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태안반도의 학암포

가을을 알리는 비가 내렸다. 바닷물도 차가와졌다. 바캉스는 끝났는가. 굳이 물에 들어가 첨벙댈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면 지금이 여유있게 바다를 즐기는 적기일 수 있다. 한적한 백사장, 잡음 섞이지 않은 파도소리, 바가지가 아닌 제 값으로 먹을 수 있는 생선회…. 오히려 늦휴가에 찾은 바다는 진정한 휴식을 줄 수 있다.

충남 태안반도는 해수욕의 천국이다.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30여개의 크고 작은 해수욕장이 포도송이처럼 늘어서 있다. 그 중에서 비교적 덜 알려진 해변으로 학암포(태안군 원북면 방갈리)를 꼽을 수 있다.

학암포는 태안읍에서 북쪽으로 20㎞쯤 떨어져 있다. 서울에서 직선거리로는 멀지 않지만 당진-서산- 태안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3시간이 넘게 걸리는 장거리 여행지이다. 그래서 태안해안국립공원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손때가 덜 탔다.

학암포라는 이름부터 서정적이다. 포구의 이름은 갯벌에 드리운 커다란 바위 학암(鶴岩)에서 따왔다. 물이 빠지면 육지가 되고 밀물이면 섬이 되는 바위는 물에 잠겼을 때 학이 날아가는 모습을 닮았다. 백사장의 길이는 약 1.6㎞, 폭은 150m쯤 된다. 평균 수심이 1.3㎙, 경사도가 3도여서 안전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학암포의 첫 재미는 물이 빠져 학암이 육지가 됐을 때 찾을 수 있다. 모두 반바지차림으로 걸어나간다. 바위에 다닥다닥 엉켜있는 조가비, 모래갯벌 위를 쏜살같이 줄달음치는 손가락만한 게, 학의 등에 듬성듬성 자란 소나무…. 아이는 물론 어른들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두 번째의 재미는 낚시이다. 학암포는 낚시꾼들에게는 유명한 낚시포구. 나란히 들어서 있는 30여척의 작은 배들은 모두 낚시꾼을 실어 나르는 배이다. 동 틀 무렵이면 낚시꾼들을 5~10명씩 실은 배들이 일제히 항구를 떠나 바다로 나간다.

오후 두, 세시가 되면 항구로 돌아오는데 우럭, 놀래미 등이 아이스박스를 가득 채웠다. 낚싯배를 타는 비용은 1인당 3~4만원. 즐거움도 맛보고 횟감도 풍성하게 마련할 수 있어 결코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다. 뱃멀미가 심하다면 갯바위를 타도 좋다.

씨알이 배낚시만큼은 못하지만 잔재미를 느낄 수 있다. 민박집에서 파는 2,000원짜리 갯지렁이 한 봉지를 사면 하루 종일 즐겁다. 손가락만한 우럭 치어부터 회를 뜰 수 있는 팔뚝만한 놀래미까지 쉬지 않고 입질이 이어진다.

세번째 재미는 학암포의 물빛이다. 서해안에도 이렇게 청정한 바닷물이 남아있구나. 감탄이 절로 나온다. 방파제에 서서 바라보면 50여m 쯤 멀리 떨어져 있는 물도 바닥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다. 작은 고기들이 떼지어 헤엄치는 모습이 훤히 보인다.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낙조이다. 해변의 남쪽 끝에 서면 붉은 해가 학암의 등을 타고 넘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위 위의 소나무들이 까만 실루엣으로 반짝이고 바다와 해변은 온통 붉은 기운으로 뒤덮인다.

학암포는 아직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숙박시설이 빈약하다. 가족용 여관촌만이 제대로 된 숙박시설이고 그 외에는 민박이나 야영을 해야 한다.

그러나 야영을 하기에 좋은 환경이다. 푹신한 모래밭에 텐트를 치면 침대가 따로 없다. 국립공원이어서 입장료(성인 1,300원, 어린이 300원)와 주차료(4,000원)를 내야 한다. 문의:학암포관리사무소(041-674-2608)

권오현생활과학부차장

입력시간 2000/08/23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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