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문화일기] 누굴 위한 조삼모사(朝三暮四)?

벌써 세번째다. 문화관광부가 소위 성인전용관인 ‘등급외 전용관’을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 1998년과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무슨 연례행사라도 되듯, 아니면 목숨 걸고 실현시켜야 할 과제인양 이 문제를 들고 나왔다.

한나라당은 물론 공동여당인 자민련까지 반대해 국회 심의과정에서 번번히 퇴짜맞은 것을.

문화관광부는 이번(8월10일)에 입법예고를 하면서 ‘등급외 전용관’이란 종전의 용어를 버리고 ‘제한 상영관’이란 용어를 선택했다. 음란물과 차이를 두기위한 것이라고 했다.

‘등급외’하면 음란물 냄새가 난다는 얘기다. 당연히 등급도 기존의 ‘18세 관람가’ 위에 ‘제한상영’등급을 받게 되면 제한 상영관에서 상영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20세 이상의 성인만이 볼수 있다. 제한상영 영화의 경우 광고가 일체 금지되며 비디오 출시나 대여, 판매도 불가능하다. 제한상영관의 설치는 시, 도지사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도 있다.

뭔가 다르고 더 엄격해 보이는 듯하지만 조삼모사(朝三暮四)에 불과하다. ‘등급회 전용관’ 때도 20세 이상 관람가였고, 광고와 비디오출시는 금지하도록 규정했으며, 전용관 설치는 허가사항이었다. 다만 허가기관을 군이나 구에서 시와 도로 높였을 뿐이다.

이름만 등급외 전용관에서 제한 상영관으로 살짝 바꾸어 다시 들고나온 것이다. 어떻게 이름을 짓든 ‘포르노성 영화의 상영 허용’을 문화관광부가 이처럼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표현의 자유, 다양한 문화의 수용, 저질 포르노의 불법유통으로부터의 청소년 보호. 말이야 모두 맞다. ‘거짓말’에서 보았듯 유통의 차단이야말로 영화의 가장 큰 표현 제한이다.

그러면 인터넷을 통해 음성적으로 유통될 수 밖에 없다. 당연히 청소년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젊은 영화인의 주장 역시 비슷하다. 등급외 전용관의 설치 주장은 그들로부터 나왔으니까.

‘또다른 상영관’을 두어 등급으로 인한 표현의 제한을 풀어주자는 것이다. “애써 만든 영화를 자진삭제하지 말고 차라리 제한된 곳에서 제한된 관객을 대상으로 상영하자.”

여기서 ‘표현의 자유’란 섹스와 폭력의 사실적 묘사다. 성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잔인한 폭력행위를 허용하자는 것이다. 현행 형법을 위반하는 표현을 제한 상영관에서는 허용하자는 것이다. 또 영화인 스스로 문화의 성인 18세를 포기하고 있다.

지난해 국회 법사위가 다른 법과의 형평을 위해 영화에서 성인을 19세로 높이려 하자 영화인들은 거세게 반발해 18세를 지켰다. 그때 주장은 “문화의 수용능력을 무시한 단순한 법논리”였다.

그렇다면 20세는 뭔가. 제한 상영관에 가는 영화는 문화가 아닌가. 또 20세와 18세의 문화수용능력 차이는 무슨 기준이 있는가. 선거권이 있고 없고에 따라 어떤 영화는 볼 수 있고, 어떤 영화는 못보는 것인가.

지난해 ‘거짓말’파동이 일어났을 때 영상물등급위는 등급보류를 내리면서 “나중에 등급외 전용관이 생기면 거기서 상영하라”라고 말했다. 그러나 제작사는 어떻게 하든 등급을 받아 기존 극장에서 상영할 수 있도록 했다.

일부 영화인이 등급보류 결정을 보고 “빨리 등급외 전용관을 만들어야 이런 영화도 어려움없이 상영될 수 있다”고 한 주장을 제작사는 못마땅해했다. 등급외 전용관에서의 상영을 원하는 한국 영화가 많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왜? 수익이 없기 때문이다. 등급외 전용관이 전국에 수십개 되면 몰라도 광고가 제한되고 비디오 출시가 금지되고 10대 후반의 관객이 못오는 불리함을 감수하고 자기 영화를 그곳에 상영하겠다는 제작자는 없다. 심지어 ‘젖소부인 시리즈’ 같은 에로비디오 조차 차라리 비디오시장을 고수하는 게 낫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결과는 뻔하다. 멀티플렉스로 생존이 흔들리는 기존 단일극장이 제한 상영관으로 바뀔 것이고, 한국 영화는 잘라서라도 일반 극장으로 갈 것이고, 그러면 제한 상영관은 틀 국산영화가 없을 것이다. 당연히 외국 값싼 포르노성 영화들로 채워야 한다.

그렇다면 미국이나 유럽의 것은 되고, 일본은 왜 안되나. 자연히 시간이 지나면 일본의 ‘로망 포르노’도 개방할 것이다. 처음과 달리 이런 모순과 부작용을 발견하고 성인전용관에 대해 부정적인 젊은 영화인도 많아졌다.

그러나 아직도 문화관광부와 일부 영화인은 이것이 한국 영화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길이라고 우긴다. 언제나 신중한 보수보다는 허술한 진보가 더 멋있어 보이니까.

이대현 문화부 차장

입력시간 2000/08/1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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