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사이트 급증, 여름철 무더위 쫓는데 '그만'

쭈뼛·오싹… 공포의 시간여행

잘려진 팔에 온몸은 피범벅이 된 시체, 붉은 실핏줄이 툭 불거진 눈으로 노려보는 중년 여인, 화상으로 이지러진 얼굴로 울고 있는 젊은 여자,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기괴한 웃음소리, 쇳소리 가득한 고함소리….

온몸에 소름이 돋고 뒷목이 서늘하도록 관객을 공포속으로 몰아가는 공포영화의 장면들이 인터넷속으로 옮겨갔다.

한 여름밤을 무더위를 쫓는 방법으로 인터넷 호러 사이트가 젊은이들에게 인기다. 영화와는 달리 혼자 컴퓨터를 통해 사이트를 검색하다보면 공포영화보다 공포스럽고 잔혹한 장면들로 때때로 머리가 쭈뼛서고 뒷목이 서늘해진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어깨가 처지는 여름. 예전엔 TV 납량특집이 밤열기를 씻어주었지만 이제는 그 자리를 호러사이트가 차지했다. 특히 최근들어 호러 사이트의 수도 훨씬 늘고 기존 사이트들도 더욱 공포스럽고 자극적인 장면을 대거 보강해 홀로 사이트를 검색하면서 담력을 시험해볼 만하다.

머리만 거대한 어린아이, 머리칼은 하나도 없고 군데군데 피가 엉겨붙어 있는데 진득진득한 고름이 흘러내린다.(www.rotten.com에서)

흉측하게 잘려진 팔과 다리들, 잘려나간 부분에선 새빨간 피가 뚝뚝 떨어진다.(www.furt.com/scott/flesh/fleshpage.html에서)


잔인한 영상에 괴기스런 음향까지

이처럼 징그럽고 기괴한 영상으로 중무장한 인터넷 호러사이트를 여행하다 보면 어느새 더위는 딴 나라 얘기다.

일부 사이트는 귀신의 울부짖음이나 귀를 찢는 여인의 비명소리와 같은 음향효과와 짧은 엽기 만화 등 다양한 동영상도 구비해 놓고 네티즌들을 ‘공포의 시간여행’으로 초대한다.

또 대부분의 호러 사이트들은 첫화면에서부터 ‘이제부터 당신의 심장박동을 책임집니다’‘임산부, 어린이 출입금지’ 등 위협적인 문구로 호기심과 두려움을 조성한다. 잔인한 영상뿐만 아니라 간혹 성적인 농도가 짙은 농담, 괴기스럽지만 입가에 웃음을 남기는 사진 등을 제공해 색다른 재미를 안겨주는 사이트도 있다.

잔혹, 공포에도 서늘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호러사이트중에서 엽기적인 장면을 주로 취급하는 사이트를 들어가 보면 된다.

원래 공포물보다 더 역겹고 충격적인 내용을 지칭했던 엽기는 최근 코믹한 요소까지 덧붙여지면서 그 자극은 더욱 강해졌다.

엽기물 매니아인 강인구(서울 노원구 상계동)씨는 “엽기적인 장면은 사회적 터부를 과감히 깨뜨린데다 ‘더럽다’‘저질이다’고 욕하면서도 다시 보게 되는 일종의 마력같은 것”이라면서 “마치 어린애들이 불량식품이나 싸구려 장난감에 빠져드는 것과 유사한 심리”라고 말했다. 마치 가려운 데를 계속 긁으면 느껴지는 쾌감과 같다는 것이다.


날씨 더워질수록 조회수 늘어

인터넷 포털사이트인 다음(www.daum.net)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등록되어 있는 호러사이트는 대략 120개정도. 동호회만도 70여 개에 회원은 5,000 명에 이른다.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서 ‘호러’ ‘공포’ ‘엽기’단어의 조회수가 엄청나게 늘었다고 한다.

다음의 홍보담당인 김민정씨는 “날씨가 더워지면서 호러 동호회와 호러 사이트가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호러사이트 중 매니아들이 추천하는 곳으로는 엽기적인 만화 동영상을 제공하는 엽기왕(members.tripod.lycos.co.kr/iason85)과 올크레이지(allcrazy.com) 등이 있다. 엽기왕은 기대만큼 잔인하진 않지만 코미디를 적절히 배치, 공포감과 함께 재미를 추구한다.

올크레이지는 수많은 호러사이트를 모아놓은 링크사이트. 일단 이 곳에 들어가면 잔혹과 엽기에 대한 수많은 사이트에 손쉽게 들어갈 수 있다. 역겨운 장면들로 채워져 있어 호기심과 자극을 충족시키지만 비위가 약한 사람들은 피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공포스런 글을 모아 놓은 공글모(i.am/gongulmo)와 엽기, 잔혹, 공포를 적절히 섞어놓은 귀신의 입술(my.netian.com/~nan15cm), 다양한 시체 사진과 귀신이야기를 모아놓은 호러픽쳐쇼(galaxy.channeli.net/shps/main.htm), 수많은 해골사진에 음산한 음향효과까지 갖춘 호러월드(horrorworld.pe.kr)도 찾아가볼 만하다.

이런 호러사이트들은 대개 개인이 운영하는 바람에 접속 속도가 느린 게 흠이지만 공포를 표현하는 데는 거침이 없다.

인기높은 호러사이트는 무덥고 짜증스런 오후시간대에 주로 붐비는 편이다. ‘귀신의 입술’ 사이트를 예로 들어보면 하루 총 1만여 건의 접속 건 중 오후 2~8시에 절반이 넘는 5,400여건의 접속이 이뤄졌다.

연세대 주변에서 PC 방을 운영하고 있는 박모(30)씨는 “방학으로 전반적으로 손님이 줄었들었지만 날씨가 더우면 더울수록 손님이 늘어난다”면서 “호러사이트의 주소를 물어보는 젊은이들도 있다”고 귀뜀했다.


10~20대가 주로 이용

현재 호러사이트 ‘귀신의 입술’을 운영하고 있는 김경훈(21)씨는 주로 10대와 20대가 호러사이트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잔인한 사진이나 등골이 오싹할 만한 이야기를 올리면 ‘재미있다’‘멋있다’고 칭찬하는 네티즌들이 많고 어떤 이들은 감사메일을 보내오기도 한다고 밝혔다. 물론 직접 으스스한 괴담을 게시판에 띄우는 네티즌도 있다.

특이한 것은 여성들도 호러사이트를 자주 찾는다는 점이다. 공포물을 즐긴다는 신모(25·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양.

“호러사이트에 들어가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어요. 잔뜩 긴장한 채 기괴하고 무시무시한 장면을 보면 어느새 시원해지지요. 온몸에 오싹한 느낌이 들면 더위를 잊는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호러사이트들에 대해 과격한 반응을 보이는 네티즌들도 없지않다. 엽기적이고 잔인한 사진들을 비난하며 해킹을 하겠다고 위협하는가 하면 운영자를 위협하기도 한다.

‘귀신의 입술’ 운영자인 김씨는 “사이트를 폐지하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여러 번 받았다”며 그냥 재미있게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기희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7/18 22:07


송기희 주간한국부 gihu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