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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합재무제표로 본 국내 16대 재벌

결합재무제표로 본 국내 16대 재벌

한국의 재벌들은 낙제점을 겨우 면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7월1일 사상 처음으로 국내 16대 재벌의 건강상태를 나타내는 종합 검진표 ‘결합재무제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재벌은 계열사간 내부거래가 전체 매출의 3분의1 이상 돼 국내용‘안방재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의 감시와 단속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는 것을 웅변해 주는 대목이다. 또한 16대 재벌 가운데 9개 재벌은 지난해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제대로 내지 못해 재벌의 허약성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증권사, 투신사 등 금융 계열사들이 그룹 전체의 수익성에 기여하기 보다는 재벌의 사금고 구실을 충실하게 수행했다는 사실도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특히 재벌이 해외에 설립한 회사의 기여도가 국내 기업보다 낮게 나타나 그동안 재벌들이 외쳐온 세계화의 구호가 공허한 메아리였다.


이자도 못갚는 장사

16대 재벌 가운데 9개 그룹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낙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영업이익을 순이자비용으로 나눈 영업이익 이자보상배율을 들여다 보면 9개 그룹이 1.0 미만이었다. 현대그룹조차 0.91배에 불과했다.

영업을 해서 벌어들인 이익금으로 빌린 돈의 이자 가운데 91% 밖에 갚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나마 코오롱 한라 강원산업 등 3개 그룹은 영업이익이 적자였다. 나머지 그룹 가운데에서 삼성과 롯데만이 이자보상배율이 3.0을 넘었을 정도로 체력이 약했다. 한마디로 IMF위기를 불렀던 재벌의 차입경영이 여전히 뿌리깊게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위태로운 거품 경영

16대 재벌의 매출액이 474조3,000억원에 달했지만 이 가운데 34.9%인 165조6,000억원은 계열사끼리 사고판 내부거래였다. 특히 현대 삼성 LG SK 등 4대 그룹은 훨씬 심각했다. 4대 그룹의 내부 매출액은 155조2,000억원으로 전체 매출액의 32%에 달했다.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4대 그룹은 원료에서 완제품까지 수직계열화해 있어서 내부거래 비중이 높게 나왔다”며 “수직계열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는 게 꼭 나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계열사끼리 누이좋고 매부좋은 식으로 서로 투자하고 대출을 해주며 경영실적을 부풀린 점이 있는 만큼 향후 기업 구조조정 작업이 계열사간 대차거래 축소 등 계열분리 작업을 토대로 시작해야 한다는 점은 확실하다.


허약한 기업

부채비율은 금융업을 제외할 경우 225% 수준으로 양호한 편이지만 유동성은 개선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쌍용그룹(1,789.2%)과 강원산업 그룹(973.5%)의 부채비율은 극히 위험한 수준이었다. 기업의 단기자금 조달능력을 나타내는 유동비율(1년 안에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을 1년 안에 갚아야 할 부채로 나눈 값)을 보면 16대 그룹 평균은 95.12였다. 80~90%가 보통 수준인 점을 감안할 때 상당히 좋은 수준이었다.


벼랑끝의 해외사업

16대 재벌의 전체 조사대상(720개 기업)에서 399개의 해외 계열사가 포함됐다. 이들은 전체 매출(474조원)의 약 3분의1(107조원)을 차지하면서도 영업활동은 극히 부진했다. 4대 그룹을 제외한 12개 그룹 해외계열사(99개사)의 경우 전체 매출액 대비 영업수익률은 마이너스 0.2%로 열악했다.


기업 구조조정 촉진제

결합재무제표의 발표로 기업 구조조정의 가속도가 붙게 될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결합재무제표 기준 부채규모가 매출액을 초과하면 자산건전성 분류(FLC)에 반영키로 했다. 따라서 매출액보다 부채규모가 큰 기업들로서는 앞으로 금융기관으로부터 신규 여신을 받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기업은 이같은 시장의 ‘자율규제’를 통해 기업의 건전성을 높일 수 밖에 없게 된다. 당장 재계에서는 “결합재무제표를 잘못 해석할 경우 국내 기업의 대외 신인도 하락과 기업경영 투명성 문제를 증폭시킬 수 있다”며 경계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은 이번 결합재무제표의 분석결과를 토대로 9월에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공정거래위원회도 9월로 예정된 현대 삼성 LG SK 등 4대 그룹의 부당내부거래 조사때 결합재무제표상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계열사를 집중적으로 조사키로 했다.

금융감독원 서근우 기업조정심의관은 “결합재무제표가 공개됨으로써 기업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하지 않을 경우 시장으로부터 외면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합재무제표란

한 재벌에 속한 모든 계열사를 하나의 회사로 보고 재무상태와 영업실적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이다.

따라서 계열사간의 출자나 상품거래, 자금거래 등이 상계처리되기 때문에 계열사 각각의 재무제표를 단순합계한 것보다 매출액과 순이익 등이 크게 줄어들게 된다.

반면 계열사간 내부지분율이나 상호 빚보증 실태, 담보제공 현황 등은 비교적 상세히 알 수 있다.

또한 지분율을 기준으로 지배-종속관계에 있는 회사만을 대상으로 하는 ‘연결재무제표’와는 달리 재벌 총수가 사실상 지배력을 행사하는 모든 회사들이 망라되기 때문에 해당 그룹 전체의 재무상태와 영업실적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결합재무제표는 IMF체제 이후 기업회계의 투명성을 높이라는 IMF의 요구에 따라 1999년 사업연도부터 적용, 이번에 처음 공표됐다. 30대 재벌이 작성대상이지만 연결재무제표로 자산총액의 80% 이상을 반영하는 경우 작성대상에서 제외돼 올해는 17개 재벌만 적용됐다(삼양사는 6월 결산법인이어서 내년 초 발표한다).

권대익 경제부기자 dkwon@hk.co.kr

입력시간 2000/08/0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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