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日 군국주의 망령 부활하나”

신사참배 등 분위기·군사력 증강에 경계의 눈초리

8월15일은 한국, 중국, 일본에서 제각기 다른 명칭을 갖고 있다. 한국에서 ‘광복절’로 기념되는데 비해 중국에서는 ‘항일승전기념일’, 일본에서는 ‘종전기념일’로 불린다.

명칭이 다른 만큼 부여되는 의미도 다르다. 광복절이 주권회복의 의미를 갖는다면 항일승전기념일은 외침에 맞서 주권을 수호했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이에 반해 종전기념일은 다분히 중립적인 냄새를 풍긴다. 55주년을 맞은 올 8·15는 과거와는 다소 의미가 다르다. 새천년이라는 시간의 구획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이번 8·15를 전후해 일본에서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분위기가 전례없이 고조된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새천년 들어 처음 맞는 종전기념일을 과거의 굴레로부터 탈출하는 전환점으로 삼으려는 집단적 심리가 작용했다는 이야기다. 과거의 굴레란 다름아닌 군국주의와 전쟁책임이다.


과거 일본만행 부각에 분주

중국은 이같은 일본의 분위기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새천년이 됐다고 해서 저절로 일본의 과거가 용서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중국 언론들은 최근 야스쿠니 신사와 신사의 성격, 참배 현장을 자세히 보도했다.

이와 함께 우익언론의 보도내용을 분석하며 일본에 군국주의 망령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우려했다.

8월15일자 인민일보는 야스쿠니 신사의 부조(浮彫)들이 상당수 중국침략에서의 승리를 미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민일보는 특히 부조 사진과 함께 그림에 새겨진 문구를 일일히 소개했다.

‘북청사변으로 톈진(天津)성 진공’, ‘명치41년 경찰부대가 전투를 통해 대만을 평정’, ‘만주사변으로 소화(昭和)8년 3월10일 오후 5시30분 보병 제16여단이 만리장성 일각을 점령’, ‘소화7년 2월 상하이(上海) 부근에서 공중전을 벌여 적기 격추’, ‘상하이 사변이 폭발한 소화7년 1월28일 해군육전대가 80배가 넘는 적을 무찌르고 무력를 과시하다’는 등이 그것이다.

16일자 인민일보는 구일본군 복장을 한 채 신사에서 행사를 벌인 사람들이 참전노병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상당수 젊은이가 포함돼 있어 군국주의를 일깨우는 대열이 젊어졌다는 것.

이 신문은 “21세기 일본 사회의 주류를 이룰 청소년의 이같은 행태는 아시아 각국에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북경청년보는 앞서 14일 일본의 대표적인 우익지인 산케이(産經) 신문 사설을 정면으로 비난하는 기사를 실었다. ‘각료들의 정식 신사참배를 요구한다’는 제목의 산케이 사설 내용은 크게 두 가지. 우선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에 참배하는 것은 각료의 의무라는 것.

또하나는 주권국가인 일본의 총리가 참배하건 말건 외국이 간섭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산케이는 특히 “중국이 총리의 참배에 반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중국을 노골적으로 지목했다.

이에 대해 북경청년보는 “중국은 일본 정부 관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반대하고 비판할 권리를 분명히 갖고 있다”고 반박했다. 북경청년보의 주장. “첫째, 일본 군국주의의 최대 피해자가 중국이란 사실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둘째, 야스쿠니 신사는 침략을 부정하고 전쟁을 미화하며 지금까지 군국주의 망령을 일깨우는 주요 상징 역할을 해왔다. 이런데도 중국이 야스쿠니 참배를 반대할 권리가 없단 말인가.”


“일본의 군사대국화 경계해야”

중국 정부도 이달 들어 하얼빈(哈爾濱)에 있는 731부대 유적지에 대한 대대적인 보존작업에 들어갔다. 731부대는 1932년 설립된 일본군의 세균전 연구부대. 중국이 731부대 유적 보존작업을 시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 국가문물국(文物局)은 100억원 이상을 들여 이곳을 깨끗이 정리한 다음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할 계획이다. 중국 중앙TV는 “731부대의 대부분 전범들이 당연한 심판을 아직까지 받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중국 환구시보는 최근 일본이 은근슬쩍 군사대국이 돼버렸다며 아시아 각국의 경계를 촉구했다. 일본 군사비는 이미 1983년 독일, 프랑스, 영국을 초과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 군사비 지출은 419억 달러. 환구시보는 1990년 들어 일본이 전후의 금과옥조였던 ‘전수(專守)방위’ 원칙을 깨고 ‘해외방어’로 군사전략을 전환시켜 왔다고 말했다. 환구시보가 분석한 일본의 군사전략 변화는 4가지. 첫째, 대외적 위협의 다원화를 강조하며 전방위 방어체제를 수립하고 있다.

둘째, 미국과의 긴밀한 연합을 통해 지역간섭형 군사노선을 택하고 있다. 셋째, 군의 역학범위를 확대함으로써 자위대를 내향형에서 외향형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넷째, 군의 첨단화를 통해 자위대를 아시아 최고의 기술군대로 만들고 있다.

환구시보는 이에 따라 자위대가 점차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군대로 재탄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환구시보는 일부 분야에서 이미 미국을 능가한 일본의 첨단무기 증강과 군사능력을 자세히 소개하며 중국의 대응을 물었다.

“우리는 역사가 반복되기를 원치 않는다. 하지만 역사는 종종 선량한 인간을 농락해왔다. 일본은 현재 필사적으로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군국주의 세력이 득세하고 있다. 이같은 현실에 직면해 우리는 어떻게 할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항일승전 55주년 기념일을 맞는 중국의 이같은 태도는 21세기 아·태지역 세력구도에 대한 전망과 직접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

일본이 미국과 연합해 중국을 견제하거나, 또는 중국에 맞대응해 지역패권을 다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이야기다. 중국은 과거의 원죄(군국주의 침략전쟁)를 부각시키며 일본의 군사·정치대국화를 최대한 억제하자는 계산을 하고 있다. 아울러 민족주의를 고취해 국가적 결집성을 높이려는 의도도 갖고 있다.


중국의 군사력 급성장도 주시해야

한편 지역패권이 아니라 주변 강국의 세력균형에 외교력을 집중해야 하는 한국의 입장이 중국과 같기는 어렵다. 외교안보연구원의 윤덕민 교수는 최근 일본의 보수화 추세에 대해 과민반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윤 교수의 이야기. “일본의 보수화 추세는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신사참배를 비롯한 보수화 분위기는 패전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발버둥으로 봐야지 군국주의에로의 회귀 신호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일본이 과거를 매듭짓고 가는 것은 필요하다. 과거청산이 잘되지 않는 것은 자민당의 한계 때문이다. 세대교체에 따라 자민당의 노선도 바뀔 것이다.”

윤 교수는 나아가 한국이 일본의 군사력만 갖고 문제삼을 것이 아니라 중국의 급성장도 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이 미국과 관계를 강화하는 것은 중국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한 요인을 제공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새천년 들어 처음 맞는 광복절. 한국은 여전히 동아시아에서 주역이 아니라 생존공간 확보를 위해 줄타기를 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음을 재확인했다. 정상회담과 남북이산가족 상봉으로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지만 이것이 결코 한반도의 힘을 보여주는 척도는 아니다. 오히려 일본 군국주의 침략을 허용한 과거의 굴레에서 조금씩 빠져나오고 있는데 불과할 지 모른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8/22 22:17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