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카페(19)] 개미를 물로 보지마.

타산지석이란 말이 있기는 하지만 과연 곤충까지도 인간의 스승으로 삼아야 하는가? 썩 기분이 내키지는 않지만 크게는 삼라만상이 곧 우리의 스승이라면 곤충이라고 우리의 스승이 아니라는 법도 없을 듯 싶다. 최근 과학자와 공학자들이 개미를 스승으로 삼고 인간세상의 문제해결을 위한 해답을 찾아냈다.

곤충과 동물에게서 지혜를 얻은 경우는 과거에도 더러 있었다. 비행기는 새의 날개를, 잠수함은 고래의 신체구조를 본떠서 만들었다. 지진의 예측을 위해서 쥐를 이용하기도 한다. 모두가 구조적 특성이나 기능을 흉내낸 것이다.

그러나 곤충이나 동물의 사회적 시스템을 인간사회에 적용한 경우는 없었다. 개미는 그 첫번째의 사례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사회적 동물인 개미는 자기 몸보다 10배나 큰 먹이를 비탈길 위로 끌어올릴 수 있다. 집과 먹이까지의 가장 빠른 지름길을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 도대체 무엇이 이 작은 곤충을 이토록 힘세고 영민하게 하는 것일까?

미 산타페 연구소에서 개미 무리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통신기술자이자 생물학자인 에릭 보나뷰는 그 이유를 ‘집단 지능’에서 찾고 있다. 보나뷰에 따르면 개미 자체는 복잡한 개체도 아니며 지능이 높지도 않다.

사실 개미는 주위 환경이나 동료 개미에 대한 순간적 반응으로 살아가는 곤충일 뿐이다. 그러나 이 개미가 집단을 이루면 세련된 사회적 시스템이 형성되고 전혀 불가능할 것만 같은 지혜가 발휘된다. 과학자들은 이것을 집단 지능이라고 부른다.

개미는 막대기나 사람의 발 같은 장애물이 먹이의 운송경로를 막아버리면 아주 재빠르게 차선의 길을 찾아낸다. 보나뷰 박사와 벨기에의 도리고 박사는 개미의 길 찾는 기술을 분석하기 위해 ‘TSP’(traveling salesman problem)라는 시스템을 고안했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실제 개미와 똑같이 활동하는 가상의 개미가 주어진 전자지도에서 모든 지역을 여행한다. 개미가 자유도로에서 중요한 분지점을 찾으면 가상의 페로몬(개미의 길잡이 호르몬)을 더 많이 분비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고 다른 가상의 개미는 페로몬이 뿌려진 길을 따라간다. 궁극적으로 가장 좋은 길이 네트웍 상에 지도로 그려진다.

이러한 시스템은 전화와 컴퓨터 네트웍의 정체현상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그리고 도로의 효과적인 흐름을 위한 지도작성에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터넷은 이용자의 폭주로 인해 종종 마비되는데 무작정 노선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여유가 있는 다른 노선으로 잠시 우회할 수 있는 길을 찾아주는 자동화 시스템을 개발하면 되는 것이다. 이 시스템은 스위스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개미 집단은 건물, 사무실의 동선설계, 그리고 군중 통제시스템을 설계하기 위한 좋은 모델이 되고 있다.

개미에게서 배울 또다른 점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거대한 물체를 가파른 길로 끌어올리는 팀웍의 기술이다. 사람은 계단으로 가구를 옮길 때 팀웍을 이룬다. 서로 말을 주고 받아가면서 힘을 분배하고 각자의 위치를 정한다.

그러나 개미는 직접 정보를 교환하지 않고 운송하는 물체를 통해서 문제를 감지하고 힘이 필요한 부위로 이동한다. 대화가 없는 상태에서도 효율을 잃지 않고 협력하는 이러한 협력 시스템은 실제로 로봇 설계에 적용되고 있다. 주로 큰 물체를 움직이기 위한 목적의 로봇인데 이들 로봇은 실제로 서로 커뮤니케이션하지 않으면서 효과적으로 박스를 움직일 수 있다고 한다.

보나뷰에 따르면 개미는 변화하는 문제에 개별적으로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 차원에서 대응한다고 한다. 겨우 3mm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몸집의 곤충이 이러한 고차원의 지혜를 발휘하는 것은 집단 지능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능력에 한계가 있는 개인 컴퓨터를 집단으로 네트웍을 구성하면 슈퍼 컴퓨터에 맞먹는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도 같은 원리다.

인류의 역사가 고작 400만년 정도인데 비해 5,000-9,000만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갖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유지해온 개미 사회, 어쩌면 그들이 인간의 스승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원근 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입력시간 2000/08/01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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