약과의 전쟁을 보다 구체화했다. 한편으로는 법·제도적 틀을 통일적으로 정비하고 또한편으로는 마약방지 국민운동을 벌이는 양면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중국의 각종 법률은 마약복용자는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특히 마약거래자는 무조건 총살형이다. 6월22, 23일 이틀간 베이징(北京)과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시에서는 모두 18명이 마약밀매죄로 공개처형됐다. 26일에는 대만인이 포함된 마약사범 10명이 총살됐다.

중국은 각 지역에 마약복용자 조사등기제도를 실시하고 있으며 중앙 관계부처와 지방간에 핫라인을 가동하고 있다. 이밖에 약물남용 감독 인터넷 사이트를 설치해 정기적으로 자료를 수집, 취합하는 동시에 복용자 상황을 체크하고 있다. 적발된 중독자는 감호소 강제수용에서부터 사회복귀에 이르기까지 다단계로 정부가 관리하고 있다.

중독자는 맨먼저 각급 정부가 건립한 감호소에 일률적으로 수용돼 강제로 마약을 끊게 된다. 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전국의 감호소는 746곳이며 모두 22만4,000명이 수용돼 있다. 감호소 출소자가 또다시 마약복용으로 적발되면 노동교양소에 수용돼 강제노동을 하면서 마약을 끊게 된다.

노동교양소는 전국에 168개가 설립돼 있고 수용자는 12만명에 이른다. 감호소나 노동교양소에 수용하기가 어려운 중독자는 해당지역 공안파출소의 감독하에 가택치료를 받도록 하고 있다.

당국은 마약을 끊은 사람의 사회복귀를 지원하기 위해 취직, 진학 등에서 이들이 마약전력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위기의식

마약방지 국민운동은 ‘마약없는 마을’(우두서취·無毒社區)만들기와 국민의식 고양, 청소년 교육강화 등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최근 실시된 우두서취 운동은 마을 단위 감시조 편성, 주민간 상호감시체제 설립을 통해 마약을 단속하는 일종의 ‘5호 감시체제’. 마약에 대한 범국민적 경계심을 높이기 위한 대중교육도 1999~2001년 3개년을 중점 실시기간으로 정해 추진중이다.

각급 지방정부에 의무적으로 마약방지 교육장을 세우게 하고 각급 학교에는 매년 한 차례 마약방지 활동을 벌이게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중국 지도부는 마약확산을 파룬궁(法輪功) 추종자 확대 현상과 같은 맥락에서 파악하고 있다.

개혁개방으로 인해 사회주의 이념이 사회통합 기능을 상실하면서 이념적 공백현상이 나타났고, 이 공백을 마약과 사교가 채우고 있다는 위기의식이다. 장쩌민(江澤民) 중국주석이 강조하고 있는 ‘사회주의 정신문명 건설’은 마약전쟁과 직접적인 연관을 갖고 있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7/1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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