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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7·27'을 기념하자

1953년 7월 27일, 전쟁은 정전으로 끝났다. 2000년 7월 27일 방콕에서 전쟁의 한쪽 당사자 였던 북한과 미국의 국무부 장관이 첫 만남을 갖는다.

‘6·25 전쟁’, ‘한국전쟁’이 멎은지 47년만에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7월27일을 ‘한국 참전용사 정전의 날’로 정하고 정전후 첫 기념식을 갖는다. 서울의 한 젊은 한국전쟁 연구가인 박명림 박사(고려대 및 하버드대 연구원. ‘한국전쟁 발발과 기원’의 저자)는 ‘6·15 남북공동 선언’이 나오기전 주장했다. “6·25가 아닌 7·27을 기념하자”고.

6월25일은 한국전쟁이 시작된 날이지만 역사적인 사건으로 그 정신을 되살리고 역사교육의 의미, 실천적 대안을 구하기 위해서는 7월27일이 기념할 만한 날이라는 것이다.

6·25는 전쟁의 시작이라면 7월27일은 전쟁종식의 날로 민족사적 입장에서는 종전, 평화, 화해, 통일을 담론으로, 이를 위한 미래와 현재의 노력을 과제로 주는 것이라는 뜻에서 7·27 기념론을 편 것이다.

북한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7월 20일 발표한 공동선언문 3항에는 “러시아는 북·남 공동선언에 따라 한반도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하는 노력을 지지한다”고 되어 있다. ‘자주적 노력’에 러시아나 옛 소련이 노력했거나 지지한 적은 있는 것일까. 북한의 지도자로서 6·25 동족상잔을 일으킨 김일성 주석이나 자위국방으로써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개발한 김일성위원장은 ‘자주적’일까.

6·25 발발이나 7·27 정전에 있어 옛 소련의 스탈린 대원수는 절대 무관하지 않았다. 그때 북한 군수통수권자이며 최고사령관인 김일성은 자주적이지 않았다.

소련의 붕괴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소련의 역할에 대한 국제세미나가 1995년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열렸다. 당시 러시아 외무부 아시아국 부국장 발레리 데니쇼브 박사는 “스탈린은 6·25에 대한 적극 가담자는 아니었다. 그를 부추긴 것은 김일성이었다. 김일성은 별다른 위험없이 미군의 참전없이 전쟁은 끝날 것이라고 스탈린을 확신시켰다”고 주장했다.

데니쇼브는 비밀해제된 문서와 관련 문서를 분석한 결과, 김일성의 끈질긴 설득과 마오쩌둥(毛澤東)의 중국 내전 승리, 미국의 장졔스(蔣介石)의 방치, 소련의 3개 원자폭탄 확보 등으로 구 소련에는 미국이 피스톨 쓰듯 소련을 상대로 핵 위협을 할 수 없으며 “미국은 아시아에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는 낙관론이 깔려 있었다고 밝혔다.

스탈린의 판단은 어느면에서는 옳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6·25때 미국 중앙정보국(CIA) 정보상황을 1974년 자체 분석한 버논 윌러스 CIA 부국장은 “그때 CIA의 보고서에서 한반도는 관심사항이 아니었다. 그들이 몰랐던 것은 트루먼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그는 전쟁발발 이틀만에 ‘세계경찰행위’로써 의회동의 없이 한국전 참전을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1951년 6월24일 주 유엔 소련대사 마리크를 통한 정전제의도 모두 소련이 배후였다. 1951년 4월과 5월 중공군 27개사단 25만명이 춘계공세를 폈지만 그것은 실패였다. 전선은 38선 근처에서 오르락 내리락했다.

이때 미 국무부는 홍콩을 통해, 중국과 소련은 유엔 대표부를 통해 미국의 소련통인 조지 케난 전 주소련대사와 접촉에 나섰다. 김일성은 1951년 6월3일 베이징에, 이어 동북 군수사령관 고강과 함께 스탈린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1951년 7월10일부터 정전회담은 시작됐다.

한 귀순자의 증언에 따르면 1953년 7월13일의 금성지구전투는 김일성이 평더후아이(彭德懷) 중공 지원군 사령관에게 부탁한 마지막 전투였다. 겨우 강원도땅을 조금 차지했을 뿐이다.

‘6·25’나 ‘7·27’를 되돌아 볼 때 느끼는 교훈은 북한이나 남한이나 진정한 ‘자주’의 뜻을 세우기 위해서는 ‘강한 편’에 붙더라도 서로 한민족의 자주를 존중해야 강한 자들의 지지를 얻는다는 것이다.

비록 푸틴대통령이 김정일위원장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에 대한 구상을 전했지만 클린턴대통령은 명확한 답을 하지 않았다. 북한은 ‘6·25’를 비자주적으로 일으켰다면 ‘7·27’에는 자주적으로 미국과 맞붙어 현안을 해결해야 한다.

입력시간 2000/07/26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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