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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삼성천하', 그 빛과 그림자

“삼성도 IMF를 겪었나. 삼성은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했나.” 재계는 요즘 삼성의 독주시대다. 한켠에선 경제난이 또 올지 모른다는 우려가 불거져 나오지만 삼성에게는 전혀 딴나라 얘기다. 올 상반기 재계의 화제도 단연 ‘삼성’이다. 다른 많은 기업도 괄목할 이익을 냈건만 삼성의 그늘에 가려 도대체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삼성은 올 상반기 14개 상장사를 포함한 전 계열사 매출이 6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세후 이익은 4조4,000억원으로 작년동기 대비 2.5배를넘을 전망이다. 이같은 추세로 가면 올 전체 매출은 약 125조원, 이익은 작년(3조7,000억원)의 두 배가 넘는 8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 구조조정본부의 한 관계자는 “작년과 올해를 합친 이익이 아마 삼성이 지난 38년 창업 이래 낸 누계이익보다 1.5배 가량 많을 것”이라고 밝혔다. IMF 위기 이후 회사 값어치와 경영평가의 주요 기준이 된 주식가치로 볼 때도 삼성의 위상은 가히 독보적이다.

7월초 기준 삼성의 상장사 시가총액은 대략 70여조원으로 현대와 LG SK 등 3개 그룹을 합친 금액의 90%에 육박했다. 비상장사까지 합쳐 똑같은 비교를 했을 때 삼성의 시가총액은 나머지 3개 그룹을 상회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외국인 투자가 사이에서는 삼성전자가 한국 최고의 투자대상 기업이라는데 이의를 다는 사람이 없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률은 요즘 55~57%선. 제일기획도 50%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오히려 적대적 M&A를 걱정해야하는 형편이 됐다.


월드베스트전략 성공, 승승장구

상당수 중견그룹이 자금난으로 야단인데 삼성은 넉넉한 자금사정을 바탕으로 올해 반도체 인터넷 분야 등을 중심으로 9조여원의 투자를 진행중이다. 벤처투자액도 상반기에 이미 2,300억원으로 재계 최고에 달했다. 인터넷과 e비즈니스 투자도 본격 열기를 뿜고 있다.

김대중 정부 초기만 해도 서슬퍼런 기업개혁의 칼날 아래 꾀나 주눅들어 있던 것처럼 보였던 삼성이 요즘 들어 왜 이렇게 승승장구하나. 세계경영을 주창하며 한때 잘나가던 대우그룹이 IMF 한파에 공중분해되고 ‘막강 현대’도 자금난이니 그룹해체니 하며 휘청거리는데 어째서 삼성만 홀로 독야청청하는 걸까.

삼성 대호황의 일등공신은 무엇보다 반도체와 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 등으로 탄탄하게 짜여진 황금분할의 사업구조라고 볼 수 있다. 삼성은 황금알 사업, 이른바 ‘월드베스트 제품’을 12개나 보유하고 있다. D램과 S램(세계 시장점유율 20.7%, 21.6%), TFT-LCD(18.3%), 브라운관(19%), 모니터(14.5%) 등이 대표적인 예다.

삼성 경영에 정통한 재계 인사들은 그러나 영업외적 측면에서 삼성의 성공은 구조조정이 적기에 신속하게 치러졌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철저한 상황 인식과 기민한 대응이 성공을 안겨줬다는 얘기다. 이 대목에서 삼성 사람들은 이건희 회장의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이 난관을 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입을 모은다. IMF 체제 전까지만 해도 삼성은 문어발 기업의 대명사였다.

반도체를 비롯, 자동차와 항공기, 선박엔진, 발전부문, 석유화학 등 빅딜의 도마에 올랐던 7대 업종 거의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회장은 세밀한 상황분석을 통해 IMF 체제 하에서는 선택과 집중만이 위기를 모면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마침내 IMF 직후인 1997년 12월 구조조정본부에 ‘전자·금융만 남기고 다 팔아도 좋다’는 사인을 줬다.


발빠르고 과감한 구조조정

이 결정에 따라 삼성은 매각과 분사 빅딜에 집중적으로 매달렸다. 중공업의 건설기계 지게차 방산분야, 무수익 자산 등 유휴 부동산을 재빨리 처분했고 항공기와 발전 선박엔진사업 역시 빅딜로 정리했다. 1998년부터 2년간 분사해낸 사업만 해도 231개에 달했다.

자동차 사업의 경우 비록 절차상 문제로 쉽게 발을 빼진 못했지만 철수를 위한 의사결정은 비교적 신속한 편이었다.

“보통의 경영자와 뛰어난 경영인 사이에는 실제 그렇게 큰 갭이 존재하지 않는다. 위기가 닥쳤을 때 보통의 경영인은 쉽게 무너져 내리지만 훌륭한 경영자는 위기를 기회(호재)로 반전시키는 지혜를 발휘한다.”

우리에게 IMF위기가 막 찾아왔던 지난 1997년 말 미국의 한 경영석학이 재계 경영인과의 조찬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삼성의 성공은 결국 위기를 호재로 반전시킨데서 얻어진 예상밖의 부산물이 아니었을까.

삼성은 숨가쁜 구조조정을 통해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대변신을 이룩했다. 1997년 말 59개에 달했던 계열사를 45개로 정리했고 40여조원의 부채는 작년 기준 25조원(해외법인 포함)로 줄었다. 부채는 올연말 다시 20조원으로 줄고 부채비율도 150%에서 130%로 낮아진다.

또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도 이미 작년말 모두 해소했다. 투명경영과 주주중시 경영을 위해 사외이사 수도 규정 이상으로 늘렸고 삼성전자의 경우 올 중간배당도 사상 최고인 50%(액면가)나 실시했다.


기업 패권화·비대화 부작용

그렇다고 지금 순풍에 돛 단듯 잘나가는 삼성의 앞길이 마냥 탄탄대로인 것만은 아니다. 재계 안팎에선 삼성의 성공 스토리에 다른 의견을 펴는 이도 적지않다. 이들은 삼성의 성공이 전자분야의 호황에 힘입은 바 물론 크지만 가입자 자산으로 운영되는 삼성생명이라는 막강한 돈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지적한다.

또 1997년 무렵 16만명이던 인력을 작년말 기준 11만명까지 감축하면서 노동자들이 치러야했던 희생도 컸다고 주장한다. IMF위기의 와중에서 샐러리맨 천국에 대한 ‘무노조 삼성맨’의 자긍심이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건희 회장이 지난 1993년 신경영을 주창하면서 “병원 걱정과 장바구니 걱정 안하게 해주겠다”고 한 공약도 하루아침에 허언이 돼버렸다. 일각에선 경제력 집중과 거대 공룡화에 따른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삼성이라는 단일 기업집단이 지나치게 패권화·비대화할 경우 이에 따른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염려의 목소리다. 무리한 자동차 진출이 결과적으로 국민 경제에 적지않은 주름살을 끼쳤던 게 비근한 예다.


변칙 증여 논란

구조조정본부를 중심으로 한 과거지향적 기업지배구조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역행한다는 비판도 있고 3세로의 변칙 증여 논란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비상장 계열사인 삼성SDS는 재용씨에게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했다가 소액주주로부터 제소를 당했다. SDS는 본안 소송에 앞서 제기된 가처분신청 2심에서 패소, 현재 본안 소송이 진행중에 있다.

삼성은 사회 일반으로부터의 이같은 견제와 공격에 대해 “1등에 대해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라고 응수한다. 여론은 다른 기업이 열개를 잘못한 것 보다 삼성이 한개를 잘못한 것을 두고 더 흥분하는 경향이 있다는 주장이다.

기업개혁에서도 앞서가고 사회복지·공헌활동도 가장 많이 하고 있는데 세인들은 자꾸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킨다고 호소한다.

하지만 다소 억울함이 있더라도 삼성이 세계 초일류 기업이라는 지상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일반의 이같은 ‘안티 삼성’정서를 마냥 외면하고 갈 수는 없다. 다국적 초일류 기업으로의 도약에는 사회의 존경과 고객 및 주주의 사랑이라는 자양분이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최대의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삼성의 다음 행보가 주목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최헌규 내외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hkchoi@ned.co.kr

입력시간 2000/07/26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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