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읽기] 북으로 간 우리영화

우리 영화 4편이 북한에 갔다. 2000년 8월5일 언론사 사장단의 사상 첫 북한 방문에 동행하는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주는 선물로 선택한 것이다.

김 위원장이 워낙 영화를 좋아하고, 또 한국영화를 많이 봤고, 지난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우리영 화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으니 적절한 ‘선물’이다. 더구나 북한 영화 ‘불가사리’가 국내에 상영됐고, 비록 김 위원장 개인을 위한 선물이긴 하지만 우리 영화가 북한으로 갔으니 이제 남북 영화교류도 시작된 것이 아닌가.

북으로 간 영화는 ‘춘향뎐’, ‘8월의 크리스마스’, ‘내 마음의 풍금’, 그리고 말도 많았던 ‘비천무’다. 어떻게 이 작품을 선택했는지는 알 수 없다. 적어도 겉으로 드러난 공식 논의는 없었다. 선물이야 고르는 사람의 마음이다.

또 공식교류도 아니다. 단지 김 위원장 개인에게 장관이 전달하는 선물이다. ‘비천무’는 몇달 전부터 “북한에 간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심지어 다분히 국내 흥행을 위한 얄팍한 수단으로 “김 위원장이 보고 싶어 한다”는 근거없는 보도와 “벌써 봤다”는 헛소문까지 있었다.

그리고 그 소문을 사실로 만들어주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어떤 밀약이 있었던 것일까. ‘비천무’는 북한에 갔다.

박 장관이 밝힌 4편의 선정 근거는 다음 몇가지. 정치성 없는 영화. 국내·외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영화, 멜로 영화. 정치성을 배제했다는 것은 ‘쉬리’같은, 북한과 관련된 소재의 영화는 빼버렸다는 말이고, 멜로 영화를 골랐다는 말은 “미워도 다시 한번’류를 좋아하는 김 위원장의 취향을 반영한 것이다. 넓게 보면 4편은 모두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

영화제에서의 수상이라는 기준도 그럴 듯 하다. ‘춘향뎐’은 한국 영화로는 처음 올해 칸영화제 장편부문 본선 경쟁에 올랐고, 임권택 감독이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상을 받았으니 선정된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임권택은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이고 김 위원장 역시 임 감독을 잘 알고 있으며 ‘춘향뎐’에 대해서도 관심을 표시했었다.

비록 신상옥 감독이 만들긴 했지만 우리에게 TV로 소개된 북한 영화 ‘사랑 사랑 내 사랑’과 비교할 기회도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8월의 크리스마스’와 ‘내 마음의 풍금’ 역시 백상예술대상을 비롯 각종 국내 영화제의 수상작. 젊은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지금 우리의 사랑의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북한에 가져갈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그렇다면 ‘비천무’는 왜인가? 지금 상영중인 최신작이라서? 아니면 한국 영화 사상 최대 제작비(40억원)를 들인 규모 때문에? 아니면 작품성이 뛰어나서? 아니면 다른 멜로물은 마땅치 않아서? 박 장관은 “워낙 김 위원장이 보고싶어 한다, 봤다는 등 말이 많아 직접 갖고가서 보고 싶어했는지 아니면 봤는지 여부를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단지 그 이유라면 정말 어처구니 없다. 적어도 남북교류의 한 형식으로 우리 영화를 가져가는 일이다. ‘비천무’가 북한 간다는 말이 나왔을 때 영화팬 사이에는 이런 얘기도 나왔다. “가면 안된다. 김 위원장이 지금 한국 영화의 수준을 우습게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굳이 멜로물을 고집할 필요도 없었다. 최근작에 얽매일 필요도 없었다. 정말 해방후 55년의 한국 영화를 대표할, 다양한 장르를 골랐어야 했다. 그것도 혼자 얼렁뚱땅이 아니라 영화계와 협의를 해서.

그래서 선정된 작품 중 김 위원장이 이미 봤는지 아닌지만 고려하면 됐다. 더 욕심을 낸다면 김 위원장이 부정적으로 말한 ‘쉬리’도 갖고 가서 “이게 바로 한국 영화 사상 최대 흥행을 기록한 영화요. 한번 보시고 평가를 해주십시요”라고 했으면. 또 ‘박하사탕’으로 우리의 지난 역사도 이렇게 아팠다고 솔직히 고백하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입력시간 2000/08/09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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