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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전망대] 현대에 발목잡힌 시장

잇단 ‘납량특집’에 시달려온 우리 경제에는 지금 서늘한 귀기(鬼氣)마저 감돈다. 진원지는 형제간 경영권 분쟁과 유동성 고갈로 3월부터 월말이면 괴담(怪談)을 양산해온 현대다.

시장과 정부는 낡은 황제경영 관행과 측근 발호의 폐해에 대해 누차 경고했지만 현대는 이를 오히려 음모로 몰아붙이며 시장참여자 모두를 볼모로 잡고있다.

“현대의 계열분리 약속 불이행과 형제 분쟁이, 현대건설의 신용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한국기업평가의 현대계열사 신용등급 하향조정은 모종의 음모에 의한 것”, “가신 그룹의 능력이 없으면 물러나야 하지만 그 평가는 시장과 주주, 직원이 할 것” 등등.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의 도피성 외유가 계속되는 동안 측근들이 내비친 현실인식이다. 일시적 유동성 문제를 갖고 웬 호들갑을 떠느냐며 오히려 큰소리 치는 게 그들이다.

하지만 해외금융기관과 제2금융권은 물론, 현대 차입금의 만기연장 합의에 도장을 찍은 은행도 기회만 있으면 돈을 회수하는데 혈안이 돼있다. 이유는 하나. 연매출이 80조원에 이르는 거대기업이라고 해도 디지털시대의 패러다임을 거부하고 시장의 요구에 저항하는 집단은 더이상 생존하기 어렵다는 결론에서다.


언제까지 버틸까

때문에 금주의 최대 관심사는 가신경영 척결, 현대차 계열분리, 우량 계열사 매각, 오너의 사재출연 등 시장이 요구하는 4개 항에 대해 현대가 어떤 답변을 내놓느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정부는 최근 금융감독위에 사실상의 ‘경제검찰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발표, 현대의 결단을 촉구했다.

그러나 전망은 신통찮다. 정주영 전 명예회장을 에워싼 가신그룹이 현대를 쥐락펴락 하고 있고, 이들에 업힌 정몽헌 회장도 한달 이상 해외에 머물며 정부의 의지를 시험하고 있다.

“현대의 유동성 문제는 마찰적 요인에 의한 일시적 현상”이라며 현대의 각성 대신 오히려 시장의 자제를 촉구했던 정부의 어정쩡한 태도도 현대의 기를 살렸다. 지금까지 현대가 내놓은 것은 현대차 계열분리 문제를 8월중으로 매듭짓겠다는 정도뿐이다.

이렇듯 현대 문제가 시장의 목을 죄고있던 차에 엎친데 덥친 격으로 반도체경기의 정점 논쟁과 뉴욕증시의 폭락이 이어지고 있어 이젠 지수바닥을 논의하는 것조차 무의미해진 상황이다. 펀더멘털과 지수흐름에 따른 분석도 무용지물이 됐다.

대부분의 애널리스트들은 “수급, 투자심리, 재료 등 3요소가 모두 사라진 만큼 거래소 600선과 코스닥 100선 추락마저 대비해야 한다”며 “외국인의 매도세와 현대 문제가 하루 빨리 일단락 되도록 정한수를 떠놓고 빌어볼 때”라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자금시장 경색 여전

주가흐름에 따라 금리와 환율도 요동치고 자금시장의 경색국면도 여전히 불안하다. 신용등급이 초우량인 4~5개 재벌 계열사를 제외하곤 모두가 죽을 맛이다.

8월2일 LG증권이 60개사의 회사채를 묶어 발행하는 1조5,000억원 규모의 프라이머리 CBO(발행시장 채권담보부증권)의 인수자가 확정되는 등 9월까지 4조1,000억원 규모의 프라이머리 CBO가 발행되는 것에 힘입어 채권전용펀드(10억원) 납입액이 5조원에 달한 것은 그나마 굿 뉴스.

1일 공개된 16개 재벌그룹의 결합재무제표상 거의 모든 재벌의 부채비율이 200%를 훨씬 넘었다. 금융계열사를 포함시킬 경우 삼성도 예외가 아니다. 물론 재벌들이 이 비율을 낮출 의무는 없다. 하지만 정부는 결합재무제표를 지렛대로 활용, 재벌의 재무 건전성을 유도한다는 방침이어서 파장이 만만찮을 것 같다.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당국간 경협사업으로 경의선 철도 복원이 확정됐다. 구체적 사업착수 때까지 여러 난관이 남아있지만 끊어진 국토의 맥을 잇는다는 상징적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 같다.

이를 계기로 기업의 북한 방문 발걸음도 한층 빨라질 전망이다. 이와 관련, 재계는 김대중 대통령이 7월10일께 이건희 삼성회장을 청와대에서 독대한 것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향후 삼성의 행보를 보면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짐작이 가능해진다.

당분간 현대의 힘과 삼성의 힘이 우리 경제를 들었다 놨다 할 것 같다. 삼성전자 주식의 약세에 주식시장이 요동치고, 현대건설의 유동성 위기에 자금시장이 얼어붙는다. 역시 정권은 유한해도 재벌은 영원한 것인가. 역으로 재벌개혁이 왜 필요한 지도 깨닫게 된다.

이유식 경제부 차장 yslee@hk.co.kr

입력시간 2000/08/02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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