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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교황 ‘조안’, 사실인가

1,000여년전 로마의 거리에서 행렬하던 교황이 갑자기 진통이 와서 아이를 낳았다. 터무니 없는 이야기일까. 중세 유럽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역사가 J.N.D. 켈리는 ‘옥스포드 교황사전’에“가톨릭계에서는 수세기동안 조안이라는 이름을 가진 교황 이야기를 의심의 여지없이 받아들였다”고 적었다. 바티칸은 이 이야기를 신교도가 종교개혁때 로마 가톨릭을 조롱하는데 이용하자 부인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여성교황 조안의 이야기는 유럽에서 여전히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고 있다. 뉴욕의 작가인 도나 울포크 크로스가 쓴 ‘교황 조안’은 지난 3년간 독일에서 200만부가, 미국에서 10만부가 팔렸다. ‘예수의 마지막 유혹’의 제작자인 해리 유프랜드는 내년에 교황 조안의 이야기를 영화화할 계획이다.

중세에는 여성 교황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다. 이중 상당수는 교회역사를 담당하는 수도사로부터 나왔지만 바티칸은 신교도의 조작이라고 주장한다. 몇몇 중세 연표에는 조안의 이야기가 10, 11세기 일로 나타나 있지만 9세기였다는 것이 가장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야기들을 종합하면 행렬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말에 오르려던 교황이 갑자기 진통을 느껴 남자아이를 낳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몇몇 자료에 따르면 사람들이 교황의 발을 말꼬리에 묶어 길거리를 끌고다니면서 돌로 쳐 죽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다른 자료에는 그녀가 수녀원에 들어가 참회를 하며 생을 보냈으며 그의 아들은 커서 주교가 됐다고 기록돼 있다.

이 여성교황은 영국인 전도사부부 사이에서 독일에서 태어났으며 상당히 총명하게 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똑똑한 여성은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며 심지어 위험하다는 인식때문에 그녀는 남자행세를 했다. 12세때 그녀는 남장을 하고 아테네의 학식있는 수도승에게 보내졌다. 이 수도승은 그녀의 스승이자 연인으로 기록됐다.

폴란드 출신 도미니카 수도승이었던 트로파의 마틴은 “그녀가 여러가지 학문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아무도 그녀를 필적할 수 없었다”고 적어놓았다. 나중에 그녀는 로마의 추기경이 됐고 성서에 대한 폭넓은 학식을 바탕으로 교황 존 앵그리커스로 선출됐다.

마틴에 따르면 그녀는 855년부터 858년까지, 정확히 2년7개월4일동안 재임했다. 그녀의 본명은 아그네스지만 죽은 뒤 요한의 여성형인 조안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바티칸 “신교도의 조작” 주장

그러나 바티칸의 공식 명단에는 그녀의 이름이 남아 있지 않다. 교회측은 성 바오로 이후 교황은 모두 남성이었다고 주장한다. 학자들도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각종 서적에도 교황 조안은 설화나 전설로 남아 있을 뿐이다.

교황 조안이 재임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에 여성교황에 대한 아무런 증거가 남아있지 않다는 것도 약점이다. 교회기록에는 다른 사람이 교황으로 돼 있다.

그러나 이야기는 끝 없이 계속되고 있다. 1400년을 전후해 시아나의 성당에 있는 교황의 흉상 중에는 그녀도 들어있었다. 그러나 200년 뒤 그의 흉상은 남성으로 대체됐다. 한 르네상스시대 작가는 하나님이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그녀가 교황으로 선출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중세기록을 살펴보면 조안의 이야기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바티칸이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수백년간 교황은 조안이 아이를 낳았다고 알려진 비커스 파피사 거리를 피했다. 교황들은 그 길을 수치스러운 장소로 간주했다. 바티칸은 그 거리가 교황행렬에는 너무 좁았을 뿐이라고 해명한다.

영국의 작가 피터 스탠포드는 1999년 그의 책 ‘교황 조안의 전설’에서 조안의 이야기로 골치를 겪은 바티칸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이상한 의자에 대해 쓰고 있다. 유아용 변기처럼 구멍이 있는 목재 의자가 16세기까지 교황 즉위식에 사용됐다.

중세기록에 따르면 새로 선출된 교황이 이 의자에 앉으면 성직자가 밑에서 손으로 만져본 뒤 남자임을 엄숙하게 선언했다는 것이다.

스탠포드는 조안의 이야기중 몇몇 부분의 사실성에는 의문을 표하지만 조안이 역사상 실재했다고 믿고 있다. 문제의 거리에는 10세기부터 잘나가는 가문이었던 지오바니 페이프의 집과 교회가 서있다.

페이프가 숨진지 몇 년뒤 한 방문객이 비커스 파피사는 ‘여성 교황의 거리’라는 뜻이라고 농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임신한 교황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고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커스 파피사의 원래 의미는 ‘페이프 여사의 거리’라는게 회의론자들의 주장이다.

정리 송용회 주한한국부 기자 songyh@hk.co.kr

입력시간 2000/07/2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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