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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세상읽기] 덩치가 커지면 안되는 이유

[문화로 세상읽기] 덩치가 커지면 안되는 이유

무조건 크면 좋다. 차도, 집도, 도시도, 키도. 심지어 성기까지. 워낙 없이 살았고, 땅덩어리도 좁고, 덩치도 왜소하고, 도시로만 모든 혜택이 집중되고, 포르노 잡지를 보면 놀랄 정도로 큰, 영화 ‘부기 나이트’의 주인공처럼 30㎝나 되는 것을 가진 서양인이 즐비하니 그럴지도 모른다.

찾으면 이유는 또 있을 것이다. 성실하고 근명하게 사는 사람을 비웃듯이 끝도 없이 터지는 대형 비리사건, 주식투기로 하루아침에 수억원을 벌었다는 사람들.

그래서 우리는 도박을 해도 “크게 지르고 크게 먹자”고, 고스톱을 쳐도 한방에 끝내자고 “못 먹어도 고(Go)”를 외친다. 사탕만 팔아서는 욕심이 안차 기업은 기술과 노하우를 축적하기 보다는 이것저것, 심지어 생수장사까지 벌이는 벌리는 문어발 확장을 한다. 그래서 계열사가 몇개이냐가 곧 기업의 힘이다.

아마 세계에서 우리만큼 사이즈 콤플렉스가 심한 나라는 없을 것이다. 일본만 해도 미국 콤플렉스가 있지만 사이즈 때문은 아니다. 그들은 가볍고, 작고, 짧고, 얇은 제품으로 미국의 크고, 강하고, 투박한 것을 이겼다.

거대한 자본의 할리우드 영화에 자리를 내준 대신 작고 섬세한 애니메이션으로 역공을 했다. 덩치가 크면 뒤따라야할 것이 많다. 우선 몸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많이 든다. 튼튼하려면 운동도 많이 해야 한다. 덩치만 크고 허약하면 금방 쓰러진다.

‘쉬리’이후 한국 영화의 덩치가 커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부작용. 누구나 무모하다고 생각한 것에 ‘쉬리’는 도박을 걸었고, 결과는 탤런트 오연수의 어머니가 라스베거스 카지노에서 단돈 6달러에 수십억을 벌었듯‘잭팟’이었다.

규모는 작지만 탄탄하고 짜임새있게 영화를 만들어 조금이라도 흥행수익을 건지려는 영화인은 판을 크게 벌이기 시작했다. 투기자본들도 영화가 확률 높은 도박판으로 생각하고 마구 몰려들었다. 그들은 ‘쉬리’의 다른 성공요인이 된, 철저한 계산과 땀과 고독한 승부의 긴 시간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성공이 다시한번 오는 데는 더 많은 시간과 땀과 준비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외면했다. 돈 걱정이 없어진 영화제작자들. 이리저리 사업 벌이고 영화사 덩치, 영화 덩치를 키웠다. 100원 투자해 10원 벌기 보다는 1만원 투자해 1,000원 벌자. 100번 할 것, 한 번으로 끝내자.

그 결과 40억원까지 쏟아부어 탄생한 영화가 ‘비천무’. 그러나 비천무(飛天舞)는 비천무(悲千舞)가 됐다.

김희선, 신현준의 앵무새와 폼만 잔뜩 잡은 연기가 슬프고, 만화를 기계식으로 줄여 뭉뚱뭉뚱한 흐름이 슬프고, 멜로와 액션의 두 박자가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 슬프고, 그 잘 낫다고 선전하는 액션이 모두 홍콩의 감독에게 임대를 줘 찍었다는 사실이 슬프다.

40억원을 썼으니 잘못하면 파산할까 두려워 영화 자체로 승부하기 보다는 다른 방법으로 그것을 감추려하는 제작사의 몸부림치는 모습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수억원을 쓴 거대한 이벤트와 광고에 쓰인 자기자랑과 그것을 비꼬는 네티즌의 글이 슬프다. 연기보다는 영화에서 여배우가 입은 의상을 자랑하는 고육지책이 슬프다.

문화부 장관에 이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까지 홍보에 이용해야 하는 절박함이 슬프다. 과장스럽게 떠벌리는 흥행결과와 미국까지, 가능하다면 저 화성인이나 목성인까지도 ‘비천무’를 볼 만큼 좋은 영화라고 억지를 부리는 모습이 슬프다.

그러나 무엇보다 슬픈 것은 이런 모든, 우리 시야를 흐리게 하는 겉포장을 그대로 전달하는 사람이다. 아니 과대포장까지 한다. 한국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 어쩌면 제작사의 영화에 대한 평가와 똑같을까?

이런저런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비천무’ 정도면 한국영화는 큰 집에 제대로 살림살이가 갖춰졌다는 얘기일까. 어쩌면 40억원 들였으니 40억원 벌게 해줘야 한다는 인정 때문일 수도 있다. 제작사도, 언론도, 관객도 그 무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슬픈 현실. 그래서 속이 빈 큰 영화는 오히려 짐이다.

영화의 질을 다른 수단(돈)으로 메워야 하는 폐단을 부른다. 한국 영화의 덩치가 크지 말아야하는 이유를 ‘비천무’가 천가지 이야기로 가르쳐 주고 있다. 참으로 반(反)영화적인 한국 영화의 사이즈 콤플렉스.

이대현 문화부 차장 leedh@hk.co.kr

입력시간 2000/07/19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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