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스타열전(20)] 김성현 넥스텔 사장(上)

오뚝이 근성으로 일어선 '컴맹' 벤처인

산은 오르기가 쉬울까, 내려오기가 쉬울까? 또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과 내려왔다 다시 올라가는 것은? 사람마다 조금 다르겠지만 보통사람이라면 내려오기보다는 오르기가 어렵고, 내려왔다가 다시 오르는 건 더욱 힘들 것이다.

인생살이도 이와 마찬가지 아닐까. 정상에 올랐다가 바닥으로 떨어진 뒤 다시 올라가야 한다면, 생각 만으로도 끔찍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쉬 포기하기 마련이다.

정보통신분야 벤처업계의 정상에 올라 까마득한 과거를 내려다 보며 새로운 내일을 다짐하는 김성현 넥스텔 사장은 ‘바닥’을 맛본 몇 안되는 벤처인중 하나다.

김 사장은 20대에 이미 벤츠승용차를 굴리는, 잘 나가는 젊은 사장 대열에 올랐다. 그러나 독립기념관 화재사건으로 한순간에 모든 것을 날려버린 뒤 자살을 시도했고, 인간이 과연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스스로를 혹독하게 담금질한 후 지금은 하이테크 분야에서 ‘작은 거인’으로 우뚝 섰다.

“이미 죽었던 사람이 덤으로 사는 인생인 만큼 후회없이 열심히 살고 있다”는 김 사장은 첫 느낌부터 여느 벤처인과는 다르다. 이미 50대에 들어선 나이, 그 흔한 컴퓨터 한대 없는 사장실, 기술개발보다는 대외업무로 더 바쁜 하루 일정 등등. 그리고 스스로를 ‘컴맹’이라 부른다.

그의 왕성한 대외활동은 다른 업계에서도 알아줄 정도. 최근에는 정보통신중소기업협회(PICCA) 회장직을 맡아 얼굴 한번 보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영광과 좌절이 인생 다 겪어

그러나 그에게는 범상치 않는 구석이 더 많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1994년 7월에 토털 인터넷 서비스 회사를 세운 것이 그렇고, 철저하게 20대의 고급인력만을 고집하는 인사정책이 그렇다.

한국 전자문화의 산실 테크노마트 20층에 자리잡은 사무실에서 김 사장을 만났을 때도 그의 얼굴에서 영광과 좌절이 교차된 세월의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젊은 벤처인 못지않는 패기가 흘렀다. 시원시원한 답변은 무더운 여름 날씨를 날려버릴 정도. 눈앞의 장애물에도 아랑곳 않고 거침없이 달리는 불도저형이랄까.

“성공은 기다리는 사람에게 절대로 오지 않습니다.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넘어지면 일어나고, 또 일어나 힘껏 뛰어야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합니다.”

벤처기업이 하나도 제대로 하기 힘든 인터넷 전용선 서비스(ISP)와 전자상거래 솔루션 개발, 웹기반의 지리정보시스템(GIS) 등에 뛰어들어 사업을 안정적인 성장궤도에 올려놓은 원동력도 따지고 보면 불꽃같은 그의 의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은 웬만한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다.

“대학 졸업후 매형의 강화플라스틱(FRP) 제조회사에 들어가 사업을 배웠습니다. 잘 나갔죠. 그러다가 1986년 부도를 맞고서는 남의 도움없이 하루 세끼를 먹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처음으로 체험했습니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치욕이었어요.” 견디다 못한 김 사장은 삶을 포기하기로 했다.

어느날 소주를 마시고 남한강에 자동차를 몰고 뛰어들었다. 자살을 시도한 것이다. 그런데 그가 뛰어든 지점에 바로 몇시간 전 교통사고가 발생, 경찰차와 구급차 크레인이 배치돼 있었다. 곧바로 차가 땅위로 끌어올려졌고 그는 단순히 음주운전으로 입건됐다.

“죽는 것도 쉽지 않더군요. 그래서 기왕 망한 김에 철저하게 밑바닥 인생을 살아보고자 의정부 변두리에 있는 덕정리와 소록도 나환자촌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버림받은 분들이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재기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때의 깨달음은 그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늘 큰 힘이 됐다. 적은 일에도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활할 수 있었다.


'컴'자도 모르면서 인터넷사업 시작

그가 재기를 시도한 곳은 이웃나라 일본이다. “부도 이후 옴짝달싹못하게 옭죄고 있던 여러 문제를 해결한 뒤 1989년 일본으로 건너갔어요. 배운 게 FRP 사업이라 일본에서도 FRP 분야에 뛰어들었습니다. 재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돈을 모으자 고향 생각이 났다. 그래서 미국의 유명 컨설팅회사에 25만 달러를 내고 앞으로 어떤 비즈니스가 유망한지 의뢰를 했다. 결과는 두 가지. 미국에서 세탁전문 공장을 하든가, 한국에서 인터넷 사업을 하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인터넷을 택했다.

그러나 그는 컴퓨터의 ‘컴’자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되돌아보면 무모한 도전이었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은 한국에서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처음에 ISP가 뭔지도 모르고 그쪽에 손을 댔죠. 연구인력이 부족해 하버드 예일 등 미국 유명 대학 출신들을 불러모으고, 국내에서도 실력이 있다고 소문이 난 사람은 직접 찾아가 애걸하다시피 해서 데려왔습니다. 사람이 모이니까 이제는 자금이 모자랐어요.”

어렵게 안정이 되나 싶자 이번에는 굴지의 대기업이 인터넷에 대한 가능성을 보고 뛰어들었다. 벤처기업으로서 대기업과 경쟁하는 것은 무리. 그래서 생각해낸 게 인터넷 솔루션 개발이었다.

“1996년 포항공대 출신을 중심으로 연구소를 세우고 인터넷 관련 솔루션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인트라넷과 전자상거래 솔루션을 개발했고, 급기야는 웹기반의 GIS까지 손을 댔습니다.”


매출 150목표인 인터넷 종합 서비스회사

넥스텔은 인터넷 종합 서비스회사다. 지난해 매출 80억원을 넘어섰으며 올해에는 150억원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종업원 80여명. 인터넷 3인방으로 불리는 새롬기술과 다음, 한컴보다 먼저 인터넷 사업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에게 그리 알려지지 않는 것은 기업만을 상대해 왔기 때문이다.

넥스텔이 삼성물산에 구축해준 전자상거래시스템인 MIS(Merchant Intelligece System)는 지난해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가 선정한 ‘99년 최고 전자상거래 사이트’로 선정되기도 했다.

벤처기업을 평가하는 요인으로 대개 기술력과 성장성, 최고경영자(CEO)의 능력을 든다. 이 가운데 넥스텔의 가장 큰 약점인 것 같으면서도 강점이 바로 CEO의 능력이다. 김 사장은 그야말로 ‘컴맹’이지만 인터넷의 발전 흐름엔 정통하다.

또 바닥까지 떨어졌다 오뚝이 처럼 일어선 경험이 있다. 김 사장이 GIS를 21세기의 유망한 인터넷 비즈니스로 판단, 거침없이 뛰어든 것도 이같은 자신의 복합적인 능력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계속>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0/07/18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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