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값 못하는 유명 브랜드

순익·매출 감소, 흔들리는 '브랜드 가치'

최근 평양의 고려호텔에 코카콜라가 공식적으로 들어가 화제가 됐다. 구 소련이 붕괴됐을 때 러시아 경제는 최악의 상태였지만 맥도널드 가게 앞에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쳤다.

10년전까지만 해도 이들 유명브랜드는 혁신(innovation)의 대명사였고 취업희망자들이 가장 일하고 싶어하는 직장이었으며, 주가를 좌지우지하는 엘리트 블루칩(최우량주)이었다. 요란하게 광고를 하지 않는데도 빅브랜드들이 쏟아내는 각종 소비재들은 ‘철의 장벽’ 마저 뛰어넘어 지구촌 생필품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시절은 지났다. 소비재를 생산하는 회사들은 수년간 표류하고 있다. 크레스트 치약, 팸퍼스 기저귀, 프링글스 감자칩으로 유명한 프록터 앤 갬블(P&G)은 올들어 2사분기 연속 순익과 매출이 떨어졌다. 필립 모리스의 ‘말보로’담배는 매출부진과 잇단 소송으로 브랜드 가치(Brand Value)가 마구 흔들리고 있다.

그렇다면 새천년 혁신의 주축은 무엇인가. 머서 매니지먼트 컨설팅의 존 캐니어는 ‘비즈니스 위크’ 최신호에서 “금융업과 IT(정보통신), 컴퓨터 등 신경제 브랜드들이 무섭게 굴뚝 브랜드들을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면서 “살아남기 위해선 변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브랜드 가치 신구 세대교체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최근 코카콜라의 상표가치가 조만간 마이크로소프트(MS)에게 1위 자리를 내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브랜드 컨설팅업체인 인터브랜드의 조사결과, 104년 역사를 자랑하는 코카콜라의 상표가치는 지난해 보다 13% 하락한 725억달러에 그친 반면 MS는 24% 상승, 702억달러를 기록했다. MS가 최근 반독점 판정을 받고 항소 중인 점을 고려하면 분명 의외의 결과이다. 한국 상표 중에는 삼성이 52억달러로 43위에 올랐다.

구경제를 대표하는 다른 기업들도 브랜드 랭킹에서 신경제 기업에 추월당하고 있다. 올해 상표가치 상위 5개 업체는 코카콜라 외에 MS IBM 인텔 노키아 등 IT 관련 기업들이 차지했다.

특히 핀란드의 노키아는 11위에서 5위로 무려 6계단이나 급상승했다. 대표적 인터넷업체인 야후의 경우 1년 사이에 상표가치가 무려 258%나 올라 지난해 53위에서 올해는 38위로 수직 상승했다. 수익성을 못내 허우적거리는 아마존 닷컴의 상표가치도 233% 상승, 57위에서 48위로 뛰어올랐다.

반면 제너럴 일렉트레닉(GE) 포드 디즈니 등 구경제 기업들의 브랜드는 추락세가 역력하다. GE의 경우 지난해 4위에서 6위로, 포드는 5위에서 7위로, 디즈니는 6위에서 8위로 각각 뒷걸음질 쳤다. 상품이미지가 갖는 무형의 값을 의미하는 브랜드 가치는 기업의 재무제표와 분석가들의 보고서를 근거로 미래수익 잠재력을 추산해 산출된다.


선택의 늪

빅브랜드 위기의 원인은 ‘변화한 시장’에서 찾을 수 있다. 자동차 음료수 음식 화장품 청소기 등 가정용품이 생활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줄고 있다. 대신 소비자들은 컴퓨터 케이블TV 주식거래 레크리에이션 휴대폰 등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점점 많이 투자하고 있다.

수퍼마켓을 한바퀴 돌아보면 소비자들에게 선택의 폭이 얼마나 넓어졌는지 실감할 수 있다. 미국의 대형 수퍼마켓에는 약 4만종의 브랜드가 있다고 한다. 소비자들은 가히 ‘선택의 늪’에 갇혀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소비자가 생활하는 데 필요한 품목은 150종이면 족하다. 이는 소비자들의 브랜드에 대한 결속력을 떨어뜨리는 주요인이다. “소비자들은 인기 브랜드를 좋아한다.

하지만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브랜드의 위력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고 화장품 회사인 ‘코티’의 부회장 더글라스 터위스는 설명한다.


뼈를 깎는 자기혁신

때문에 전통적인 빅브랜드들은 요즘 뼈를 깎는 자기 혁신에 골몰하고 있다. 이들은 닷컴기업들 처럼 완전히 새로운 사업모델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소비자의 성향, 특히 젊은 소비자층의 심리를 파악하고 상품을 보다 신속하게 출시하기 위해 팀, 속도, 데이터 마이닝(data-mining)의 효과적인 활용, 그리고 온라인 마케팅 전략에 시선을 돌리고 있다.

뉴욕 매디슨가의 전통적 광고에만 의존하지 않고 실리콘 밸리에서나 찾을 수 있을 법한 혁신과 조직경영을 추진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빅브랜드 회사내에 감돌고 있다.

이들은 특히 소비재 소비를 리드하는 젊은 고객층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젊은이의 소비 심리를 자극하기 위해 인터넷을 마케팅의 도구로 활용하는 기업들도 점점 늘고 있다.


코카콜라의 변신

이같은 혼란 속에서 코카콜라 만큼 잘 대처하고 있는 기업도 드물 것이다. 코카콜라의 혁신은 지난 2월 새로운 CEO 더글라스 N 대프트(56)를 맞아들이면서 시작됐다. 대대적 군살빼기 작업이 단행됐다. 전세계 200개국 2만9,000명의 직원 중 20%를 감원했다.

대프트 회장은 그러나 “감원은 단지 돈 때문이 아니다”고 강조한다. 구조조정은 기업 체질 개선작업의 첫발이지 목표는 아니라는 것이다.

애틀랜타에 있던 코카콜라 아시아 본부가 홍콩으로 이전됐고, 유럽에선 미국 출신 고참직원들이 현지인들로 교체됐다. 수십년동안 고수해온 세계화(Globalization) 전략을 포기하고 지방화(Localization)를 선언한 것이다.

코카콜라가 지방화를 내건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다양한 입맛’에 맞추자는 것. 나라별 지역별 입맛에 맞는 음료를 개발하고 역시 토착적인 마케팅을 통해 매출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 지방화 전략의 골자이다.

최근 수익률 하락으로 고전했던 P&G도 포털사이트 구축에 나서는 등 변신을 추구하고 있다. 현재 개발중인 P&G 기업포털에는 이미 100만개의 웹페이지가 마케팅 상품 사업전략 업계정보 등으로 분류돼 연결돼 있다.

필립모리스는 담배에 국한된 ‘말보로’라는 상표를 다각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조만간 ‘말보로’라는 이름의 케이블 TV, 이동전화, 호텔 등이 나타날 것이다.

물론 최근의 브랜드 정체성 위기가 P&G나 질레트 같은 거대기업의 종말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러나 브랜드 기업들은 인터넷 법칙이 지배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아 새로운 프로그램을 갖지 않으면 옛 영광을 되찾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브랜드가 흔들리는 4가지 이유

①초점이 없다

상품의 종류가 많으면 소비자를 헷갈리게 만든다.

②혁신 의지가 없다

신상품은 쏟아내지만 혁명적인 상품은 없다.

③너무 크고 느리다

비대한 경영방식 때문에 소비자를 찾는 속도가 늦다.

④장래성이 없다

젊고 패기있는 사원들은 고리타분한 기업을 꺼린다.

<자료: 비즈니스 위크>

국제부 이동준기자

입력시간 2000/08/22 20:48


국제부 이동준 dj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