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 서울 중량구 망우동(忘憂洞)

망우리는 본래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의 일부 지역으로써 망우리 고개의 이름을 따 망우리라 하였다. 1914년 3월1일 경기도 구역 획정에 따라 양원·입암리를 병합, 망우리의 땅이름을 그래로 따랐다가 1963년 1월1일 서울특별시에 편입, 망우동이라 하였다.

불가(佛家)에서는 사람을 가리켜 행시(行屍), 주육(走肉), 의가(衣架), 반통(飯筒)이라 하였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란 걸어다니는 시체요, 달음박질하는 고깃 덩어리요, 옷을 걸어 놓은 횃대요, 밥을 담는 밥통이라는 뜻이다.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사람이 죽으면 머리털과 이빨, 손톱, 가죽, 힘줄, 뼈와 해골과 때 낀 것은 모두 땅으로 돌아가고, 가래침과 고름과 피와 진액, 침, 눈물, 정액은 물로 돌아가고, 더운 기운은 불로 돌아가고, 움직이는 기운은 바람으로 돌아간다고 했거늘…. 범아일여(梵我一如). 참으로 우주와 나, 자연과 같은 것이다.

서울 망우동의 망우리 공동묘지. 세칭 ‘망우리 지하다방’으로 통하는 이곳. 일괴육(一塊肉)이 일과(一過)하여 일괴토(一塊土)가 되는 곳. 한 덩어리의 고기가 한 세상 눈을 거치다가 한줌의 흙이 되는 것이…. 엄청나게 많은 ‘핑계 있는 무덤’들이 생전의 사랑과 미움과 갈등, 번뇌를 흙으로 덮은 채 누워 있다. 그러나 누워 있는 사람에게 근심도 걱정도 있을 리 없다.

그것은 이곳이 글자 그대로 모든 세상만사(世上萬事) 근심을 잊는 곳, ‘망우리(忘憂里)’이기 때문이리라.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혼미한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서울에 왕도를 정한 뒤 나라의 기초를 닦는다. 그러나 한가지 근심이 있었으니 그것은 아직 자기가 묻힐 곳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던 터다.

다행히 오늘날 구리시 인창동 검악산 기슭에 신후지지(身後之地:구리시 동구능 내의 건원릉)를 정하고 돌아오다가 이 고개에서 자기가 죽은 뒤 묻힐 곳을 바라다보며 “이제야 근심을 잊겠노라”고 토해낸 말 때문에 뒷날 이곳 땅이름이 ‘근심을 잊는다’는 뜻의 ‘망우’(忘憂)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 탓인지 망우리는 그 땅이름의 뜻과 같이 수많은 무덤이 발들여 놓을 틈 없이 들어차 죽어서라도 편히 발을 뻗기가 어렵게 되었으니 오히려 근심걱정 거리다.

‘산산히 부서질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운다./ 떨어져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그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멀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김소월의 ‘초혼(招魂)’을 되뉘어 본다.

<이홍환 한국땅이름학회 이사>

입력시간 2000/08/23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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