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국내 첫 '게이쇼' 공연

처음엔 황당, 갈수록 볼거리에 매료

서울 강남의 번화가 대치동에 있는 단층 청기와 건물. 210평 남짓한 홀 내부는 일반 나이트클럽 수준으로 요란하지 않게 꾸며져 있었다. 오후 8시 1부쇼가 시작될 즈음 250여 좌석의 홀 내부에는 50여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엉덩이를 드러낸 것 같은 우스꽝스런 유니폼을 입은 남자 종업원이 손님들을 맞는 것 외에 일반 클럽과 별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자리에 앉은 손님의 얼굴에는 다소의 긴장감과 어색함이 뒤섞여 있었다.

이곳은 7월15일 문을 연 국내 첫 게이 전문 테마 레스토랑인 ‘하하호호’. 37세에서 20세 이르는 게이와 트랜스(성전환자) 9명씩 총 18명으로 구성된 단원들이 1시간30분 동안 꾸미는 이색 쇼가 펼쳐지는 곳이다. 손님은 절반 이상이 30~40대의 신사들. 일부는 부부나 단체 중년 여성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곳의 대표이자 코미디언인 김형곤의 사회로 팡파레를 울린 이날 쇼는 미스 코리아 뺨치는 미모를 가진 게이와 트랜스의 화려한 춤과 노래로 열기가 달아올랐다.

이날의 공연 주제는 세계 가요제. 국내의 박미경과 이정현을 비롯해 휘트니 휴스턴, 티나 터너, 살사 댄스의 글로리아 에스테판 등 각국 톱가수들을 흉내낸 게이와 트랜스들이 현란한 율동과 세련된 매너로 무대를 이끌어갔다.

비록 무대 자체에는 별다른 세팅이 돼 있지 않았지만 조명과 사운드는 방송 쇼 프로그램을 줄여놓은 듯 짜임새 있게 꾸며져 있었다.


여장남자와 트랜스들 매혹적 포즈

여장 남자들과 트랜스들이 하는 쇼라 처음 다소 어색해 하던 손님들도 열기가 오르자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공연중 도톰한 가슴선에 미끈한 몸매를 지닌 트랜스들이 매혹적인 포즈를 취하며 노래를 부를 때 홀안은 뜨거운 열기마져 느껴졌다.

무대에 오른 게이와 트랜스들은 전문 배우는 아니지만 강도 높은 훈련을 한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였다. 일부를 빼놓고 대다수가 립싱크였지만 제스처와 춤솜씨만은 전문가 뺨칠 정도였다.

그러나 프로그램이 노래와 춤 일변도여서 후반 막판에는 다소 지루함도 느껴졌다. 파리의 리도쇼를 본딴 피날레 프로그램인 ‘때거리 댄스’를 끝으로 1시30분간의 공연이 막 내릴 즈음 손님들은 쇼에 상당히 공감하는 듯 했다.

쇼를 관람한 40대 중년 신사는 “국내에서 처음하는 게이쇼라는 호기심에서 와 봤는데 처음에는 다소 생소하고 어색하더니 볼수록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며 “외국 관광객을 상대로 하면 좋은 볼거리가 되겠다”고 말했다.

하호 엔터프라이즈의 김대식 연예팀장은 “단원 구성은 디자이너와 학생에서 이태원 쇼팝이나 유흥업소 종사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며 “처음에는 고된 훈련에 적응하지 못해 고생했으나 지금은 나름대로의 자긍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무대에 오른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일반인은 게이와 트랜스를 비슷하게 생각하는데 양쪽은 완전히 다르다”며 “지시를 내릴 때도 각측의 대표에게 전달하는 방식을 취한다”고 귀뜸했다.


“일반인들의 인식 바꾸는 계기 됐으면”

이곳 대표인 김형곤(40) 회장은 “이번 게이 전문 쇼클럽 개장으로 음지에서 숨어살던 국내 동성애자들을 양지로 이끌어냄은 물론, 이들에 대한 일반인의 배타적 인식도 바꾸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게이쇼는 세계적인 관광상품이다.

태국의 알카자쇼는 세계 7대 쇼의 하나로 정부 지원까지 받는데 우리나라에서만 게이라는 이유로 천대를 받고 있다”며 “특별한 볼거리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외국 관광객에게 자랑할 수 있는 국내 최고의 쇼로 만들어 가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이어 “단원들을 설득하려고 전국 방방곡곡과 심지어는 일본까지 다녀왔다”며 “여성의 섬세함과 남성의 힘이 가미된 최고의 쇼를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국내에는 약 10만명에 이르는 동성애자들이 있다. 이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유흥업소 등에서 어두운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분명 자신의 성(性)으로 자신만의 삶을 영위할 자격이 있다. 이들은 게이 전문 클럽 탄생이 우리 사회에서 이런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작은 발판이 될수 있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8/02 20:12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