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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일본] 가라(唐)

[재미있는 일본] 가라(唐)

가장 서민적인 ‘이자카야’(居酒屋)에서 최고급 ‘료테이’(料停)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음식점에서 튀김요리는 뺄 수 없는 메뉴다. ‘뎀푸라’(天婦羅)라고 불렸고 한국에서도 한동안 그대로 쓰였다. 포르투갈어의 ‘템페로’(Tempero)에서 나온 말로 한자 표기는 그저 소리만을 빌어쓴 것이다.

한국에서 일식집을 제외하고는 고유어인 ‘튀김’에 밀려 거의 쓰이지 않게 됐듯 일본에서도 ‘가라아게’(唐揚げ)라는 말이 더 널리 쓰인다. ‘아게’는 ‘아게루’(揚げる·튀기다)의 명사형이다. 접두어로 붙은 ‘가라’는 한자 표기로 보아서는 당나라, 또는 당나라로 대표되는 옛 중국을 가리킨다.

그러니 가라아게는 당나라에서 온 튀김, 중국에서 온 튀김을 뜻한다.

일본에는 이밖에도 ‘가라’가 붙은 말이 많다. 소나 말이 끄는 쟁기는 ‘가라스키’(唐鋤)이고 종이 우산은 ‘가라카사’(唐傘)다. 지금은 사자를 가리켜 그냥 ‘시시’(獅子)라고 하지만 ‘시시’(しし)가 ‘이노시시’(猪·멧돼지)나 ‘가노시시’(鹿·사슴) 등 짐승을 널리 가리키는 말로 쓰일 때는 ‘가라지시’(唐獅子)라고 구분해 부르기도 했다.

16세기에 접촉이 시작된 서양 문물에 ‘요’(洋)를 붙여 재래문물과 구분했듯 먼 옛날 대륙의 외래문물에 접했던 일본 열도의 주민은 ‘가라’라는 말을 붙였다.

그런데 가라는 원래 중국을 가리키기 전에 한반도를 가리켰다. 일본 역사상 농경사회의 정착이 한반도로부터의 도래인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대표적 농기구인 ‘가라스키’는 한국에서 온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청동을 ‘가라가네’(唐金)이라고 부르는 것도 일본의 청동기전래가 한반도를 거친 것이라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신사의 입구에 놓여 있는 ‘고마이누’(高麗犬)를 ‘가라이누’(唐犬)라고도 부르는 것은 보다 직접적인 증거다.

고구려나 고려, 넓게는 한반도를 가리키는 ‘고마’를 붙여 부르는 것은 해태 비슷한 이 석상이 한반도에서 왔으며 전래 당시 개를 연상시켰음을 보여준다. 이를 가라이누라고 부르는 것은 ‘당’(唐)이란 한자가 차용되기 이전의 가라가 한반도를 뜻했다는 분명한 증거다.

모시의 일본어인 ‘가라무시’(苧)도 따지고 보면 ‘한반도에서 모시라고 불리는 풀’이란 뜻으로 쓰였다고 볼 수 있다.

한반도를 왜 가라라고 불렀을까. 일본인은 현재 ‘한국’(韓國)을 그대로 소리로 읽어 ‘간코쿠’라고 하지만 뜻으로 풀어 읽을 때는 ‘가라노쿠니’(韓の國)라고 한다. ‘가라라는 나라’의 뜻이다. 가장 큰 실마리는 한반도 남부에 있었던 가야(伽倻)다.

가야를 표기하는 한자는 여러가지 조합이 있으나 지금의 한자음으로 읽으면 가야, 또는 ‘가락국’(駕洛國)의 ‘가락’으로 모아진다.

최근 한일 양국 언어에 미친 드라비다어의 영향을 연구하고 있는 양국 학자들은 가야 또는 가락이 드라비다어의 ‘가라’(Kara·나라)를 나타내기 위한 한자 차용이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강원도 고성의 옛 이름은 ‘가라홀’(加羅忽)이었다. 가야의 흔적이 한반도 동서해안 지역에 널리 분포한다는 점에서 모종의 연관성을 추정할 수 있다.

드라비다족은 과거 실크로드의 길목인 중앙아시아와 인도 북부에 걸쳐 살았으며 현재 인도 남단 타밀나두성과 스리랑카 북부에 밀집해 살고 있는 타밀족, 태국 변경지역에 독자적 문화를 간직한 채 살고 있는 아유타족의 몸통이다.

가락국의 시조인 수로왕의 비 허황옥(許黃玉)이 아유타국의 공주였다는 가락국기의 내용도 가야와 드라비다족의 관계를 시사한다.

일본 최초의 부족 연맹체인 ‘야마타이’(邪馬台)국이 세워진 2~3세기는 한반도 남부에서 부족 연맹체로 성장했던 가야가 백제와 신라의 본격적 압력에 시달리기 시작했던 시기와 일치한다.

이런 압력에 밀려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이동했던 사람은 당시 일본 열도의 주민에게 당연히 가야 사람, 즉 ‘가라비토’(唐人)라고 불렸을 것이다. 그들이 전한 선진 문물도 ‘가라○○’라고 불렀을 것이다. 나중에 일본에 전해진 백제의 문물을 ‘구다라○○’, 고구려의 문물을 ‘고마○○’라고 부른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처럼 애초에 가야, 즉 한반도에서 온 것을 가리키던 가라라는 말은 점차 ‘외래의 문물’ 전체를 칭하는 말로 의미가 넓혀졌다.

그리고 일본과 당의 직접 교류로 당의 문물이 외래문물을 대표하게 되면서 당(唐)이라는 한자가 가라의 표기로 정착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연유로 현재 일본의 수많은 ‘가라○○’는 한반도와 중국을 가리키는 것이 섞여 있지만 주의를 기울이면 어렵지 않게 가려낼 수 있다.

황영식 도쿄특파원 yshwang@hk.co.kr

입력시간 2000/08/09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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