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카페(18)] 웃음도 진화의 산물?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는 잠언의 말은 아마도 웃음에 대한 가장 적나라한 표현일 것이다. 웃음은 뇌를 기름지게 하고 마음을 비옥하게 한다. 물론 파괴적 웃음(laughing at)이 아닌 상생적 웃음(laughing with)이라야 진정한 양약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양약인 이 웃음이 감기보다 더 전염성이 강하다는 사실은 반가운(?) 사실이다. 1962년에 탕가니카(현재의 탄자니아)에서 발생한 사건은 그 강력한 전염성을 드라마틱하게 증명하고 있다. 12~18세의 여학생 몇 명이 시작한 히스테리적인 웃음이 꼬리를 물며 학생들 사이에 전염되면서 삽시간에 전교 학생에

게 퍼졌고 심지어 인근 마을까지 번져 나갔다. 이 사태는 약 6개월 동안 계속되었으며 학교는 휴교조치를 내려야 했다고 한다.

웃음의 종류는 많지만 그 기본 구조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미국 메릴랜드-볼티모어 대학의 로버트 프로빈 교수에 따르면 웃음은 자음류의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는 구조(하-하-하-하, 히-히-히-히, 호-호-호-호)이며, 대부분의 경우 처음이나 마지막 음절에 변이(푸-하-하-하, 하-하-하-흐)가 일어나기도 한다. 각 음절은 약 15분의 1초 동안 지속되며, 음절 사이의 간격은 약 5분의 1초 정도로 아주 규칙적이다. 이보다 짧거나 길게 하면 웃음이 되지 않는다.

사람은 아직 말을 배우기 전인 생후 3.5~4개월에 처음 웃음을 웃기 시작하며, 울음과 마찬가지로 웃음은 엄마와 보호자와의 상호작용을 위한 신생아의 자기표현 수단이다. 5~6세가 가장 웃음이 많은 때이며 어른보다는 아이들이 더 많이 웃는다. 혼자 있을 때 보다 사회적인 상황에 있을 때 30배 더 많이 웃으며 남성은 유머의 생산자로서의 기능이 강하고, 여성은 유머를 듣고 웃는 사람으로서의 기능이 강하다고 한다(여성이 코미디언 되기 어려운 이유).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뇌의 특정부위가 웃음에 관여하고, 미소와 웃음의 결과로 엔돌핀과 엔케팔린이라는 호르몬이 생성된다. 그러나 웃음의 발달이 사회적 학습으로 얻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자연적 또는 유전적인 현상인지, 그리고 정확하게 어떤 생물학적 메커니즘에 의해서 웃음이 발생하는지에 대한 해답은 아직 없다.

그러면 웃음은 유독 사람에게만 있는 것인가? 일반적으로 웃음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프로빈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침팬지와 큰 원숭이는 간지럽히거나 놀이를 할 때 웃음과 흡사한 발성(헐떡거리는 소리)을 하는데, 이 소리가 그들의 웃음소리라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뿌리가 되어 사람의 웃음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침팬지와 사람의 웃음소리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보통 사람의 경우에는 침팬지의 노는 얼굴이나 웃음의 원인을 미리 알지 못하면 어느 발성이 웃음인지 구분하기 힘들다고 한다. 인간은 침팬지와의 공동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후 약 600만 년의 세월을 거치며 오늘날의 웃음으로 진화했다는 말이다. 유전자 차원의 연구와 비교연구를 통해 밝혀나가야 할 숙제이다.

여하튼 웃음이 신체적 정신적 활력소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웃음치료라는 새로운 요법도 등장했다. 미국의 한 회사는 일터를 즐겁게 하고 생산력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유머 컨설턴트를 고용하여 한 시간 동안 웃기는데 5,000 달러를 지불한다고 한다.

웃음의 가치를 돈으로 매길 수는 없겠지만 5분 동안 웃으면 약 500만원 어치의 엔돌핀이 몸 속에 생성된다고 하면, 웃음은 곧 부자로 가는 길이다. 마음과 물질의 부를 동시에 누릴 수 있는 방법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원근 과학커뮤티케이션연구소장

입력시간 2000/07/26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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