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극우 테러 "신 나치즘인가?"

위험수위에 다다른 테러, 불법이민자도 문제

나치의 망령이 다시 살아난 것일까, 아니면 소수민족에 대한 단순한 증오범죄(Hate Crime)일까.

최근 기승을 부리고 있는 독일의 외국인 테러를 놓고 독일은 물론 전세계가 홀로코스트(대학살)의 악몽을 되살리며 긴장하기 시작했다. 무시해 버리기에는 조직적으로 보이는 외국인 테러범죄가 당사국 독일내에서 너무나 빈번하게 자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철없는 10대의 ‘치기’ 정도로 여겼던 정부도 전례없이 강경한 어조로 극우테러의 해악을 경고했다. 이번에는 범죄집단 뿐 아니라 일반 국민의 ‘대(對)테러 불감증’까지 싸잡아 비판했다.

“신나치 테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길거리 미친 개한테 물릴까 걱정하는 것 만큼도 안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요시카 피셔 외무장관의 발언에서 정부가 느끼는 위기감을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이같은 테러 분위기가 사회에 만연돼 있다는 것이다. 일반 대중이 암묵적으로 동의하거나 최소한 침묵하는 틈을 타 극우테러가 준동하고 있다는 게 정부의 해석이다. 피셔의 발언은 극우세력이 착각하지 않도록 국민이 나서서 이를 성토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밑에 깔려 있다.


극우테러, 경제에도 심각한 영향

외국인 테러에 대한 체감위기는 지난 7월27일 옛 서독지역 뒤셀도르프 역에서 발생한 파이프 폭탄 테러에서 촉발됐다. 사망자 없이 10명이 다친 것으로 끝나 일견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을 뒤져보면 그렇지 않다.

부상자가 유대인, 러시아인 등 모두 외국인 근로자고 이중 6명이 유대인이었다. 실업률이 높은 옛 동독지역에서 주로 발생했던 테러의 패턴에서 벗어나 서독지역에서 처음 발생했다. 뒤셀도르프는 서독지역에서도 첨단 정보통신의 신 메카로 불리는, 가장 부유한 지역중의 하나다.

말하자면 ‘경제적 특수성’에 따른 국지적 사고라는, 지금까지의 설명이 통용될 수 없을 만큼 테러행위가 전지역에서 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 사건 직후 동부 아이제나흐에서는 아프리카인 2명이 극우주의자로 보이는 청년에게 무차별 폭행당한 뒤 사망했다. 최근 잇따른 에어푸르트 외국인 망명자 숙소 방화사건, 함부르크 디스코텍 방화사건도 이들 소행이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극우테러 범죄는 신고된 것만 746건에, 3년만에 처음 살인사건까지 발생했다. 올들어서는 벌써 외국인 4명이 희생됐고 2·4분기 3달동안 157건의 테러가 발생했다.

극우테러가 낳은 여파는 독일 경제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만성적 첨단 고급인력난에 허덕이던 독일 정부는 6월 외국인 근로자 유입 절차를 대폭 간소화한 ‘그린카드제’를 시행했다. 미국이 싹쓸이하다시피 하고 있는 세계 고급두뇌를 유치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정부가 책정한 2만여 일자리 중 실제 지원한 외국인은 5,400여명에 불과했다. 공업화가 가장 진척된 헤세주에서는 1,271개의 일자리 중 25명만이 신청서를 접수했다.

생각지도 않았던 테러에 발목이 잡혀 시행 한달만에 사실상 용도폐기된 꼴이다. 극우주의자들이 사회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직장에서 해고시키자는 경제계의 뒤이은 강경성명은 어쩌면 당연했다.


독일정부 강력대응, 효과는 미지수

정부의 대응도 단호하다. 우선 이 사건 배후에 극우정당인 민족민주당(NPD)이 자리잡고 있다고 보고 당 자체를 불법화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정당폐지 요건이 매우 엄격하고, 극우정당을 불법화할 경우 이들이 지하화할 우려가 있다는 반론때문에 주춤하고 있지만, 이들을 어떻게든 통제해야 한다는 의지만은 확고하다. 1996년 세워진 NPD의 당원은 6,000여명.

지난해 발생한 9,000여건의 외국인 폭력사건을 배후조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극우주의자들이 연대 수단으로 삼고 있는 인터넷에 대한 규제도 발벗고 나섰다.

헤르타 도이블러 그멜린 법무장관은 32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극우집단 홈페이지 도메인을 삭제하겠다고 8일 공식 발표했다. 9일에는 외국인을 집단구타해 숨지게 한 극우조직 청소년 3명을 살인죄로 기소했다.

6월 동독지역에서 발생한 모잠비크인 살인사건을 발생 2개월만에 이처럼 신속히 기소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나 정부의 강력한 단속의지에도 불구, 이들을 발본색원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일반대중이 정부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고 자신할 수 없는 사회불안 징후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업률이 대표적이다. 경기호황으로 감소추세에 있던 실업률이 7월을 고비로 다시 높아지고 있고, 동독지역은 여전히 경제 사각지대다. 사정이 이런데도 독일은 유럽내 불법입국자의 천국으로 불릴 정도로 불법체류 외국인이 가장 많다.

지난해 기준으로 독일내 불법입국자는 9만5,000명. 두번째인 영국보다 2만4,000명 이상이 많고 프랑스에 비해서는 3배 이상 많다. 유럽 전체 불법이민자의 거의 30%가 독일에 몰려 있다.

자국민을 위한 일자리도 없는데 불법이민자들이 판을 치고 있으니 이들을 보는 독일인의 시선이 고울 리 만무하다.


유럽전체가 ‘극우충격’에 휩싸여

극우세력의 발호는 독일만의 현상은 아니다. 나치라는 암울한 역사 때문에 집중조명을 받고 있을 뿐 사실 이 문제는 유럽 전체에 팽배해 있다.

오스트리아는 외르크 하이더가 이끄는 극우 자유당이 제2당으로 부상하면서 2월 집권 연정에 참여하는 ‘우익 충격’을 몰고왔다. 전 유럽이 나서서 오스트리아를 고립시키려고 외교적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국내에서의 자유당 인기는 여전하다.

프랑스에서는 4월 극우주의자 장 마리 르펭이 국민전선(FN)의 당수로 추대됐다. 그의 2002년 대선공약 제1호는 외국인 추방. 198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의회진출에 성공한 FN은 15% 전후의 지지율을 유지하면서 도시 빈민층과 보수층의 꾸준한 후원을 얻고 있다.

스위스 극우정당으로 역시 제2당인 인민당, 이탈리아 북부연맹, 벨기에의 플래시미 블록, 노르웨이 진보당 등도 과격한 우익정강을 기치로 속속 민심을 파들어가고 있다.

유럽 최대 현안 중 하나인 불법이민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우익정당의 발호는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는 게 유럽 정부의 고민이다.

국제부 황유석 국제부 기자

입력시간 2000/08/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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