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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들여다보기] 함께 사는 사회

큰 아이가 다니는 학교(Fairhill Elementary School)에 갈 때마다 입구에 서 있는 팻말이 눈길을 끈다. “Help other people.” 다른 사람을 도우라는 말인데 매주 한번씩 이 학교를 들어서며 표어를 볼 때마다 감동이 새롭다. 평범한 말이지만 볼 때마다 감동을 주는 것은 이 학교의 특수성 때문이다.

유치원부터 6학년까지 전체 학생이 모두 360여명 가량인 이 학교의 학생 중 40여명은 신체장애아다. 여러가지 원인으로 신체장애가 되었겠지만 이들은 일반 학생과 같은 건물에서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특별한 조처를 요하는 체육이나 미술 과목 외에는 일반 학생과 함께 생활하며 수업을 받는다.

물론 이들 장애아를 위한 특수 시설과 장애아 교육을 전공한 특별 교사도 있다. 장애아와 일반 학생이 같은 건물에서 함께 생활하며 교육받음으로써 장애인도 일반인과 같이 어울리며 사회 생활을 익혀가도록 하고 있다.

일반 학생도 주변에 자신과 다른 능력을 가진 친구들과 함께 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학교 정문에 들어서면 휠체어를 타고 있는 친구를 밀어주고 있는 종이 찰흙으로 만든 아이들의 상(像)이 있다. 아마도 학생들이 만들었음직한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장애인을 위한 사회동화 과정이 여기서부터 시작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의미에서 미국은 장애인의 천국이다. 그들을 사회에 동화시켜 같이 생활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는 곳이 미국이다. 주차위반에 대한 범칙금은 각 지역마다 따라 다르다. 지방자치단체가 임의로 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가지 예외없이 똑같은 것은 허가없이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한 경우에는 가장 높은 범칙금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횡단보도에는 장애인을 태운 휠체어가 쉽게 지나갈 수 있도록 턱이 없는 경사로를 만들어 놓았다. 대중교통 수단에는 예외 없이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마련돼 있다.

예를 들어 워싱턴 메트로폴리탄 지역을 운행하는 메트로 버스는 장애인이 탈 경우에는 차체가 바닥으로 내려앉으면서 버스 출입구의 상판이 앞으로 나와 휠체어를 버스에 싣는다. 조그만 엘리베이터가 버스 출입문에 부착돼 있는 셈이다.

거의 모든 버스에 이런 장치를 해놓았으니 전체 승객 중에서 장애인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해볼 때 결코 경제적인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

뿐만 아니라 연방 정부는 장애인보호법을 제정하여 장애인임을 이유로 차별하는 경우에는 소송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미국은 장애인을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 함께 생활하고 있다. 미국의 최고의 지도자 중 하나로 추앙받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도 바로 휠체어에 의지한 장애인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장애인을 보기가 힘들다. 선천적 장애든, 후천적 장애든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장애인 수가 눈에 띌 정도로 적을 이유는 없는데 장애인을 보기 힘들다는 것은 무엇때문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마도 큰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장애아와 함께 다니는 학교라는 소리를 듣고는 ‘어떻게 학교를 옮겨줄 방법을 없을까’ 하고 궁리했던 필자와 같은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장애인을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는 커녕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그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켜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최고라는 명문대학을 나온 사람이 있었다. 청운의 꿈을 안고 미국에 유학와서 훌륭한 부인을 얻었다. 부인도 미국 최고의 명문대학을 나와 사회적으로 성공한 전문인으로써 부러울 것이 없는 부부였다.

그는 학위를 마친 후 고국에 돌아가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치기를 늘 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원하는 학위를 얻은 후에도 돌아가지 않고 미국에 남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약간의 선천적 장애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이 정상적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한국으로는 도저히 돌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자기만족을 위한 카타르시스로서의 장애인 행사보다 그들을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줄 수 있는 시각의 변화가 아쉽다”고 얘기하던 것을 들은 기억이 난다.

금년 가을이면 둘째 아이도 큰 아이와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된다. 이번에는 학교를 옮길 궁리는 안 할 것이다. 다만 둘째 놈에게 꼭 일러주고 싶은 말이 있다. “Fairhill students grow up appreciating the wide range of abilities within the total population.” 모난 돌이 있어야 둥근 돌이 있듯이 모두 함께 사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다.

박해찬 미 HOWREY SIMON ARNOLD & WHITE 변호사 parkh@howrey.com

입력시간 2000/08/0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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